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협동조합 형식으로 독립적인 방송이 만들어지는구나, 권력과 자본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목소리 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와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21일) 국민TV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여기가 삼성인가 현대인가 했다. 조합원의 출자와 투자로 이루어지는 방송이 기업 흉내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매우 놀랍고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국민TV, 정신 차려야 한다”
- 권영국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영환, 이하 비대위)는 22일 오전 0시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조직개편·인사·징계 철회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화 좀 하자”는 ‘대자보 게시’를 불법적인 단체행동으로 간주해 정직, 감봉, 견책 등의 징계를 내리고, 보도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하고, 프리랜서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노조 아님’ 통보를 한 사측에게 ‘국민TV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22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사무실 앞에서 <국민TV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바로 어제까지 국민TV 데일리 종합뉴스 <뉴스K>를 제작하고 진행했던 구성원들은 거리에 나와 사측의 폭압적인 운영 방식을 비판하며 국민TV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외쳤다.

▲ 22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사무실 앞에서 <국민TV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디어스

과거 국민TV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던 이건우 전 편집감독은 “(직원들이) 대자보 게시하려고 할 때, 저는 지켜보고 있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제 신분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같이 참여한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조상운 사무국장이 올라와서 저와 같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강우정 씨 두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단체행동하려는 것 알고 있다. 프리랜서는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직원은 문제 생기면 징계할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계약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앞서 얘기가 됐던 여러 가지 문제들에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지금 개인적인 일로 회사를 나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 현재 일하고 있는 동료들, 프리랜서든 계약직이든 정직원이든 앞으로 저의 자리를 대신해서 국민TV에서 일할 사람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성지훈 기자는 “제가 주로 노동 관련 기사를 썼다. 늘 비정규직 문제, 노조 파괴 공작,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제 회사의 이야기가 될 줄은 지난 5월까지는 몰랐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기사 쓸 때마다 좀 부끄럽다”고 밝혔다.

성지훈 기자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보도국 폐지다. 공정언론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곳이 국민TV다. 대한민국 뉴스와 신문이 엉망이니 우리라도 제대로 해 보자, 십시일반 마음이 모여서 한 건데 돈이 안 되니까 인풋, 아웃풋 얘기까지 나오며 없애자고 한다”며 “<뉴스K>를 무조건 폐지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는데도 자기가 내세웠던 안을 관철하는 작태를 보면서 더 이상 그를 선배, 언론인으로 부를 수 없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막내들에게 보도국을 돌려주고 싶다”고 토로했다.

노지민 <뉴스K> 앵커는 “취재현장에 나가서 국민TV는 국민일보 방송이냐는 얘기 들으면서도 항상 떳떳할 수 있었던 건 어떠한 자본 권력에도 휘둘리지 않는, 사실상 가장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 보도국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보도국 폐지가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는지는 모두들 알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대위는 지속적으로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보도국을 되살리기 위한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비대위 “상식적인 대화가 시작된다면 언제든 제작거부 방침 철회할 것”

권영국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은 “언론이 보도국을 폐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라며 “단체협약 등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단협 위반이 분명해 보인다. 또 (언론에서) 가장 핵심일 수 있는 보도국을 사내 구성원 동의 없이 일방 변경 폐지하는 건 그야말로 반민주적인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자보는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는 가장 마지막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 사무국장이 일방적으로 떼어버리고 철거해 버리는 행태를 보니, 국민TV 경영하는 분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스스로 짓밟아 버리는 매우 반민주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사측이 ‘프리랜서’들의 노조 가입을 이유로 ‘노조가 아니다’라고 한 점에 대해 강력 비판했다. 권영국 본부장은 “제가 노동법을 30년 정도 공부했는데 계약상의 명칭과 형식에 관계없이, 국민TV에 종속된 상태로 국민TV를 위해 일하고 있으면 노동자다. 그리고 노동자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노동조합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5조에 보면 노동자(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누구를 조합원으로 하느냐 문제는 규약에서 자율적으로 정할 문제인데, (프리랜서의 노조 가입이 안 된다는 주장은) 노조 운영에 지배 개입하는 행위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라고 설명했다.

▲ 노지민 <뉴스K> 앵커(왼쪽)와 이건우 전 편집감독(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미디어스

“다른 일정 미루고 여기 온 건 서경지부에게 국민TV가 어떤 의미였는지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연 하해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저희 조합원들의 해고 문제를 심층 보도하는 과정에서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기사 를 내서 그 이후 관심 갖고 알아보게 됐고, 우리 언론이 가야 할 바를 지향하는 진취적인 언론으로 기억하게 됐다. 그런 국민TV가 보도국 축소하거나 폐쇄한다는 얘기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하해성 부장은 “진정한 협동조합의 가치는 자본 논리가 아니라 소중한 가치를 위해서 경제적 이득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경영진도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는 분들의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국민TV를 더 살찌우고 시민들에게 더 지지받게 만든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사측에 “노조와의 대화에 참여하길 촉구한다. 상식적인 대화가 시작된다면 비대위는 언제든 제작거부 방침을 철회할 것”이라며 “사측의 진정성 있는 자세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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