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25) 경향신문 1면은 잔잔한 '압권'이다. 시각을 현혹하는 사진이 실리지 않았다. 매일 가판에서 발행부수를 다퉈야 하는 상업지이다. 큼지막한 1면 사진은 신문의 얼굴이다. 속된 말로 하루치 장사 밑천이다. 그걸 박지 않았다. 이 무미건조한 텍스트의 풍경은 정부의 보증과 구제 금융을 통해 겨우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씨티은행의 읍소형 1면 광고와 어울어지면서 더욱 극적으로 돋보였다. 단연, 오늘 경향신문 1면은 이례적이었다.

사진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차지한 것은 '흐릿한' 상자로 둘러싸인 '사고'였다. 제목은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이다.' 경향이 준비한 특별기획이란다. 앞으로 연재될 내용을 알렸다. 1면 반을 털어서.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연재의 알림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 사회는 언젠가부터 시장 만능주의를 쫒았습니다. 시장만이 한국을 구원할 것처럼 시장주의를 갈구해왔습니다."

당차고 신념 있는 문장이다. 중간쯤을 살펴보자.

"여전히 미국 모델을 숭배하는 이명박 정부는 무너진 시장만능 신화의 잿더미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더 많은 규제 완화의 무질서와 무한경쟁의 공포를 불러내고는 그 걸 선진화, 자율화라고 부릅니다…(중략)…한국 사회는 어느새 시장만능주의에 중독되어 버렸습니다. 이대로 내달릴 수는 없습니다. 이 허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글이 일간지 1면의 글이 맞나,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된다. 소름이 돋는다. 경향의 포부는 이렇게 이어진다. 마지막 즈음이다.

"경향신문은 이달부터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라는 장기 연재물을 게재, 미국 금융위기의 성격과 금융 자본주의의 모순을 파헤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전지구적 위기의 본질을 분석할 것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가 추구해야 할 대안의 길도 모색합니다…(중략)…어떤 삶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지 고민할 때가 왔습니다. 이 연재물이 그런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우리 사회에서 활발한 토론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경향의 오늘 1면은 묵직한 고민 여러 개를 동시에 불러 세운다. 우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대중적 금기를 호명했다. 신자유주의는 어렵다. 재밌지 않다. 고로 읽히지 않는다. 그간, 오늘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를 피해 갈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지만, 애써 피해왔던 미디어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다수의 대중들은 그 말을 좋아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오해 아닌 오해 때문이다.

▲ 경향신문 11월25일자 1면 전체
변명하자면, 올드 미디어인 신문의 입장에서 그건 생존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뉴미디어 시대라고 하는 전복적인 환경에서 예측불허의 정보 소용돌이(vortex)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불안이 영혼은 잠식한다고 했던가, 꽤 오래도록 신문은 무엇보다 쉽게, 우선 재밌게 그리고 무조건 읽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반지성주의'의 덫에 빠져 있었다.

유럽의 '반지성주의'가 민중 혹은 사회적 보편의 수준을 높이 평가하는데서 유래하는 겸양의 무엇이라면, 한국 신문들의 '반지성주의'는 활자 권력으로서의 형식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 보편의 수준을 하향 설정하는 장삿속이었다.

신문은 매일 열리는 공론의 장이다. 플로어들의 토론이 아니라 정제된 패널들의 격돌이다. 사실을 도외시 할 수 없으되, 주장을 버릴 수 없는 언어의 장이다. 가장 강력한 의제설정 기능을 갖고 있는 사회적 장치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정치권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세기적인 변화라고 얘기되는 금융위기가 찾아왔지만, 신문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변변치 못하다. 단적인 예가 이른바, '미네르바 현상'이다. 신문사 별로 수백 명의 인력이 수십억의 돈을 써가며 신문을 찍어내고 있지만, 미네르바를 압도하는 것은 고사하고, 미네르바의 얘기를 이해하고 분석해내는 스텝조차 밟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오로지 관심은 미네르바가 누구인가 뿐이다. 독자가 그것을 원하는가? 정말 그게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반동적인 '반지성주의'이자, 신문의 존재이유 상실이다.

오늘 경향신문 1면은 신문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활자 권력의 최상층위로서, 의제 설정권의 핵심으로서 신문은 세상을 향해 정말 '기획'된 '무엇'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찌라시라고 불리는 포털의 정보들과 다른 '무엇'의 '활자'들을 신문이 만들어내야 한다.

최근 경향은 게으른 지배자(!) 한겨레가 20년 가까이 독점해온 '개혁언론'의 아성을 깨뜨리는 매우 참신한 기획들을 연달아 진행해왔다. 이번 기획은 조금 늦게 도착한 감이 없지 않지만, 문제의 정면을 돌파하는 담대함으로 빛나길 바란다. 경향의 이번 특별기획을 찬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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