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에서 카이가 연기하는 양치성은 구한말 머슴의 자손으로 살아가던 인물이다. 머슴이라는 신분제 때문에 불만은 있었지만 신분제에 항거하며 살아가던 인물은 아니다. 그러다가 조선은 일본에 합병이 된다. 이때가 양치성에게는 하나의 기회가 된다. 일제의 앞잡이를 자청해 조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편을 드는 매국노의 길을 걷는다. 일본에게 충성함으로 머슴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가 바로 양치성이다.

<아리랑> 무대에 오를 당시 카이는 <팬텀>과 병행하며 두 무대를 번갈아 소화하고 있었다. 성악을 전공한 터라 연기적인 노력만 기울이면 되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리랑>을 통해 뮤지컬에 대한 책임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카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재능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달음박질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배우라는 걸 인터뷰를 하면서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 뮤지컬배우 카이 ⓒ신시컴퍼니
- 양치성이 악역임에도 캐스팅 제의를 수락한 이유가 궁금하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양치성이 악역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양치성은 <팬텀>과도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타의에 의해 버려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불쌍하고 가엾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치성의 내면적인 갈등 구조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은 일본인에 의해 노예처럼 살아왔지만 지금 우리들도 휴대폰과 같은 첨단 기기의 노예일 수 있다. 첨단 기기 혹은 시스템의 노예가 되기 쉬운 요즘 세상에서 나는 어떤 마인드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각오를 갖게 만드는 뮤지컬이 <아리랑>이기도 하다.”

-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내놓은 창작뮤지컬이 <아리랑>이라 출연하는 배우 입장에서 어깨가 무겁지는 않았는가.

“지금까지는 제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 (뮤지컬) 농사를 지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농사 기반이 바닥이 나버렸다. <팬텀>을 하면서 다 써버렸다. 그러다가 (뮤지컬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 <아리랑>이다. 그렇다고 <아리랑> 이전 뮤지컬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한 건 아니다.

<아리랑>은 내용 자체가 깊은 뮤지컬이다. 연출님을 비롯하여 스태프와 배우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깊다. 여러 각도로 작품을 다가가다 보니 인물을 파악하고 동선을 파악하는 데 있어 큰 숙제를 안게 되었다. 지금도 한 회 한 회 무대에 오르는 게 너무나도 어렵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로서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각오가 생긴다.”

- 겸손한 답변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성악을 전공해서 연기만 더하면 되는 유리한 고지에 있지 않았는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악을 전공했다는 건 분명 장점이다. 가령 역도선수가 힘이 세다는 건 분명 장점이겠지만 역도는 힘만 가지고 되는 운동이 아니다. 힘이 좋은 선수는 많다. 90%가 테크닉이다. 역기를 드는 타이밍이나 감각이 남달라야 한다. 성악을 전공했다는 건 장점이지만 노래 잘하는 배우는 대한민국 뮤지컬계에 많다. 관객 앞에서 배우가 진실된 자세와 연기를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지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뮤지컬 ‘아리랑’ ⓒ신시컴퍼니
- 그럼에도 뮤지컬 데뷔작 <사랑은 비를 타고> 때보다 많이 발전했을 텐데.

“뮤지컬 데뷔작을 <사랑은 비를 타고>라고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무대에 처음 오른 건 <사랑은 비를 타고>가 맞지만 정식 데뷔작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라고 이야기한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할 때는 지금보다 뮤지컬에 대해 반의 반도 몰랐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너무 좋아해 주셨다. 너무 고마웠다.

뮤지컬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저 스스로가 퇴보하는 느낌이 든다. 뮤지컬에 대해 알아갈수록 제 단점도 보이기 때문이다. 단점을 채우려는 욕심이 든다. 관객이 보기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때보다 지금이 잘하는데?’하는 평가를 내릴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배우로서 값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책임감이 많아진다. 그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 바로 <아리랑>이다.”

- <팬텀> 공연 중 류정한씨가 1막에서 다쳐서 2막에 카이씨가 류정한씨를 대신하여 급하게 투입된 적이 있다. <아리랑>을 연습하다가 <팬텀> 공연장으로 달려간 건가?

“당시 <아리랑>은 연습 초반이라 오후에 연습을 마쳤다. 운동을 마치고 식당에서 저녁 식사로 쌀국수를 주문한 상태였다. 그 와중에 <팬텀> 측으로부터 ‘갑자기 큰일이 생겼다. 류정한 배우가 다쳤다. 어디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얼른 공연장으로 달려갔다. 택시에서 기사 분에게 ‘제가 노래하는 사람인데 급한 사정이 있어서 차 안에서 발성을 좀 하겠습니다’하고 양해를 구하고 택시에서 발성 연습을 하고 바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아리랑> 연습을 마친 다음 운동을 해서 몸이 풀린 상태였다. 메인 캐스트를 소화하려면 항상 목 상태가 중요한데, 다행히 <팬텀> 공연을 대비해서 운동하기 전에 목을 릴렉스한 상태였다. 공연이 없어도 올라갈 준비가 되어야겠다는 마인드를 항상 갖고 있어서다. 몸과 목 둘 다 풀린 상태여서 다행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팬텀은 분장이 따로 필요 없다. 옷만 갖춰 입고 무대에 올랐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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