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의 의원정수 확대안이다. 지역구 246, 비례대표 123으로 둘 사이의 비율을 2:1로 맞추자는 것이다. ‘390’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의원정수 확대안이다. 지역구 260, 비례대표 130. 역시 둘 사이 비율을 2:1로 조정하자는 내용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또한 지역구 240, 비례대표 120으로 의원정수를 60석 늘리자는 안을 낸 바 있다. 그럼 '360'이 된다.

야당의 주장은 숫자를 조금씩 달리하지만 공유하는 내용이 있다. 먼저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1로 맞추는 것이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월 제안한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 내용을 반영한 결과다. 그리고 적정한 선의 비례대표 수를 유지하기 위해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의석을 줄여서라도 지역구 의석을 늘리고, 의원정수는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론을 들먹이며 ‘절대 불가’를 앞다퉈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셀프 디스'와 ‘자아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국회가 신뢰를 얻지 못한 것에 의원 본인들의 책임이 없지 않음에도, 이를 오히려 의원정수 확대 반대 논리로 이용하고 있다. 거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일부 의원들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국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국회에서 일하는 의원들은 누굴 대표하고, 또 어떻게 뽑히는가. 왜 국회는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가. 혹시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가. 이러한 문제를 살펴봐야 의원정수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국회부터 보자.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국민의 생활에 필요한 법을 만든다. 법치국가 내에서 국민들 개개인은 법의 지배를 받는다. 크게는 외교와 통상부터, 노동, 기업, 복지, 작게는 주차 딱지 한 장까지 법으로 규정한다. 또 일상적인 생활을 규정하는 법뿐만 아니라 사회 현안에 대응하기 위한 법도 만든다. 예컨대 ‘세월호 특별법'과 같이 ‘특별’이 붙는 법과 ‘황교안법'처럼 사람 이름이 붙는 법 말이다.

▲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직선거법심사소위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모두 잘 아는 것처럼, 법은 평등하지 않다. 법의 적용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 법 자체도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세법을 예로 들면, 최고세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 소득구간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따라 울고 웃는 사람이 생긴다. 그야말로 갈등의 복판이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당의 강령과 이념, 이해당사자의 의견 등을 종합해 법을 만들고 고치는 것이 의원들의 역할이다. 그래서 그들을 국민의 대표자라 부른다.

우리는 국회의원을 이러한 조건에 맞게 선출해야 한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갈등을 잘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 제도에서는 246명의 국회의원을 지역에서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선출한다.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 각종 분야의 대표성을 갖는 의원은 54명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의 갈등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의원이 지역 대표로 뽑힌 246명의 의원들인지 의문이다. 이 사회의 가장 첨예한 갈등이 246개로 갈라진 지역 간의 갈등이 아니라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편, 국회의 신뢰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4년 8월에 <리얼미터>가 진행한 ‘주요기관 국민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국회의 신뢰도는 2.7%다. 상대평가라는 점을 감안해도 처참한 수준이다. 주요기관 중 국회 밑에는 검찰(2.5%)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 <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사회통합 및 국민행복 인식조사' 결과도 처참하긴 마찬가지다. 입법부에 대해 ‘매우 신뢰한다'는 의견은 1.0%에 불과하고, ‘신뢰한다' 16.4%를 더해도 17.4%밖에 되지 않는다. 국회를 믿는 국민이 10명 중 2명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의원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해서? 일면 맞는 얘기다. 누가 봐도 무능한 의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의원들의 경력과 행적을 살펴보면 굉장히 훌륭해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 의원만 되면 무능해지는 구조가 있는 게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들 법하다.

일단 국회의원이 되면 2개 이상의 상임위원회 위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각종 특별위원회 업무도 맡아야 한다. 그래서 각 의원마다 적으면 1~2개, 많으면 3~4개의 위원회를 챙겨야 한다. 한 위원회가 맡은 업무 범위가 적지도 않다. 예를 들어보자.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소관은 다음과 같다. 국민안전처, 인사혁신처, 행정자치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방자치단체. 하나하나가 하나의 상임위를 꾸려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데 이 모두를 21명의 의원들이 챙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의원들 6명 중 5명은 지역구 당선자다. 지역구를 챙겨야 한다. 비례대표 초선의원이라 해도 재선을 위해서는 지역구 다지기가 필요하다. 도대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새벽 같이 일어나 유권자를 만나야 하고, 각종 위원회들을 챙겨야 하며, 행사에 인사도 다녀야 한다. 의정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국회를 신뢰하지 못한다. 악순환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의원정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의원 개개인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업무를 구조적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상임위원회도 최대한 쪼개 의원들이 한 분야의 의정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들의 기대에 국회가 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또 지역 대표성이 아닌 각종 대표성을 지닌 의원의 수를 늘려야 한다. 이는 비례대표 의석 확대로만 가능하다. 지역 대표들은 지역을, 직능 대표들은 직능을, 계급 대표들은 계급을, 소수자 대표들은 소수자를 대변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 모두가 지역을 다질 필요는 없는 일이다. 지역으로 대표되지 않는 여러 갈등의 축들이 국회에서 드러나게 해야 한다.

369, 390, 360. 숫자는 다르지만 방향은 옳다. 의원정수와 비례대표 확대가 필요하다. 이는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넓히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지역을 기반으로 기득권을 쥔 현직 의원들에 대한 도전이다. 단 한걸음이라도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진보정치, 그 다음] 더 찾아보기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