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은 라틴어인 ‘audire’에서 유래된 말로 ‘청각, 경청하다’라는 뜻이다. 또한 중세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서 가수를 채용할 때 청각에 의한 판단만으로 가수를 채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오로지 청각만으로 판단해 가수를 채용한다는 방식이 현대에 와서는 방송 포맷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즉, 객관적 기준으로 “실력자”를 선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이다.

특히 가수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지원자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선발과정, 구체적인 심사기준, 시청자의 직접 참여 방식 등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제작되고 있다.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초반 일반인 중심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이미 데뷔한 전문 가수들 간의 경쟁, 대형 연예기획사 연습생 간의 경쟁 등 출연자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형연예기획사의 내부 오디션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2014년도 YG의 연습생들 중 가수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위너>가, 2015년에는 JYP 연습생들 중 걸그룹 멤버를 선발하는 <식스틴>이 방송되었다.

대형 연예기획사는 국내 대중음악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데뷔한 소속 가수들로 인해 팬덤이 형성되어 있고, 가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 한류 열풍으로 높은 경제적 수익성을 올리면서 대중문화콘텐츠 생산에 있어서 큰 권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형 연예기획사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가수 선발 과정은 연습생들의 꿈의 무대이다. 이 무대는 시청자들의 참여로 성공에 대한 대리만족을 가능하게 한다. 혹은 가수를 꿈꾸는 많은 청소년들에게는 일종의 “교재”가 되기도 한다. 각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가수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무엇에 초점을 두고 연습을 해야 하는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2014년 방송된 <위너>는 A팀과 B팀으로 나뉘어 경쟁을 했다. 남자 아이돌 그룹 선발이므로 여성 팬층을 형성하는데에도 성공했고, 연습생 생활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전제로 하는가, 가수 데뷔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경쟁방식이 갖는 폭력성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대형 연예기획사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에 높은 완성도를 보여야 했다. 이것은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쟁과정을 겪고 있는 “연습생”들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그들은 여기가 아니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불안감에 빠져있었고, 잠을 잘 시간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여야 하는 선발과정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두 명의 연습생은 <위너>출연과 동시에 <쇼미더머니>에 출연하고 있었다. 기획사가 요구하는 기준과 미션은 그것이 불공정할지라도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Mnet <식스틴>의 한 장면 (사진=Mnet)

최근 종영한 엠넷의 <식스틴> 역시 출연자들의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선발과정에서 나타난 방식의 문제점은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다. <식스틴>은 차세대 JYP 걸그룹 선발과정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특히 이러한 컨셉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베일에 가려진 대형 연예기획사 내부의 오디션 과정과 내부 트레이닝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소속사의 유명 연예인들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점 또한 인기를 쉽게 끌어 모으는 한 이유이다. 게다가 걸그룹 멤버 선발과정이 아닌가.

JYP 역시 <식스틴>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소속사 가수들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획사 내부의 트레이닝 과정이나 관계자들을 오픈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어떤 능력을 가진 연습생들을 확보하고 있는지 등 내부사정을 어느 정도는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대형기획사에게는 ‘득실’(得失)이 분명한 프로그램이다. 이미 YG도 <위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전 가수들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효과를 거두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식스틴>에 대한 기대는 연예기획사, 방송사, 시청자 모두 컸다.

<식스틴>에 출연한 16명의 연습생들은 매회 주어지는 미션에 충실히 따르며 자신들의 실력을 평가받았다. 재능보다는 자기관리와 열정이 중요하다며 매회 힘든 미션을 왜 수행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심사위원의 기준도 열심히 따랐다. 그러나 경쟁과정에서 심사자와 미션을 수행하는 연습생들간의 관계는 매우 불편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미션의 성공의 기준은 명확하다. 그리고 그 기준에 미달한 지원자는 탈락이거나 감점이라는 패널티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연습생들에게 노골적인 비난을 한다.

심사자와 지원자라는 사회적 위치가 타인을 노골적으로 비난할 수 있다거나 그 비난을 무조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하지만 국내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이러한 폭력적 관계를 계속적으로 보여준다. 전문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노골적 비난으로 재현되는 왜곡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변하지 않고 계속된다. 상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과 비난은 전혀 다르지만 국내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노골적 비난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또한 매회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접 동료를 탈락자로 지명해야 하는 일도 수행해야 했다. <식스틴>의 연습생들이 모두 이러한 고통을 견딘 이유는 차세대 JYP 걸그룹 멤버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열정페이로 둔갑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많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투명한 선발과정과 숨겨져 있었던 실력자를 발굴하는 재미 때문이다. 또한 시청자인 내가 심사위원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수행할 수 있다는 만족감도 큰 몫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대를 <식스틴>은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식스틴 출연자들의 성장과정 보다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비난과 폭력적 경쟁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힘겨운 현실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공한 전문가들의 노골적인 비난과 폭언, 동료를 내가 밟고 올라서야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잔임함, 걸그룹 선발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체 노출 등의 선정성 등 문제점은 많았지만, 결국 걸그룹은 탄생했다.

신자유주의시대 경쟁방식은 노골적이고 잔인하다. <식스틴>의 16명의 연습생들은 어린나이에 경쟁의 잔인함을 학습했고, 아이돌을 꿈꾸는 청소년들, 그리고 시청자들도 그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엠넷 채널과 대형연예기획사가 보여준 미디어 속 현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리모콘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우리 모두가 이러한 경쟁방식에 중독되었기 때문일까.

현실에서도 볼 수 없는 따뜻한 경쟁이 TV에서만큼은 지켜지기를 기대했던 대중이 미련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이러한 비판을 통해서 상대를 존중하고 비판과 조언이 가능하다는 것을 계속 믿어야 하는 것인지 씁쓸하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경쟁하는 세계를 경험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것이 “미디어 속 세계”일지라도.

※이 글은 문화연대 웹진 <문화빵>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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