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이촌동에 있는 빌라의 ‘경비업무 용역계약서’가 화제가 됐다. 이 빌라는 근로계약을 용역계약으로 전환한 것도 모자라, 연차휴가 없이 하루 17시간 격일 근무를 강제하고, 매달 백만원을 대가로 지급해 최저임금법까지 위반했다. 더 놀라운 점은 계약을 체결한 입주민대표가 바로 박상옥 신임 대법관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심판자’로 불리는 엘리트들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를 볼 수 있는 단면이었다.

대법원, 그리고 대법관은 노동자가 법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확인하고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마지막 법적 통로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들리는 소식은 “대법원이 이번에도 보수적인 판결을 내렸다”는 정도다. 대법원은 대부분의 합법파업을 업무방해로 판단했고, 급기야 회사의 미래까지 고려해 정리해고를 정당화했다. 지난해 11월13일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56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고등법원 판단을 뒤집고 쌍용차 손을 들어주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오늘로서 나는, 천민자본과 이를 옹호하는 권력의 카르텔이 너무도 강고한 이 땅에서 노동자들이 법원의 판결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겠다는 망상을 버리기로 한다”며 “판결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보겠다는 미련 같은 것이 남아 있다면 이제 털어버리자”라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에서는 “개별적인 사건에 대해 판결을 두고 이 같은 비판은 온당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노무사들과 함께 1990년부터 올해 2월까지 25년 동안 쟁의행위와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 546건을 분석한 결과,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85%이고 정리해고를 정당화한 판결도 71%나 됐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대법관 61명에 대한 인격화된 통계를 내놓고, 변화를 촉구했다.

<노동자 울리는 ‘노동법 심판들’>이라는 기획은 그래서 더 큰 울림이 있다. 이번 기획을 진행한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는 대법원이 IMF 이후 보수적인 판례를 자가복제하며 우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법도 현장도 모르는 법의 심판자들이 노동3권을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진구 기자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에 대해 대법원이 80% 넘게 불법으로 판결한 것은 법의 저울이 한쪽으로 심각하게 기운 것”이라며 “한 변호사가 법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 대법원 보수화에 대해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자기반성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는 언론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시리즈를 기획한 계기로 쌍용차 대법 판결, JTBC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 부당해고 사건과 함께 사법 현실을 왜곡하는 보수언론을 거론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이 비판의 성역이 되고 있다며 기자 개개인이 대법 판결을 비판적으로 다뤄야 할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자 니즈에 맞춰 프랙티컬한 기사를 쓰는 것도 좋지만, 헌법적 관점에서 노동 관련 판결을 짚고 비판해야 대법원을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앞으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근로감독관’에 대해 다루고, 이때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는 ‘쟁점과 대안’으로 기획을 끝맺는다.

▲ 강진구 노동전문기자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강진구 기자 인터뷰 전문

-노무사 십여 명과 함께 했다고는 하지만 엄청난 작업이다. 실무는 어떻게 진행한 건가.

사실 작업은 3월 말에서 4월 사이에 끝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지고, 메르스 파동으로 (기사 게재가) 두 달 정도 미뤄졌다. 그래서 숙변을 뽑는 기분이었다. 노무사 15명이 도와줬다. 판례를 수집하는 게 애를 먹었다. 이틀 정도 날을 잡아서 개인별로 컴퓨터를 지급하고 시기별로 작업을 나눠 맡았다.

-경향신문 안에서 했나.

경향신문 내부에서 했다. 이틀 꼬박 작업을 했다. 분석 포인트에 대해 코딩 번호를 부여했고, (15명의 노무사들이) 판결문을 보면서 쟁의행위 정당성에 대한 판단, 주체·목적·절차·방법 인정/불인정을 분류했다. 노동법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보면 찍어내기가 어렵지만 노무사들이니까 (이런 작업에) 쉽게 적응했다. 함께 작업한 노무사들 가운데 5명은 수습노무사 시절 운영되는 ‘노동자의 벗’을 (나와) 함께 한 분이고, 10명은 지금 수습노무사들이다.

-작업 취지를 설명해 달라.

