“KBS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위기를 극복, 이를 통해 KBS가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알리겠다”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겠다”
_ 지난해 7월 28일 취임식에서 조대현 신임 사장이 한 말

지난해 5월,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폭로로 길환영 사장의 ‘보도 개입’이 드러났다. 메인뉴스 <뉴스9>의 내용은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 좌지우지됐고, 보도국은 대통령의 해외 방문 때마다 꼭지 수를 늘리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단지 대통령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동정 수준의 보도가 앞자리를 차지하는 일도 있었다. 정홍원 전 총리는 대정부질의에서 KBS에‘해경 비판’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전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 당시, 재난주관방송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비판 받았던 KBS는 ‘사장의 보도 개입’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구성원들은 보직과 직종에 상관없이 ‘길환영 퇴진’과 ‘KBS 정상화’를 외쳤다.

▲ 지난해 7월 28일 취임한 조대현 KBS 사장 (사진=KBS)

상황이 악화되자 KBS이사회는 6대 5로 길환영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가결했고, 청와대 역시 길환영 사장의 ‘불명예 퇴진’을 이례적으로 빨리 최종 결정했다. 1년 4개월의 잔여 임기를 채울 후임으로는 조대현 전 KBS 부사장이 뽑혔다. 조대현 사장은 지난해 7월 28일 취임식에서 자신의 포부가 담긴 PPT를 통해 △올해 적자 해소 △공정성 시비 탈피 △인사·조직문화 회복 △프로그램 혁신 △공영방송 위상과 역할 회복 등을 임기 내 5대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KBS 양대 노조를 비롯한 구성원들은 입을 모아 ‘조대현 체제는 총체적 실패’라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제2의 길환영’이라는 혹평도 나온다.

축소하고, 사라지고, 삭제하고… 바람 잘 날 없었던 ‘보도’

길환영 사장에게 ‘퇴진’을 요구했던 이들은 기자들이었다. 공영방송의 수장이 청와대와 선 긋기를 하기는커녕 앞장서서 뉴스에 손대왔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런 길환영 사장이 물러난 자리를 받은 조대현 사장에게, ‘보도공정성’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높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보도는 결코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28일, 세계일보는 대통령 ‘비선’으로 지목된 정윤회 씨가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 등 소위 ‘문고리 권력 3인방’을 주기적으로 만나 청와대와 정부 현안을 보고받고 인사 지시를 했다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감찰보고서 내용을 단독보도했다. 그간 설로만 떠돌았던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문건을 통해 확인된 것이기 때문에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보수언론마저 ‘국가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했으나, KBS는 박근혜 대통령이 문건 유출을 “국기 문란 행위”로 규정한 후에야 이 사건에 대한 보도량을 늘렸다. 심지어 KBS는 정윤회 씨를 직접 인터뷰하고도 <뉴스9>에서는 누락시키고 조응천 비서관의 발언을 전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는 “정씨의 전화인터뷰 내용을 모르는 상황도 아닌데 이 같은 기사가 나왔다는 건 해당 사안에 대한 명백한 왜곡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이라며 “언제까지 받아쓰기만 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17일에는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의 단독인터뷰 원본 영상을 MBN에 넘겨, KBS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MBN에서 나온 해프닝이 벌어졌다. KBS 기자들은 “특종을 헐값 취급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성토했고 박창진 사무장도 ‘앞으로 KBS 취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강력 항의했다. 결국 관련 보도 책임자들은 공개 사과했다.

▲ 1월 31일자 KBS <뉴스9> 리포트. <이완구 양도소득세 논란… 계약서 공개 거부>라는 제목에서 <양도소득세 논란>이라고 제목이 달라져 있다.

올해 2월에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을 단독보도했다가 후보자 쪽에서 항의했다는 이유로 보도국 간부가 담당기자와 논의도 없기 기사를 삭제해 논란이 됐다. 강선규 보도본부장은 기사가 계속 게시되는 것은 법적 소송에서 불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해 기사를 내렸다고 밝혔고, 앞으로 유사 상황이 발생할 경우 편성규약을 준수해 제작자와 협의를 거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KBS는 2달 여 만에 또 다시 ‘총리’ 앞에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이완구 전 총리가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사퇴 압박이 거셌던 지난 4월, “본인의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뉴스해설이 “온갖 의혹에 더욱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바뀐 것이다. 이완구 전 총리의 금품수수 여부가 확실치 않은데 사퇴 요구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보도본부장이 전날 밤 긴급히 ‘수정 지시’를 한 덕분이었다.

KBS는 유가족 앞에서 ‘제대로 보도하지 못해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였던 기자들의 반성이 무색하게 세월호 참사 보도에 있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노출했다. KBS는 지난 4월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조속한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추모 집회를 다루면서, 차벽트럭 18대를 포함해 총 470대의 버스를 세우고 1만명이 넘는 인원을 투입해 캡사이신과 물대포로 시위대를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을 축소 보도했다. 대신 화면에는 통행조차 불가능해 경찰버스를 흔들며 항의했던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이 등장했고, 경찰의 ‘불법·폭력 집회 엄단 계획’이 강조됐다.

