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지 마시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27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국가정보원이 사용한 스파이웨어 같은) 소프트웨어는 무형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감청설비로 보기 어렵다” “이동통신 감청설비가 마련되지 않아 적법한 절차를 따라도 집행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파이웨어를 활용한 해킹과 감청을 잡아내야 할 주무부처 장관은 오히려 국정원을 비호했다. 합법 감청으로 불법 논란을 없애자는 이야기다.

내각의 장관이 같은 부처, 그것도 가장 힘이 센 국정원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다. 제 아무리 삼성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학자 출신으로 공룡부처 장관 자리까지 오른 인사이니 더더욱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지만 도가 지나치다. 국정원은 애초 통제할 수 없는 대통령 직속기관이고, 영장 없이 감청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주무부처 장관이라면 “국민의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다. 해킹과 감청 여부를 확인 중이다. 불법 사실이 드러나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하겠다”는 발언 정도는 해야 한다. 설령 본심이 아닌 대국민 립서비스로 연출한 것이더라도 말이다.

그의 ‘엎드리기’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사찰 파문 때 최양희 장관은 수사기관의 행태를 꼬집은 말로 유행한 ‘가카오톡’도, 이용자들이 망명을 떠난 ‘텔레그램’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국정원의 해킹, 감청 프로그램은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고 한다. 아예 새누리당 의원들을 따라 합법 감청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엎드린 수준이 아니라 국정원과 혼연일체가 된 모습이다. 오매불망 각하를 바라보는 싸구려 정치인의 충성맹세 같다.

▲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사진=미래부)

국정원 불법 해킹 건을 두고 의견은 크게 갈린다. ‘원래 국정원은 그런 곳이야’라는 여론도 여전하고 ‘결국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정원을 해체하거나 국정원 내부에서 폭로가 나오지 않는 한 실체적 진실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국정원은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통제받지 않는 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국정원은 아무리 프리패스(free-pass)라지만 불법만은 잡아 달라’는 여론 또한 만만찮다.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과 국정원이 주고받은 이메일로 드러난 증거와 정황은 불법 해킹과 민간인 사찰을 짐작케 하기 때문이다. 민간인 사찰을 실행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국정원은 ‘내국인 실험’ 목적으로 국정원 명의의 SK텔레콤 회선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부 장관이 물타기도 아닌 국정원 ‘옹호’에 나섰다.

최양희 장관은 “사이버 세상에서는 매일같이 국경을 넘나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며 “정부는 북한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무와 함께 국민의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자유를 신장할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통신과 데이터 통신이 급증하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그들이 자의적으로 지목한) ‘종북좌빨’의 정보도 늘어날 것이다. 수사기관은 국가안보를 위해 통신을 합법적으로 감청해야 하고, 새누리당 박민식 서상기 의원은 이런 이유로 감청 합법화 법안을 발의했다.

이동통신사처럼 ‘빅브라더’가 되고 싶을 것이다. 아니면 이들과 공조해 정보를 확보하고 싶을 터다. 이미 정보를 캐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캐야 하는 게 국정원의 당면과제일 수 있다. 국정원 직원(들)이 ‘내 손에 도청장치’를 만들고자 했던 것은 국정원 직원 개인의 과잉 충성으로 볼 수 없다. 국정원은 지금껏 정보로 정치를 제압해왔다. 문제는 규제기관의 수장마저 국정원에 줄을 섰다는 점이다. 미래부가 국정원의 사업파트너라도 되는 걸까. 차라리 미래감청과학부로 이름을 바꾸는 게 솔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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