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일 50회로 마무리된 KBS1의 대하사극 <징비록>. 최고 시청률 13.8%(22회), 마지막 회 시청률 12.3%(닐슨 코리아 기준)로 전작 <정도전>에 비하여 아쉬운 시청률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저 시청률과 화제성만으로 <징비록>을 <정도전>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 작품이 오늘의 현실에 남긴 시사점이 만만치 않다.

역사를 징계(懲戒)하여 현실을 꾸짖다

이제 와 하는 말 같지만, 애초 <징비록>은 시청률이 높이 나올만한 드라마라 보기는 어려웠다. 이미 대하사극의 소재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임진왜란이라는 소재. 제 아무리 <명량>이 인기를 얻었다 해도, 아니 오히려 영화 <명량>이 인기를 얻어서 어쩌면 더더욱 식상해진 역사적 사건을 대하사극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징비록>은 태생적 핸디캡을 가진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징비록>이 붐을 일으킬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바로 이 드라마가 '징비록'이기 때문이다. '징비록'은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삼간다'는 시경의 문구에서 따온 제목이다. 임진왜란 당시 정치 현장에서 난을 겪은 서해 류성룡이, 정권으로부터 소외된 이후 칩거하며 적어간 전란의 속살이다.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전란의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풍부한 사료와 경험을 밑바탕으로 써내려간 징비록은, 말 그대로 '객관적' 서술에 방점이 찍힌다. 심지어 ‘징비록’은 임진왜란에 대한 저술 중 <선조실록> 등의 실록이나 중국과 일본의 그 어떤 사료보다도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는 저술이다.

정권의 중심에서 임진왜란을 겪었으면서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그 역사의 소용돌이를 집필했다는 의미는, 결국 징비록의 첫 글자 혼날 징처럼 자신이 몸담은 역사를 혼내고 경계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 선조와 독대한 류성룡은 선조에게 일갈한다. 전쟁이 끝난 이 마당에도 선조는 한 치의 반성도 없이 자기변명만 늘어놓는다고. 바로 이렇게 자신의 주군과 독대한,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단 한번의 정치적 구원의 기회를, 꾸짖음과 반성에의 독촉으로 마무리한 류성룡의 모습이 '징비록'의 입장이요, 드라마 <징비록>의 관점이다.

드라마 <징비록>이 바라본 임진왜란은 어떤 것이었을까? 임금을 비롯한 정치 관료들은 자기 안위만 생각하고, 그런 지배층에 의해 정치는 당파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스스로 국난의 위기로 빠져들어 간다. 심지어 전쟁의 와중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임금은 적이 눈앞에 오자 싸우는 대신 도망치기에 바빴고, 양반들은 적에게 나라를 넘겨줄지언정 한 명의 군사라도 더 도모하기 위해 공을 세운 노비를 면천시켜 주겠다는 자구책에 몸을 던져 반대한다. 잠시라도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 사이에 정권은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다시 움직이고, 임금마저 의병들의 불의의 반란을 경계하며 제거하는 등 협잡을 일삼는다.

이렇게 정권이 계파와 임금의 이해에 따라 춤을 추는데도 7년의 전란을 버텨낸 힘은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난 강직한 세력과 우국충절의병, 그리고 자신의 땅을 지키고자 떨쳐 일어난 양민과 노비들이다.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적들과 소통하고자 할 때,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심지어 정권에 반하며 지켜냈다. 하지만 도망치는 적군을 한 명이라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마지막 해전을 벌이던 이순신이 그곳에서 전사하고, 정권 내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기는 전쟁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류성룡마저 전쟁 후 '토사구팽'당하는 것으로, 그 '결사항전'의 의는 꺾이는 것으로 드라마 <징비록>은 끝난다.

그렇게 드라마 <징비록>은 철저한 징계의 역사를 다룬다. 전쟁의 와중에서조차 아니 적군을 코앞에 두고서도 자기 계파의 이해, 자신의 이해에 따라 춤을 추는 정부 각료, 임금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 냄으로써 오늘을 경계한다. 더구나 현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더더욱 현실감 있게 과거를 오늘에 되살려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최근 미중일 세 나라의 이합집산 속에 외교적 입지가 애매해진 우리의 처지와 공교롭게도 비교가 된다. 임진왜란 당시 왜와 명 사이에서 무능력한, 하지만 철저히 동아시아 세력 판도에 따라 그 운명이 갈려지는 한반도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냄으로써 또 다른 현실의 반추를 삼았다. 드라마 <징비록>에서 강건한 류성룡이나 우직한 이순신보다 노회한 선조가 돋보였던 이유이다.

그리고 정직하고 강직한 의병장과 같은 인물들은 결국 역사와 정권의 희생양으로 마무리되어 비애를 남긴다. 그렇게 드라마는 우리가 숭앙하고픈 충신 대신, 현실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역사 속 비겁자를 내세워 현실을 경계한다. 그렇게 승리와 영광의 역사 대신 실패와 치욕과 비굴의 역사, 그럼에도 그 속에서 잡초처럼 피어나는 끈질긴 힘을 그려내려고 했던 드라마 <징비록>은 애초 다수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기에는 고집스런 작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정권의 무능, 지배층의 자기 이익만이 우선되는 현 시점에서,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현실에의 경계가 두드러졌던 '수작'이라고 평가된다. 그런 의미에서 <징비록>의 의의가 짚어져야 한다. 그저 얄미운 인간 선조가 아니라, 무능한 당파의 권신들이 아니라, 무기력한 조선의 외교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현실의 모습에 다름 아님을 <징비록>은 내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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