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28일 6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민생제일주의’로 대표되는 당 정체성을 강화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의문을 갖는 목소리가 당 내외에서 제기되면서 실제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이 어떤 내용과 방향으로 시행될지가 중요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혁신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념은 ‘민생제일주의’이고 당에는 ‘민생파’만 존재함을 선언한다”면서 “민생복지정당을 실현하자”고 주장했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민생복지정당의 주요 정책기조에 대해 ‘공정사회 지향’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포용의 정치’를 제시했다.

또,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민생제일주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갑질 경제를 타파하고 민주적 시장경제 체제를 만들겠다”면서 “선(先)공정 조세, 후(後) 공정 증세를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여성, 청년, 노인, 장애인 등이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공정의 완성”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당대표, 민생부문 최고위원, 민생본부장, 을지로위원장, 직능위원장, 노동위원장, 농어민위원장의 내부인사 7인과 외부인사 7인으로 구성되는 ‘민생연석회의’를 당헌 기구로 설치하고 당직의 20% 이상을 민생복지 담당으로 채우며 현재 최고위원 중 1인을 선정해 민생 최고위원으로 정하고 원내민생부대표와 정책위민생부의장, 민주정책연구원 민생부원장직을 신설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이에 더해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는 2016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3분의 1 이상을 민생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로 공천하고 상위 순번에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이러한 제안은 그간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해 제기된 주요한 비판을 모두 비켜갈 수 있는 노선을 내놓아야 한다는 고민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실에 대해서는 고질적인 계파갈등과 불분명한 정치적 지향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비판이 제기돼왔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민생제일주의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주장도 개인과 분파의 이익만 쫓는 존재에 불과하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오로지 민생제일주의로 통합된 ‘민생파’만 존재함을 선언한다”는 등의 발언을 내놓은 것은 이런 점이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8일 국회에서 당 정체성 확립 등을 내용으로 한 6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이러한 제안은 두 가지 비판에 휩싸이고 있다. 첫 번째로 제기되는 비판은 ‘민생제일주의’라는 선언이 다른 정당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도 중요한 정치적 고비가 닥쳐올 때마다 ‘민생’을 강조하며 민감한 논란을 피해가려는 시도를 해왔다. 정의당 등의 진보정당들도 기존의 이념적 차이에 따른 혼란을 다시 재현하기 보다는 민생의제를 중심으로 현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구상을 반복해서 밝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시 ‘민생제일주의’를 내세운 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를 제쳐놓고서라도 차별화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6차 혁신안에 대해 두 번째로 제기되는 비판은 ‘민생’이라는 중도적 어휘에 기대고는 있지만 결국 선거를 앞두고 ‘좌클릭’하자는 주장이 아니냐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강조하고 증세를 언급하고 있는 데에서 이러한 주장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생 전문가, 현장 활동가,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을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하자는 것 또한 2012년 한명숙 지도부를 연상케하는 해법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은 보수언론을 통해서도 제기되고 있다. 29일 조선일보는 5면 기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에 대해 “비주류 및 온건파에선 ‘민생이라는 말로 포장한 복지·증세 정책 발표 같다’, ‘안보·북한 문제는 외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사회 관계를 갑과 을, 가진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눈 ‘을지로위원회’의 문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원내지도부나 당 정책위에서 할 문제를 정체성의 핵심방안으로 내놓은 건 뜬금없다”, “논란만 피하려고 본질은 외면한 것”, “또다시 운동권 출신의 시민단체 사람들로 당을 채우겠다는 말” 등의 발언을 야당 내 온건·중도파의 이름으로 인용했다. 또, 조선일보는 이번 혁신안의 내용에 ‘복지’란 단어가 33번, ‘노동’이 20번 등장해 6번 등장한 ‘성장’이나 8번 등장한 ‘포용’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고도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 태도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스탠스를 최대한 좌측으로 밀어놓아야 야권으로부터 중도층을 분리시킬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기사에 드러난 6차 혁신안에 대한 비판 주장을 여당이나 전문가들의 평에서 인용하지 않고 굳이 ‘야당 내 온건·중도파’에서 찾은 것도 이런 점을 반영한 걸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그간 무소속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론’ 등을 다른 언론보다 비중있게 보도해왔다. ‘야권분열’을 노린 행보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조선일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중도부터 좌측까지를 모두 포괄해야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요 선거를 전후한 상황에서 좌클릭 또는 우클릭 논란에 휩싸인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당 내의 잠재적인 대선주자들이 ‘소득주도성장’, ‘공정성장’, ‘경제민주화 시즌2’, ‘복지를 통한 성장’ 등 나름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것 역시 이런 딜레마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다시 뒤집어보면 앞으로 갈 길이 어느 정도 보인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을 둘러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단결된 주장을 입을 모아 외치는 것이라기 보다는 각자의 주장을 서로의 이득이 될 수 있도록 역할 분담을 하는 방안이 더 필요하다. 서로에 운동권이니 새누리당 2중대니 하는 딱지를 붙이고 어느 지역에 누구를 공천할 것인가를 놓고 싸우는 게 아니라 당의 노선을 놓고 논쟁하고 여기서 나온 결론을 토대로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영역과 일을 나누는데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내놓은 ‘민생제일주의’가 그 자체로는 애매하고 모호한 측면이 있으나 장기적으로 제1야당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이런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혁신안이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에 기여하는가 여부는 순전히 앞으로의 일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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