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창업주 일가의 경영권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주말동안 언론은 신씨 일가들이 모여 가족회의를 가진 자리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거의 ‘쪽대본’ 수준의 속보로 전하는가 하면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의 일본 언론 인터뷰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입장을 밝히는 동영상 내용 등을 앞다투어 보도하며 열을 올렸다. 롯데그룹에 대한 국적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신격호 회장의 두 아들은 서로를 “히로유키”, “아키오”라는 일본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나 언론은 ‘신동주’, ‘신동빈’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친절하게 번역해 전하고 있다.

오늘날 한 기업이 어느 국가의 소속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국경을 넘는 초국적기업이 구설에 휘말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겨레는 3일 지면에서 “외국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시대에 기업의 소유구조만으로 어느 나라의 기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롯데가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다만, 한겨레는 부가가치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임금과 세금은 한국의 노동자와 정부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지만 기업이 거둔 이윤은 주주의 몫이라는 점 역시 지적하고 있다. 일본 주주들도 자신의 몫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짚은 것이다.

이 문제를 포함해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는 다수 언론에 의해 비판받고 있다. 지배구조의 정점에 광윤사라는 일본회사가 있고 이외에도 12개의 L투자회사가 이후 상황을 좌우할 수 있는데 이들의 소유구조가 정확히 밝혀진 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광윤사의 경우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로 신씨 일가가 롯데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이런 구조를 통해 그룹 총수가 0.1%도 안 되는 지분을 갖고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후진적 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롯데그룹 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기업 거의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은 재벌 전체에 대한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물론 강력한 오너십으로 유지되는 대기업집단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된 이후 일부 언론은 존경받는 재벌의 예로 스웨덴의 ‘발렌베리 일가’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들은 스웨덴 주요 대기업 14개를 소유하고 150년 동안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는데 경영에 적합한 후계자를 가문 내에서 혹독한 검증을 거쳐 스스로 발굴하고 노동자들을 기업 경영의 파트너로 대우하며 고율의 법인세를 납부하면서도 공공사업 투자 등을 통한 부의 사회 환원을 게을리하지 않아 사회적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룹 총수가 최소한 한 번 이상 감옥에 갔다 오는 한국의 재벌과는 존재의 토대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이 31일 오후 서울 성북동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집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이 28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두 번째 부인이자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형제의 모친인 시게미츠 하츠코(重光初子·88) 여사가 30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 공항을 빠져나가는 승용차에 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물론 사회구조가 완전히 다른 북유럽의 사례를 한국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의 재벌 체제가 남다른데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러모로 유사성을 가진 일본의 체제를 보아도 그렇다. 일본 역시 ‘자이바츠(財閥)’라고 불리는 대기업집단이 전체 경제를 좌우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본의 재벌은 근대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불하받은 산업을 바탕으로 규모를 키운 사례가 다수다. 일본의 3대 재벌이라 불리는 미쓰비시(三菱), 미쓰이(三井), 스미토모(住友)가 모두 이런 경로를 거쳤다. 미쓰비시의 경우 해운업과 관련산업을 토대로 했고 미쓰이는 직물과 금융산업을, 스미토모는 광업과 제련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이는 독재정권과의 협력적 관계를 통해 정부 발주 공사 등을 독점하면서 자본을 축적한 한국 재벌의 사례와 유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의 재벌 중심 체제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상당 부분 해소된다. 재벌기업이 2차 세계대전을 위한 군수경제에 전적으로 협력하면서 패전 이후 ‘개혁의 대상’으로 정조준됐기 때문이다. 미쓰비시가 태평양전쟁에서 활약한 ‘제로센’을 설계하고 전함인 ‘야마토’를 만들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패전 이후 일본을 간접통치한 미국 주도의 연합군최고사령부(GHQ)는 전쟁 책임의 일부를 재벌 기업에 물어 이의 해체를 도모했다. GHQ는 일본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키게 된 원인의 배경에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로 인한 국내 소비시장의 위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장확대의도가 있었고 이때문에 재벌 스스로가 군부와 결탁해 전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게 됐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재벌들은 본사 역할을 하는 지주회사를 해체하는 계획을 스스로 작성하고 실행해야 했다. 1947년에는 10대 재벌의 오너 일가 1천500명이 지위를 박탈당했고 1948년에는 새로 제정된 ‘재벌동족지배력배제법’에 따라 이들을 포함한 기업 오너 일가가 경영에 복귀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위상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의 배후 역할로 격상되면서 이전의 재벌 해체 계획은 철저하게 실행되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의 조치가 재벌 일가의 수직경영에 큰 타격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후 일본의 대기업들은 ‘게이레츠(系列)’로 불리는 기업집단의 형태로 변모한다. 재벌 일가를 중심으로 한 가족경영의 형태가 아니라 각 계열사들이 서로의 지분을 소유하고 비교적 수평적 관계로 형성돼있는 ‘사장회’를 통해 주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일본 특유의 법인자본주의를 안착시킨 것이다. 롯데 경영권 분쟁에서 일본 롯데홀딩스가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 회장의 대표이사 직위를 해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풍토가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한국 재벌의 경우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를 변화시킬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오히려 독재정권이 재벌 총수와 긴밀하게 결탁하면서 왜곡된 지배구조는 더욱 강화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 이후 기업인들을 만나 경제부흥에 직접적으로 협력을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격호 총괄회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이후 “이런 사람이 리더라면 한국에 투자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해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에피소드도 여기에 해당한다.

재벌이 오늘날의 구조를 갖추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박정희 정권이 1972년 공표한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이른바 8·3조치로 볼 수 있다. 외국 차관을 통한 경공업 위주 산업에 집중하던 기업들은 부채의존도가 80%에 이르러 사채를 끌어다 쓸 정도의 한계에 부딪쳐 왔는데 정부가 기업의 사채를 사실상 동결하고 금융기관이 기업 구제에 나서도록 한 것이었다. 10월 유신 다음해인 1973년 전격적으로 ‘중화학공업화’가 선포되면서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막대한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중화학공업화에 협력하는 기업들에 ‘국민투자기금’을 통한 자금 조달을 가능케하고 세제 혜택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대기업들의 행태는 당시 재무부에서 근무하고 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회고에 잘 드러나 있다. 강만수 장관은 자신의 저서에 “돈을 빌렸다고 사채 동결, 중화학공업을 한다고 면세, 수출하고 투자한다고 저리의 정책자금 대출, 증자한다고 증자소득공제, 배당한다고 법인에게 법인 간 수입배당 세액공제를 하고 주주에게는 내지도 않은 법인세를 낸 것으로 간주하여 배당세액공제를 해주었다”고 적고 있다. 법인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얘기다.

물론 ‘외세에 의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는 것은 아니다. 보다 철저한 주주자본주의적 원칙의 적용이 재벌개혁의 첩경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외부적 충격에 준하는 어떤 강력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오너 일가의 비합리적 경영이 국가 경제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롯데 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아직 그 같은 피해에까지 도달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러한 분쟁의 리스크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표면화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발전모델이 한계에 부딪쳤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표현될 만큼 국가의 산업정책이 더 이상 유의미하게 작동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래다. 일본과 한국에 걸친 롯데 경영권 분쟁 사태는 이 위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 봐야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언론이 오너 일가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보이며 이를 경쟁적으로 중계하기보다는 롯데그룹이라는 대기업의 미래를 차분하게 전망하고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조언해야 한다. 또, 재벌 중심 경제체제의 한계를 짚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장을 여는 것도 언론이 맡아야 할 일이다. 언론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철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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