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개봉한 <암살>은 최동훈 감독의 전작들과는 상당히 결을 달리하는 영화다. 한국의 그 어떤 감독들보다 ‘오락성’을 분명하게 추구했던 최동훈 감독, 그의 영화하면 떠오르는 특징은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물들 간의 배신과 음모에서 빚어지는 유쾌한 리듬감이었다.

최동훈 감독 영화의 캐릭터들은 한마디로는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면모가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고, 한 몫 단단히 챙기기 위해서 배신을 밥 먹듯이 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의 속을 도무지 알 수 없고, 살기위한 배신이 난무한 최동훈의 세계에서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일 뿐이다. 이것이 최동훈 영화의 매력이자 그만이 구현할 수 있는 장기였다.

하지만 <암살>에서 최동훈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포기하는 의외성을 보여준다. 물론 <암살>에도 최동훈 감독의 특기인 배신과 음모가 등장한다. 그러나 핵심적인 키를 주고 있던 염석진(이정재 분)의 정체가 일찌감치 드러나 버렸고, 염석진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조국을 독립시키겠다는 의지가 너무나도 강한 우직한 투사들이다. 훗날 안옥윤(전지현 분)을 흠모하게 되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의 변화도 초반부터 예상 가능할 정도다.

최동훈 영화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 <암살>. 그나마 염석진 정도가 기존 최동훈 영화에 등장했던 ‘안티 히어로’들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고 하나, 그가 가진 이중적인 면모는 어디까지나 정의로운 주인공들에 의한 ‘척결대상’일 뿐이다.

최동훈의 전작들과 달리 좋은 놈과 나쁜 놈을 명확히 구별시킨 것도,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다. 안옥윤, 속사포(조진웅 분), 황덕삼(최덕문 분), 그리고 김구, 김원봉(조승우 분) 등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쓰는 영예로운 존재들이고, 그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타켓들은 반드시 없애야할 악당들이다. 이와 같은 뚜렷한 선악 이분법적 구분 덕택에 <암살>은 그 어떤 최동훈 영화들보다 훨씬 더 쉽게 다가온다.

그러나 최동훈만의 캐릭터 구현을 사랑했던 관객들에게는 두고두고 아쉬울 법하다. 도대체 최동훈 감독은 자신의 최대 장기를 포기하는 모험을 강행했을까. 1930년대,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고려할 때, 최동훈의 선택은 전략적 후퇴였다.

영화는 조국을 힘으로 짓밟은 악인들을 처단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열사의 숭고한 희생으로 시작된 오프닝부터 막이 내릴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드는 독립투사들의 결연한 모습을 강조한다. 다소 사족으로 느껴지는 안옥윤의 개인사도,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의 애절한 로맨스도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이들의 결연한 의지를 가리진 못했다.

오직 목에 걸린 현상금밖에 몰랐던 하와이 피스톨의 뜬금없던 변화도 충분히 납득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의를 위해 죽음 앞에서도 결연할 수 있는 의인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

‘광복’이라는 완전하지 않은 독립 이후 사이비 열사들이 자신도 목숨을 내걸고 조국을 위해 싸웠다고 뻔뻔하게 외치고 있을 때, <암살>은 조국을 위해 헌신하다가 이름 없이 죽어간 진짜 독립투사들을 보여준다. 그것이 <암살>이 2015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전부다.

최동훈 영화라고 하기엔 캐릭터 구현이나 이야기 구성 등 완성도에 있어서 다소 허술한 점을 남긴 범작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극적인 완성도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한 힘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최동훈 특유의 세련된 재단 대신 투박함이 넘쳐 흘렸고, 그럼에도 답답한 가슴을 잠시나마 뻥 뚫어주는 영화, 2015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암살>은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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