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회 교체 시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현재 KBS이사회 수장인 이인호 이사장이 KBS뉴스에 등장했다. KBS 내부에서 차기 이사에 지원한 지원자들의 방송 출연 제한 방침을 정한 것과 달리, 차기 이사 후보이기도 한 이인호 이사장이 자사 뉴스에 등장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고, 애초 데스킹 과정에서 삭제됐던 뉴스가 ‘되살아’ 났다는 점에서 보도개입 의혹도 일고 있다.

27일 KBS <930뉴스>에는 <미 교사들 ‘6.25전쟁 제대로 알리기’ 결실>(▷링크)이라는 리포트가 방송됐다. 6.25 정전 62주년 기념일을 맞아 미국에서 6.25 전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디지털 교과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참전 용사, 미국 고등학생, 참전용사의 손녀인 미국 고등학교 세계사 교사의 소감이 나왔고, 말미에는 서양사학자이자 KBS이사회 이인호 현 이사장의 인터뷰가 등장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6.25당시) 미국의 시기적절한 개입이 없었다면 한국은 공산화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27일자 KBS <930뉴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는 28일 성명을 내어 “어제(27일) KBS 보도본부에서는 이인호 KBS 이사장의 인터뷰를 뉴스에 넣을지 여부를 놓고 촌극이 벌어졌다”며 보도 과정을 비판했다. 새 노조 설명에 따르면 방송 3사 중에는 유일하게 디지털 교과서 소식을 전한 KBS는 오전뉴스인 <930뉴스>에 “(6.25 당시) 미국의 시기적절한 개입이 없었다면 한국은 공산화 됐을 것”이라는 이인호 이사장 인터뷰를 넣었다.

당초 “‘통일이 절대적 가치냐?’, ‘아니다. 지금 그대로의 상태가 좋다’… 현재 한국에서 늘 뜨거운 토론 주제”라는 내용으로 나가려던 이 인터뷰는 아침뉴스 <뉴스광장>에 포함됐다가 새 노조의 문제제기 이후 빠졌다. 다만 <뉴스광장>에도 행사에 참석한 이인호 이사장의 모습이 나왔다. 새 노조는 “디지털 역사교과서 공개라는 주제와도 맞지 않을 뿐더러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는 헌법 제4조를 부정하는 듯한 이사장의 인터뷰는 누가 보더라도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며 “당연히 이 인터뷰는 아침뉴스 편집팀 데스크와 워싱턴지국과의 협의 끝에 인터뷰를 빼는 것으로 정리가 됐고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 노조는 “3사 가운데 우리만 보도한 뉴스에 더구나 원고 흐름상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고 부적절하기까지 한 이사장의 인터뷰를 사용한 것은 조대현 사장의 연임 욕심과 이에 충성하는 보도국 간부들에 의해 KBS 뉴스가 동원된 결과라고 우리는 판단한다”며 “당초 데스킹 과정에서 삭제됐던 인터뷰가 다시 나가게 되는 과정에서는 보도본부 간부들의 개입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 노조 확인 결과, 보도국장이 국제부를 찾아와 ‘이인호 이사장 인터뷰는 여러 소리 하지 말고 내라고 큰 소리를 쳤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있었다는 것이다.

새 노조는 “이 뉴스가 과연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길래 방송 3사 가운데 KBS만 방송을 했던 것인가? 또한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고자 데스킹 과정에서 삭제됐던 이인호 이사장의 인터뷰가 왜 다시 오전 뉴스에 나가게 됐는가? 그리고 인터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는 왜 다시 이사장의 인터뷰를 뺐단 말인가?”라며 “보도본부 수뇌부들은 이인호 이사장 인터뷰 방송을 둘러싼 이 모든 의혹에 대해 보도본부 구성원들에게 명명백백히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차기 이사 지원한 이인호 이사장, KBS 프로그램 출연 제한돼야”

새 노조는 지금이 공영방송 이사회와 사장 교체를 앞둔 민감한 시점이기 때문에, 사장 추천 권한이 있는 차기 KBS이사 후보로 지원한 이인호 이사장이 KBS뉴스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 노조에 따르면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인사이드>의 경우, 최근 회사 방침이라며 KBS이사에 지원한 인물들은 방송 공정성을 위해 이사 선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당분간 방송에 출연시키지 말라는 시사제작국장의 지시가 내려졌다. 새 노조는 “이인호 이사장은 현재 KBS 이사장이기도 하지만, 또한 차기 이사에 지원한 이사 후보자이기도 한 신분이다. 더구나 차기 사장 선출을 앞둔 민감한 시기인 만큼 KBS 이사나 이사 후보자에 대해 KBS 뉴스나 프로그램 출연은 제한돼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 27일자 KBS <뉴스광장> 2부

새 노조는 “같은 회사 내, 같은 보도본부 내의 프로그램인데도 이번 이인호 이사장 경우에서는 그런 회사의 방침이 지켜지지 않은 있는가? 다른 이사 후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는 당초 광장 데스킹 과정에서는 고려가 돼 인터뷰가 빠졌으며 이러한 사실은 국제부장에게도 보고가 됐다.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도 <930뉴스>에 인터뷰를 다시 포함시킨 것은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서도 보도국장과 국제부장은 해명해야 한다”고 전했다.

새 노조는 조대현 사장이 당초 자신이 초청받았던 행사에 이인호 이사장을 추천해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언급하며 “만약 조 사장이 임기를 4달 앞두고 차기 사장 선출 국면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 대상이 차기 사장 선임 과정을 지휘할 이사장이 아니었다면 조 사장이 이처럼 눈물 나는 효심을 보였을까? 이는 명백히 연임을 위해서라면 방송 뉴스 또한 얼마든지 사유화할 수 있다는 조대현 사장의 야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새 노조는 이인호 이사장 리포트 보도 경위를 오는 31일 열리는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요구했지만 사측은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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