일본 문서를 통해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설을 확인한 단독보도는 보수세력이 반발한 이후 원본 기사와 인터넷뉴스까지 모두 삭제됐다. 그 결과 “항상 6.25 사변 중에서도 권총을 옆에다 놓으시고 주무셨어요. 결국 싸우고 죽는다 이것이지”, “이땅에 일본인들이 오게 되면 공산당에 겨누었던 총을 그놈들한테 먼저 겨누겠다고 그러셨거든요”는 등의 원 보도와는 무관한 주장을 중심으로 한 반론 보도만이 남게됐다. KBS 내부에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격적이고 굴욕적인 반론 보도”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국정원 해킹 의혹도 KBS뉴스에서 소홀히 다뤄졌다. 국정원이 구입한 RCS(Remote Control System)가 컴퓨터 및 스마트폰 감청은 물론 단말기의 카메라와 녹음기까지 원격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대국민 감청 의혹’이 일었지만, 지난달 6일 한겨레의 최초 보도 이후 1주일이 지나도록 KBS는 이를 방송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밖에도 KBS는 메르스 악성코드는 북한 소행이라고 보도했다 4일 만에 정정하거나, 사장 선임 권한을 쥐고 있는 KBS이사회 교체 시기에 현 이인호 이사장을 부각한 보도를 해 도마에 올랐다.

“창조적인 기운이 넘치는 KBS 만들겠다”는 대개편… 과연 달라졌을까

KBS는 지난해 12월 17일, ‘대개편’ 계획을 밝혔다. 2015년 1월 1일을 D-day로 정하고 대대적인 프로그램 혁신을 하겠다는 설명이었다. 금요일 오후 9시 30분부터 0시 30분까지 프로그램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돌연변이 ZONE’을 마련한 것이 눈에 띄는 변화였으나, <미래예측버라이어티 나비효과>, <용감한 가족>, <스파이> 등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종영했다. 각각 유재석과 강호동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주목 받았던 <나는 남자다>와 <투명인간>도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 활약이 저조했다.

특히 2008년 이병순 사장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시사 프로그램 강화’ 요구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수 년만에 정규 시사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기대를 모았던 <거리의 만찬>은 정규편성에서 빠졌다. 오히려 4대 스페셜이 사라진 자리에 신설됐던 <KBS파노라마>는 2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은 올해 5월 발간된 <2014 경영평가보고서>에서 경영평가단이 “KBS에 두드러진 ‘간판’ 시사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편성 요인과 함께 시사기능 미흡으로 인한 콘텐츠 경쟁력 약화와 관련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인력과 예산의 확충, 혁신적인 기획력도 중요하지만 전혀 손색이 없는 ‘간판’ 시사프로그램을 육성하고 과감하게 프라임타임에 편성하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에 반영됐다.

최악의 인사, 일베 기자 임용, 직원 뒷북 징계 등 조직 ‘혼란’ 일으켜

조대현 사장은 취임사에서부터 인사 및 조직문화 회복을 주요 과제로 선언하고, ‘인사 청탁’은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취임 1주일도 되지 않아 이루어진 인사는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새 노조의 전신인 ‘사원행동’ 직원들에 대한 징계를 주도한 것으로 유명한 ‘노조탄압 전문가’ 금동수 씨가 부사장에, 이병순 사장 시절 KBS 대표 시사 프로그램이었던 <시사투나잇> 폐지를 주도했던 서재석 씨가 정책기획본부장에,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인해 한국연기자노동조합이 꼽은 ‘방송 5적’에 이름을 올린 바 있는 이응진 씨가 TV본부장에 선임됐다. 박근혜 후보 측 응원단이 빠진다는 이유로 TV토론 사전 생중계가 취소되는 등 대선 국면에서 편향적인 보도가 잦았던 시기, 정치외교부장을 맡았던 정은창 씨는 보도국장이 되었다.

▲ 지난 3월 30일, KBS 11개 협회가 일베 기자 임용 반대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는 모습ⓒ미디어스

올해 1월 1일자로 입사한 신입사원 가운데 극우 성향 사이트 일베에서 헤비 유저로 활동한 A 기자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져, 11개 협회가 ‘임용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음에도 조대현 사장은 정사원으로 A 기자를 받아들였다. A 기자는 전라도 비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여성 혐오 등 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공격하는 내용의 글과 댓글을 다수 쓴 것으로 알려져 KBS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남북협력기획단으로 파견 근무 가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길환영 사장 퇴진 및 KBS 정상화를 내걸고 제작거부를 했다는 이유로 각 협회장들에게 감봉, 주의, 견책 처분을 내리는가 하면, 지난해 5월 19일 출근저지투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총 9명의 직원들에게 정직과 감봉의 중징계를 1년 넘게 흐른 시점에 ‘뒷북’으로 내려 구성원들로부터 높은 반발을 불러왔다.

조대현 사장은 노조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인력 퇴출구조 확대’를 공표하거나 ‘임금피크제’ 동의 서명을 받아 비판받기도 했다. 특히 임금피크제의 경우 근로조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화로 노사 합의 아래 취업규칙을 개정해야 도입이 가능한데도 서명부터 받아 ‘충성경쟁을 시키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양대 노조의 평가 역시 혹독하다. KBS노동조합(위원장 이현진, 이하 KBS노조)은 “인사청탁하지 마라더니 측근 인사·편중인사로 주요 보직을 채웠고 프로그램으로 승부하겠다며 내놓은 ‘대개편’은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며 “잇따른 오보와 방송사고, 정제되지 않은 프로그램 제작 등으로 KBS 신뢰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어쩌다가 KBS가 보수와 진보 양진영 모두로부터 ‘수신료 아깝다’는 비판을 동시에 듣게 됐는가”라고 반문했다.

새 노조 역시 “콘텐츠창의센터 신설을 통한 1월 1일 대개편 실패, 수신료 인상 실패, 경영 실패까지 총체적인 실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보도와 방송 프로그램의 경쟁력 확보에 실패했다.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어떠한 제도개선도 경영철학도 구현해 내지 못한 무능의 밑바닥을 보여준 1년”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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