일차적으로 노동법 집행하는 사람들이 노동법을 잘 몰라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판사도 검사도, 근로감독관도 그렇다. 노동위원회 공익위원도 그렇다. 이런 경우를 간간히 접하면서 개별 사건보다는 묶어서 기사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JTBC 컴퓨터그래픽 프리랜서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을 진행하면서다. 당시 JTBC는 정정보도를 신청해 언론중재위원회에 갔다. 그 다음 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가야 했는데 JTBC는 (언론중재위에 출석해) “우리는 전부 아웃소싱을 해서 줄 일감이 없다”고 했다. 중재위에는 부장판사 출신이 있었는데, 그 분이 “일거리가 없는데 부당해고라고 하는 건 어렵지 않겠나”라며 너무 천진하게 말했다. 그리고 “노동전담을 2년 정도 해봐서 잘 안다. 부당해고 신청해도 떨어진다”고 했다. (해고당한 분이) 참관인으로 왔는데 (다음 주 지노위 출석 앞두고) 심리적으로 얼마나 위축됐겠나.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판사 출신에게 따졌다. “굉장히 위험한 말이다. 대한민국 노동자들 가운데 위원장처럼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다. 일감이 없어서 ‘정리해고’라고 한다. 정리해고는 네 가지 요건에 맞춰서 해야 정당성을 한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 판사들이 기본적으로 심각하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이 뒤집어졌을 때였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법을 통해 구제받기 어렵게 됐다. 당시 권영국 변호사가 장문의 소감문을 읽었다. “한국에서 사법적 정의는 죽었다. 판결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을 접겠다”고 했는데 가슴에 와 닿았다. 대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은 한 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대법원이 보수화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한 번 해보자. 통계로 확실하게 보여주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노동사건을 전부 보여주는 것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는데 20여건 정도뿐이고 분석도 이미 나왔다. 그래서 범위를 넓혀 대법원이 고용안정성 차원에서 ‘정리해고’ 사건과 집단적 노사관계에서의 ‘쟁의행위’를 어떻게 판단했고 판례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전산작업이 이뤄진 1990년 자료부터 시작했다.

-소위 민주정부에서도 대법원 보수화는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데이터를 보면서 어떤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통계에는 자신이 막연히 알고 있는 부분을 수치화했을 때 체감할 수 있는 통계만의 메시지와 무게감이 있다. 25년 동안 대법원이 한국의 노동인권을 어떤 식으로 억압했는지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다. 사실 이 기획이 시작하기 2주 전쯤 분노했던 계기가 있다.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가 발레오전장 강기봉 사장을 인터뷰했는데 이 사장은 “요즘 제조업 사장들 입에서 노동법 판결은 어느 판사 만나느냐에 따라 바뀌는 ‘로또 판결’이라는 말이 나온다. 판결이 지역마다 다르고 판사마다 다르니 법에 기대고 싶어도 기댈 수가 없다는 말이다. 가정법원처럼 노동문제만 전문으로 다루는 노동법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대목이 있다. 법원이 사용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사람들이 대법원의 보수화를 피부로 느끼는데 이를 왜곡하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허문명 기자는 비판 없이 인터뷰이가 한 이야기를 모두 받아 적어서 내보냈다. 대법원 보수화 누구나 알긴 하지만 명확하게 통계로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을 더 굳혔다. (▷링크: 동아일보 6월22일자 기사 <금속노조와의 5년 전쟁… “나는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지테크 양우권 지회장 일기장은 60쪽이 넘어가는데 이중 3~4쪽에는 자신이 부당노동행위를 당하고 있고, 2년 동안 싸웠지만 노동청이든 어디든 자신을 구해줄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 노동3권을 행정적이든 사법적이든 구제받을 수 없다고 느낀 것이다. 이런 무력감과 절망감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허문명 기자는 터무니없는 받아쓰기 인터뷰를 했다.

전체 통계를 통해 수치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더 이상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고 싶었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에 대해 대법원이 80% 넘게 불법으로 판결한 것은 법의 저울이 한쪽으로 심각하게 기운 것이다. 한 발 더 나가면 한 변호사가 법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 대법원 보수화에 대해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자기반성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별로 ‘인격화된 통계’를 만든 것도 기관 전체가 아니라 대법관 개개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서였다.

