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읍니다. 번영된 조국,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모든것을 받치겠읍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지난 6월 6일 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문장이다. 이 문장은 작가 이외수씨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더욱 유명해졌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제는 이외수씨가 이미 교정했으니 따로 지적할 것이 없겠다.

▲ 이외수씨는 이명박 후보가 지난 6월 6일 현충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남긴 방명록에서 잘못된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을 직접 교정하고 지난 10일 그 사진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런데 직업이 직업인지라 손볼 곳이 자꾸 눈에 띈다. '번영된', 이 부분이다. 이는 전형적인 피동형의 남용에 속한다. 국어 문법에서 피동형은 의미의 혼동을 가져올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능동형으로 쓰라'고, 중학교 국어 과정에 나와 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 쪽에서는 이 후보의 국어실력에 대한 반응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참고로 이 후보의 문장이 보여주고 있는 총체적 부실은 결코 실수가 아니다. 잘못된 종결어미 '-읍니다'는 저 짧은 문장에서 두 번이나 나타났고, '이루는데'와 '모든것을' 등을 연속으로 붙여쓰는 것으로 보아 이 후보는 의존명사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이 틀림없다. 이 후보의 잘못된 표현을 모두 바로잡으면 이렇다.

'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조국의 번영과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말과 글은 그 사람의 내면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고 했다. 과거 정치인들이 글씨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3김씨는 신년이면 멋들어진 휘호로 자신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빗대기도 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JP가 남긴 고사성어 '줄탁동기'(모든 일에는 때가 있음)는 지금 생각해도 절묘한 은유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조정신'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사구시' 등도 많은 인상을 남긴 고사성어였다.

이명박 후보는 어떨까. 신언서판 가운데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외모는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겠다. 판단력에 대한 검증도 잠시 미뤄두자. 남는 것은 이 후보의 말과 글이다. 이 가운데 이 후보의 말은 이미 호가 나 있다. 마사지 걸 발언과 관기 발언, 여성비하 발언 등 잊을만하면 한 번씩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는 그의 언행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줄로 안다.

그런데 이번에 이외수씨의 친절한 교정 덕분에 그의 문장력이 발가벗은 채로 드러났다. 이 후보는 국어와 국사를 영어로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영어 실력 키워줄 궁리를 할 때가 아니다. 우선 본인부터 국어와 국사를 우리말로 다시 공부해서 '의사' '열사'의 개념도 머릿속에 새겨야 하고 맞춤법과 어법도 제대로 익혀야 한다. 이 후보의 주장처럼 국어를 영어로 공부하면 '번영된', 이런 영어식 피동형 문장을 남발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만약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신년 휘호를 남겨야 할 때도 있을 텐데,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는 곳에서 '입신양면', 이런 거 남기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최성진은 현재 한겨레21 정치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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