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과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분),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 분)의 활약과, 이들 세 명의 목숨을 노리는 킬러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의 물고 물리는 이야기를 다룬다. 안옥윤과 속사포, 황덕삼이 강인국과 카와구치 마모루를 노린다면 안옥윤과 속사포, 황덕삼의 목숨을 노리는 하와이 피스톨이 물고 물리는 우로보로스처럼 맞물리는 액션 활극이라는 이야기다.

오랜 기간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은 시험 때 두 종류로 분류된다. 하나는 당연히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 다른 하나는 노력에 비해 성적이 형편없이 나오는 학생이다. 필자가 영화를 접하기 전에는 <암살>이 위의 두 부류의 학생 중 어느 부류에 속하게 될까 궁금한 게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동훈 감독이 9년 동안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중간에 일 년 동안 애써 집필한 시나리오를 몽땅 폐기하고 새롭게 집필한 적도 있다 보니 오랜 기간 시나리오를 준비한 <암살>의 영화적 재미나 완성도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영화를 접한 후 나온 답은 간단하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 중 전자에 속하는, 그러니까 오랜 기간 노력한 만큼 성적도 잘 나오는 학생처럼 오락성과 재미가 한껏 성숙된 영화로 다가왔다.

<암살>은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는 세 명의 암살단의 활약만 감상할 영화가 아니다. 만일 이 영화가 일사천리한 활약이 스토리라인의 주를 이루었다면 관객은 영화를 접하기 전부터 추리소설의 결말을 아는 관객처럼 재미가 상당 부분 반감된 상태로 감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제 앞잡이의 눈을 피해 암살을 성공하는 암살단의 활약이라는 전제가 관객의 머릿속에 추리소설의 결말처럼 각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들이 똘똘 뭉쳐 암살이라는 미션을 완성하는 영화이기보다는, 암살단이라는 주인공 집단을 누군가가 해체하고 새로운 피를 수혈 받아 재구성하는 ‘이합집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다양한 변수에 의해 암살단원이 흩어지고 새로운 암살단원과 다시 힘을 합치는 ‘분열’과 ‘재결합’의 서사가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이합집산의 모습을 가진다는 이야기다. 이는 힙을 합쳐도 모자랄 도둑들이 음모와 배신으로 하나씩 균열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 전작 <도둑들>의 기본 구조를 <암살>이 일정 부분 물려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흔히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은 남성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이야기에 양념을 더하는 역할에 그치거나 심지어는 없어도 그만인 부수적인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암살>은 기존의 영화 구조, 남성이 중심이 되는 텍스트 구조와는 다른 구조를 보여준다. 즉 여성 히로인 안옥윤이 없으면 하와이 피스톨이나 속사포, 황덕삼과 같은 남성 캐릭터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 하고야마는, 여성이 주체가 되는 <킬빌> 같은 영화로 자리매김한다.

창업보다 기업을 계속 이어가는 경영의 수성이 더욱 어렵다고 했던가. 안옥윤을 연기하는 전지현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홈런을 친 후 그 홈런을 이어갈 명맥을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로 멋들어지게 ‘수성’하고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전지현의 손에서 불 뿜는 피스톨을 바라볼 때면 <암살>이 ‘전지현의 전지현에 의한 전지현을 위한 영화’라는 사실을 200% 체감할 수 있다. 이는 <도둑들>에서 우월한 기럭지로 김수현과 ‘썸’만 타던 예니콜과는 비교되는 아우라가 안옥윤을 연기하며 뿜어져 나온다는 걸 실감할 수 있기에 그렇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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