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방미행보가 화제다. 미국을 갔다는 것 자체도 평가의 대상인데 가서 한 일들이 상식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절을 남발하고 외교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하는 등의 행동에 대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25일 출국했다. 다음달 1일까지 미국의 주요 정관계 인사 및 학자, 교민 등을 만난다는 계획이다. 김무성 대표는 26일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전 참전용사들과의 간담회에서 큰 절을 했다. 김무성 대표는 “존경하는 어른을 향해 큰절을 하는 것은 한국의 오랜 관습”이라면서 자신을 수행한 김정훈 정책위의장 등을 연단 위로 불러 함께 절을 했다. 김무성 대표의 큰절은 27일에도 이어졌는데,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있는 초대 미8군 사령관 월턴 워커 장군의 묘 앞에서였다. 김무성 대표는 워커 장군이 낙동강 전선을 지켰다면서 “우리나라를 살려주신 분들에게는 절을 백번 해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김무성 대표는 또 28일에는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이승만을 우리의 국부로 봐야 한다”면서 “진보좌파의 준동으로 대한민국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고 말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는 이렇게 주장하면서 “김구 선생을 존경하지만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맞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박정희·김대중 대통령도 과보다는 공을 훨씬 평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미국을 방문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한반도 전문가와의 오찬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무성 대표는 이날 한국특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역시 중국보다는 미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면서 “미국은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동맹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발언해 외교적인 고려가 없는 발언을 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 본인이 과거 “안미경중”이라고 말하기도 한만큼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민감한 외교적 사안인데도 크게 부담갖지 않는 태도로 쉽게 말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가 이런 일련의 행보를 감행한 것은 무엇보다도 ‘대권’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김무성 대표는 여권의 흔들리지 않는 지지율 1위의 대권주자로서 그간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지난 국회법 개정안 정국에서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서 나름의 역할을 통해 사태를 풀어낸 이후 그의 이러한 입지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미국 방문 일정을 선택한 것 자체가 대권주자로서의 영향력을 더 확대하겠다는 신호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큰절’과 중국에 대한 언급으로 나타난 무리수들 역시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로 볼 수 있다. 김무성 대표가 비록 흔들리지 않는 1위를 고수하고는 있지만 그의 정치적 기반이 강력하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돌아온 탕아’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좌장’으로 불리다 친박 집단으로부터 이탈한 이후 ‘배신자’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보수층은 김무성 대표에 대한 의구심을 씻어내지 않고 있다.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부산경남지역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과 같은 야권의 경쟁자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대구경북지역의 확고한 지지를 얻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즉, 김무성 대표의 잇따른 ‘무리수’는 이념으로 보면 보수, 지역으로보면 대구경북, 세대로 보면 50대 이상 고령층으로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에 어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단 집토끼를 확실히 잡아놓은 다음에 중원공략에 나서는 게 순서에 맞다는 것이다.

특히 김무성 대표의 미국 편향적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할 수 없는 말을 대신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이 반대를 무릅쓰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전제 조건인 ‘안보법제’를 날치기 처리하면서 미일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좋은 상황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 및 일본과 라이벌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은 9월에 진행될 승전 70주년 기념 퍼레이드의 참석을 놓고 일본과 외교적 줄다리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지만 한국의 경우 일본과의 관계도, 중국과의 관계도 특별히 진전될 것 없이 멈춰있는 상태다.

즉, 이러한 상태에서는 반드시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정권의 유력인사가 외교적으로 무언가를 시사할 수 있는 발언을 해야만 하는 때라고도 볼 수 있다. 김무성 대표가 28일 미 국무부 대니얼 러셀 동아시아 차관보 등을 만나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종전 70주년 기념 연설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인식의 진전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전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김무성 대표가 북핵 문제에 대한 ‘창의적 대안’을 언급한 것 역시 이런 상황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무성 대표는 27일(현지시간) 우드로윌슨 센터에서의 연설을 통해 “한미 양국이 함께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현실적 요구를 제시하도록 유도하는 외교안보적 창의적 대안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창의적 대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비핵화 원칙을 넘어서는 경제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니겠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당사국이기 때문에 여당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미국의 정책결정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만한 종류의 것이다.

▲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5웛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사이버안보'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김무성 대표와 존 케리 국무장관의 만남이 무산된 것은 미국이 당분간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외교력을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존 케리 장관 측은 이란 핵협상과 관련한 의회 보고가 늦어졌다는 이유로 김무성 대표와의 면담을 불발시켰는데, 이는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서 현재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할만하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일부 인사들까지 반기를 들고 나서는 상황에서 이란과의 핵 협상 결과를 지켜내기 위해 정신이 없는 분위기다. 이란 핵 협상 결과에 격분한 이스라엘이 들고 일어나면서 미국 내 여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기밀정보를 넘긴 혐의로 30년째 복역 중이던 조너선 폴라드를 오는 11월 석방하기로 결정하는 등 ‘달래기’에 나서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곱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3월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핵 협상의 결과로 이란이 북한처럼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렇게까지 꼬인 상황에서 미국이 북핵 문제에까지 나설 수는 없다. 김무성 대표의 존 케리 국무장관 면담 불발은 그가 실제로 스스로를 “죄수”가 된 신세라고 자조한 것처럼 의회에서의 사정이 작용한 것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외교 전략에서 현재 한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로 추락해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란 핵 협상이 오바마 대통령의 바람대로 처리되더라도 이미 시작된 대선 정국에서 미국이 북핵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을 모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동아시아의 문제는 동아시아 국가들끼리 티격태격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외교 카드를 모두 상실한 한국으로서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하지만 집권 여당 대표가 극우적 행보를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무망한 일이다. 그러니 김무성 대표의 ‘방미 무리수’를 꼭 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친미 후보’를 자처하는 것은 오히려 김무성 대표의 외교안보적 역량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할 뿐이다. 사람들의 머릿 속에는 아직도 “북한은 핵보유국”이란 발언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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