-대법관 15명이 100% 사용자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의외였다. “정리해고가 파업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립한 것이 2003년 판례다. 노무사 준비하는 사람들은 2003년 판례를 본다. 헌법에 없는 경영권을 기본권으로 못을 박아줬기 때문이다. ‘기업이 잘 돼야 노동자도 잘 된다’는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나온 게 이때다. 사실 주심대법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역대 대법권 중 최악으로 꼽히는 사람이 이용우 대법관이라고 얘기한다. 이번에 분석해보니까 2003년 판례의 주심이었다. 쟁의행위 12건, 정리해고 5건에 대해서도 모두 사용자 편만 들었다. 대법관 개개인의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고, 여기서 만들어진 판례들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용우 대법관의 경우, 문제가 많은 판례를 자기 스스로 인용한다. 일종의 자기 표절이다. 대법관이라면 자기 생각이 틀릴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판사의 판단을 준거로 삼아야 하는데 이용우 대법관은 그게 아니다. 제2의 이용우가 나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자신이 주심을 맡은 (쟁의행위, 정리해고 사건) 14건 중 12건을 사용자 편을 들어줬다.

-그렇다고 해도 반대편에서는 ‘케이스별로 다르다’고 주장할 텐데.

개별 사건을 두고는 인정 못하겠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25년치 도합 500건이 넘는 판결에서 드러난 대법원의 보수화 경향, 그것도 (사용자에 유리한 판결이) 80%가 넘어가는 것에 대해 대법원이 “개별적인 사건이고 일시적인 시기의 판결을 일반화한 것”이라고 변명을 하겠다면 하면 하시라. 제3자가 판단할 것이다. 아직 대법원에서 반박은 없는 것 같다. “살살 좀 써 달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 경향신문 7월6일자 1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대법관들이 근로감독관보다 더 현장과 노동법을 모르고, 법관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보수적인 판결을 재생산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해야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노무사가 되니, 이런 허점이 더 잘 보이나.

기사 쓸 때 가장 조심하는 게 법관의 판단이다. 법관의 양심, 법률전문가라는 권위로 받아들여진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법적 판단을 존중하고 비판을 금기시하는 측면이 있다. 심지어 하급심도 그렇다. 대법원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기자들이 법률적 지식이 부족하고, 대법원의 상징적 권위로 인해서 기자들이 비판보도를 못하고 스스로 검열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노무사 공부하면서 ‘판례는 단순한 준거가 아니라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라는 논문을 읽으면서 판례를 절대시하는 것에 대해 자유로워졌다. 제일 중요한 것은 노동법의 기본 준거는 헌법인데, 노동법이 헌법 정신을 실현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노동3권을 대단히 제한하는 형태로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법관들은 노동3권을 한차례 더 축소하는 식이다. 정리해고 판례를 보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부분들은 당연히 기자들이 진즉 비판했어야 했다.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법률과 판례에 대해 기자들이 제동을 걸었다면 대법원의 보수화에 브레이크 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 진보 쪽에서도 불만은 있지만 판례를 비판하는 부분에 있어서 소극적이지 않았나 싶다.

-노동 관련 판결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기본적으로 노동판례는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살아 움직인다.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게끔 판례도 변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고용유연성을 강조하고 노동3권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판례들이 형성됐고, 이게 대법원 판결의 준거틀이 됐다. 2011년도 쟁의행위와 업무방해에 대한 판례 정도를 제외하면 기존의 판례를 새로 깨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대가 없어진 것 같다. 지난해 쌍용차 판결이 결정판이었던 것 같다. 더 이상 정리해고 문제는 법으로 구제받을 길이 없다고 사람들이 자포자기한 것 아닌가 싶다.

독자들이 대법 판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다. 독일 같은 경우, 의미 있는 노동사건 심문 절차를 TV로 중계한다. 그걸 보면서 시민들이 자기 생각을 정리한다고 하더라. 시대에 따라 변하는 여론이 법원 판결에 반영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이 돼 있다. 그 어간에는 오랜 노동운동의 역사, 노동운동을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들, 노동은 기본권이라는 단단한 사회적 합의, 노조 활동 자체가 잘 돼야 사회가 잘 굴러가고 기업이 잘 된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노동법원이 있다. 전문법관에게만 맡기지 않는 배경에도 그런 이유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생활도 노동자 경험도 없고 민법 같은 기본법에 비해 노동법이 부차적으로 밀려나 있고, 판사들도 정리해고에 대한 기본법리도 형성이 안 돼 있다. 노동법을 모르고 현장을 모르는 법관들에게 사건이 맡겨져 있고 그들은 1990년대 반노동 판례에 입각해 기계적으로 판결을 한다. 전문가들은 미세한 변화를 의미 있게 보기도 하지만 큰 흐름은 이렇다. 그래서 독자도 그렇고 보도하는 기자들도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법조기자들이 쓰는 기사의 패턴이 있다. 대법 판결 기사의 경우, 법관 이름 쓰고 판결 내용을 전한다. 아쉬운 점은 판결의 의미를 짚는 게 한 문단 정도 있을까 말까 하다는 점이다. 노무사나 변호사 멘트가 있으면 붙이고 없는 기사도 많다. 기사는 대체로 짧고 의미 없이 소비된다.

