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약을 먹으면 몸통이 갑자기 집 한 채만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콩알만해지도 하는 세상이다. 그 약은 재벌기업의 달콤한 유혹, 국가권력의 공포스러운 위협이 성분이다. 그 약은 없는 죄도 집 두 채만하게 만들기도 하고, 있는 죄도 한 줌 먼지로 만들기도 한다. 최근 사법부가 그 약을 많이 먹고 있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몸의 변화가 상황을 해결하거나 서러운 노동자 서민의 삶을 바꾸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력에는 도움이 될 지언정!

지난 7월 22일 부산고등법원 형사 2부(재판장 박영재)는 울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벌인 2010년 11월 공장 점거 파업과 관련해 최병승에게 '업무 방해 방조죄'를 인정해 벌금 400만 원을 판결했다. 1심에서 "최병승은 비정규직지회의 임원이 아니었고, 현장에 있지도 않았으며, 점거 농성을 결정하는데 공모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하였던 것을 기각하고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 2013년 8일 8일 현대자동차 송전철탑 농성을 해제하고 철탑에서 내려온 천의봉(왼쪽)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과 하청근로자 최병승씨가 철탑 앞에서 얼싸안고 있다. 이들은 뒤로 보이는 철탑 중간의 빨간 천막에서 296일 동안 고공 농성을 벌였다(사진=연합뉴스)
이유도 창의적이다. 그가 농성장에서 지지발언을 했기 때문이란다. 재판부는 "최병승은 비정규직지회의 상징적 인물로서 조합원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지발언을 한 정치인들도 있었으나 그들에게 '업무방해 방조죄'를 적용하지는 않는다. 명백히 최병승으로 상징되는 사내하청 불법파견 철폐운동을 겨냥한 판결이다. 최병승은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근로자로 해고되자 부당해고 싸움을 했고 대법원은 2010년 7월22일 사내하청노동자들을 현대차가 불법파견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판결했다. 그는 불법파견을 법적으로 인정받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영향력을 미칠 만큼 유명해진 것은 2012년 송전탑 고공농성 때문이다. 2010년 지지발언할 당시에는 파급력을 미칠만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2년 후에 유명해졌으니 파급력이 있다고 재판부는 '타임머신형 판결'을 내렸다. 현재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불법파견을 합법으로 둔갑시키는 사내하도급법을 만들려 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시점이기에 더욱 문제적인 판결이다.

국제인권기구도 우려했던 업무방해죄

형법 314조의 업무방해죄는 그동안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은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다양한 법적 물리적 제재로 노동자들은 해당 권리를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2009년 11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약칭 유엔사회권위원회)는 한국정부에게 '파업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수단인 업무방해죄 적용'을 우려하며 시정을 권고하였다.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는 행정부만이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가 이행해야 하는 사항이다. 하지만 사법부는 여전히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정부와 기업의 이해에 맞춘 판결만을 하고 있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유엔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 마가릿 세카기야는 2014년 3월에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보고서를 채택하면서, 업무 방해와 같은 형법의 조항들을 이용해 파업권을 빈번하게 범죄화되는 현실을 우려하였다. 그는 2013년 당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병승과 천의봉을 방문해 조사하기도 하였다.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70. 그러나, 위 부분에서 언급되었던 동 법에서의 ‘노동 쟁의’의 협소한 정의(제 2조 제5항)에 더해, 특별보고관은 방문 중 그러한 권리들의 제한적인 해석으로 인해 파업이 종종 불법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영상의 권리’로 분류되는) 정리해고, 공장 이전, 하청에 반대하는 파업은 종종 그들의 노동조건과 경제적, 사회적 권리들에 미치는 영향에도 불구하고 불법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조합 혹은 노동조합원에게 ‘업무 방해’에 대한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만연하다. 이러한 상황은 특별보고관이 특히 우려하는 것으로, 이는 단순히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활동들을 범죄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활동에 오명을 씌우고 다른 사람들이 노동권을 주장하는데 합류하는 것을 저지하기 때문이다._25차 유엔인권이사회,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 한국방문 보고서 중

유엔 인권기구에서도 업무방해죄가 어떻게 악용되는지를 알고 있지만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요지부동이다. 더구나 보수 정권 들어서 업무방해죄가 노동쟁의만이 아니라 집회시위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나 기업을 비판하는 피케팅을 하거나 유인물을 돌려도 업무방해라며 기소되고 이를 근거로 정부와 기업은 해당 시민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강정해군기지 반대 싸움이나 밀양 송전탐 반대 싸움에서 주민들과 활동가들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엄청난 벌금을 부과했다. 보고서는 이 부분도 지적했다. “형법 제 314조가 시위자에 대해 빈번하게 사용됨에 따라 평화적 집회에 대한 권리 행사가 제한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며 시정을 권고했다.

따라서 이번 최병승에 대한 판결은 노동자들에게만 한정된 판결이 아니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 수많은 시민들이 투쟁의 현장에 찾아가 지지하는 현실에서, 발언만 해도 업무방해 방조죄가 적용된다면 연대의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벌금인데 왜 이리 소란이냐고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제3자 개입금지법의 부활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사법부가 시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침해하고 있다. 그래서 사법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사법기관이 법을 왜곡하여 적용하는 것은 직권 남용이 아닌가? 사법부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법에 의거해 판결해야 한다. 적용하여야 할 법 규정을 적용하지 않거나 법 규정을 그릇되게 적용하는 법 왜곡에 대한 사회적 제재방안이 필요하다. 독일 형법 제339조는 "판사, 판사 이외의 공무원 또는 중재재판관이 사법사안을 주재하거나 결정을 내림에 있어 법을 왜곡하여 일방당사자를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만든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사법기관의 법 왜곡에 의한 인권침해를 어떻게 제어할지 고민해야 한다. 특히 현직 법관들이 감사원장이나 방송통신위원장 등 정부 기관장으로 임명되면서 정부 정책방향에 끼어 맞춘 판결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판결’을 마주하기 힘든 현실이지 않은가.

권력은 사람들이 인권을 확보하기 위해 함께 손잡고 싸우는 것을 창의적인 법 왜곡과 물리력으로 막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권침해의 현실을 방조'하는 것이 '업무방해 방조죄'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임을 안다. 사법부는 인권침해의 현실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서 공모하고 있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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