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노동개혁’을 두고 충돌하는 모양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벌개혁을 언급하면서 노동계와의 합의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은 기존 노사정위원회의 틀에서의 논의를 반복 강조하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노동개혁에 대한 의지를 반복해서 불태운다. 이 문제에 더해 국정원 해킹 의혹에 이어 권역별 비례대표제 및 의원정수 확대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려진 상태라 당분간 대치정국이 심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3일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사태를 언급하며 “노동개혁보다 재벌개혁에 대해 먼저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가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노동시장 문제로 회피할 것이 아니라 재벌 문제를 거론하고 기업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자리에서 유승희 최고위원 역시 “박근혜 정권은 노동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노동 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면서 “대기업과 재벌은 성역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요구한 사회적 대타협기구의 설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현안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청년 일자리 창출 및 노동·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추미애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대해 “총선·대선을 위한 선거 구호, 정치적 수사에 그친다면 개혁 아니라 개악만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의 원인이 노동계에 있다면서 연말까지 노동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하고 노노갈등과 세대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총투자 및 총소비를 늘리는 정책 속에서 위기에 놓인 노동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날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인제 최고위원은 “야당이 요구하는 별도의 대타협 기구가 필요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라면서 “노사정위라는 상설 대타협 기구에서 다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촉진해서 금년 안에 모든 개혁 과제를 마무리해야 한다”이라고 발언했다. 야당이 주장한 바 있는 국회 차원의 협의기구 구성을 거부한 것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야당은 지금 이슈를 더 넓게 잡고 전선을 확대하려고 한다”면서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법인세 문제 등은 여러 국회 상임위나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논의하면 된다”고 발언했고 “고용 절벽 앞에서 고통받는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시급히 노동시장의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행보에 청와대도 가세했다.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은 같은 날 ‘8월 경제정책 브리핑’에서 지난 6월 청년실업률이 10.2%에 이르렀다는 점을 언급하며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취업난을 뚫더라도 상당수가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례가 많아지는 현재 상황이 향후 몇 년간 더욱 심각해질 수 있어 위기의식을 갖고 청년일자리 대책을 추진중”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안종범 수석은 “고용보장, 연공급체계 등 과거 고도성장기의 노동시장 구조로는 더 이상 좋은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해 노동개혁이 불가피하다”면서 “노사정위원회의 조속한 복원과 노와 사가 나름 기득권을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결국 지금까지 노동문제에 있어서의 어떤 ‘원칙’으로 여겨졌던 제도들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 안종범 경제수석이 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경제관련 월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될만한 것은 저성과자 등에 대한 ‘일반해고’가 가능토록 하겠다는 부분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은 2일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합리적인 인사관리’라는 제목의 자료를 통해 정부의 밑그림을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직무능력이나 실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고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노동자들이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의 판례 등이 담겨있다. 저성과자에 대해 업무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직무재배치 등 고용유지 노력을 했음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해고는 적법하지만 사측이 노동조합원 등 특정 근로자나 집단을 미리 저성과자로 분류해 인사상 불이익을 줬을 경우는 부당하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를 근거로 한국노동연구원은 공정한 인사평가 없이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인사관리가 실현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인사평가를 인사관리와 연동해 노동자들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이 이후 노동개혁에서의 ‘가이드라인’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간 노동계는 일반해고를 가능케하는 근로기준법 조항의 개정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가져왔다. 노사정위에서 정부와 협의 과정을 밟아왔던 한국노총은 올해 초 일반해고 문제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취업규칙을 개정할 경우 근로자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한 현행 법령 조항 개정 문제에 대해 이견을 표하며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논의 테이블에서 이탈한 바 있다. 이는 사실상 정부가 ‘자유로운 해고’와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기도하는 것이며 임금피크제를 강제하기 위한 행보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게 노동계의 일반적인 정서다.

그러나 어찌됐건 정부·여당으로서는 2016년 총선 전에 노동개혁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공공·노동·교육·금융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4대개혁의 일부에서라도 성과를 냈다는 점을 앞세워 앞으로의 경기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줘야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노동개혁 문제에 있어서 특히 ‘청년세대’를 언급하고 있는 것에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중장년층을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정부·여당이 청년실업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득권에 맞서는 그림을 만들어 젊은 유권자층에 대한 일종의 ‘분리 견인’을 시도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중장년층과 고령층에서 ‘집토끼’로 분류할 수 있을만큼의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 대한 전향적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중도 공략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 아니겠냐는 이야기다.

▲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 노동개혁 관련 향후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따라서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노총과 정부의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기관 고용노동부 장관은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용자가 충분한 노사 협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게 하는 것,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것을 노동계가 반대하는 것이라면 대화를 통해서 충분히 접점을 찾을 수 있다”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에 나름의 협력 의사가 있지만,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변경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라면 노사정 협의에서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고 발언했다. 또, 이기권 장관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노동연구원 등의 자료를 인용하며 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재교육 및 재배치 등 상당히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기권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이 지난달 언론을 통해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라는 두 가지 의제를 정부가 협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노사정위에 복귀할 의사가 있다”고 주장한 것과 상충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어찌됐든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양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합의가 된다 하더라도 상황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노총과 정부·여당 사이의 어떤 공감대가 이뤄지더라도 민주노총을 비롯한 나머지 시민사회단체와 정의당 등 진보정당, 새정치민주연합 내 친노동계 인사들이 이러한 합의 내용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는 별개의 사안이다.

그러나 합의의 내용을 놓고 야권 및 시민사회 내 분란이 일어나는 것은 박근혜 정권이 반복 선택하고 있는 분리대응 전략의 시동을 가능케한다는 점에서 악순환의 반복이 될 수 있다. 결국 정부·여당의 노동개혁 의제 자체에 야권 전체가 단일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결국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를 위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국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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