대법원은 비판의 성역이 된 측면이 있고 그 판례를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우수한 법조기자로 평가한다. 독자들도 판결 내용이 무엇이고 자기 생화레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다. 독자들의 니즈에 맞춰서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다. 한편으로 대법원 판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나름대로 전문적인 식견이 형성돼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대개 노동계 쪽 반응을 따서 집어넣는 형식으로 ‘비판 저널리즘 외양 갖췄다’고 자족적으로 생각하는데 정면으로 대법 판결을 비판하는 게 부족하다. 독자 니즈도 그렇고 기자 본인도 비판적인 식견이 준비돼 있지 않다.

-저 같은 경우 판결 기사를 쓸 때 연합뉴스를 참고하거나 판결문 주문 정도만 보는 편이다. 노동이 많이 지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판결이 쏟아진다. 그 정도밖에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노무사가 되기 전후 달라진 게 있나.

해설기사를 쓸 기회가 없었다. 후배기자들이 물어오면 의미를 설명하고 조언을 하는 입장이다. 사실 종전의 프레임이 있다. “노동자들 또 졌다”고 얘기하면 아예 기사로 취급하지 않는다. 종전 판례에 충실해서 한 것이니까 그렇다. 극악한 부당노동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에 대해서는 비판 기사를 쓰는데 대부분 종전 판례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자포자기한 측면이 있다. 되레 노동에 진일보한 판결이 기사가치가 더 있게 됐다. 반노동 판례는 “대법원이 또 그랬다”며 기사에서 제외된다. 판례는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법이 만들어진 취지와 생활에 미칠 영향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프랙티컬(practical‧실용적)하게 기사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비판적 맥락에서 접근하기가 어렵다. 판례내용을 소개하는 것만큼 비판을 등가적으로 다루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판결 당일은 프랙티컬한 기사를 쓰더라도 며칠 지나서는 판례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다루거나 전문가들의 기고를 받는 게 필요하다. 우리(경향신문도) 전문가 기고를 받는데 자체 기획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지금까지 이런 기획을 해 볼 기회는 없었다. 이번에는 묶어서 숙변을 처리하는 기분으로 했다.

-판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참고할 만한 것이 있다면.

노동법 같은 경우 백가지 기본판례가 있다. 노무사를 준비하면 ‘필수판례’를 공부한다. 노동판례에 대해 제대로 쓰고 싶다고 하면 머릿속에 담아두지 못하더라도 옆에 두고 ‘이런 판례가 있구나’ 정도만 생각한다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노동법전을 늘 한 곳에 꽂아두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조항이 많지 않다. 노동법에 대해 제대로 쓰고 싶다면 주말에 날 잡고 읽는, 그 정도 시간투자는 필요하다. 그리고 지난해 전국에 있는 노동법 학자 90여명이 역대 노동법 판례 백선을 뽑아 만든 책이 있다. 단순하게 판례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평가하고 비판한 것이다. 판례 하나당 3쪽 정도로 압축적이다.

노동법도 그렇지만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노동철학과 헌법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헌법 32조와 33조는 노동기본권에 대해 다룬다. 32조에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33조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에 대한 내용이다. 이 의미를 조명하고 있는 논문이 많다. 서울대 노동법연구회에 내는 잡지나 한국노동법학회에서 내는 ‘노동법학’이라는 잡지에는 국내외 노동 관련 판례를 소개한다. 기자들이 관심을 갖고 접근할 만한 판례가 많다. 디비피아에서 볼 수 있다.

노동철학의 경우, 한국은 독립분과가 아니라서 참고할 만한 게 별로 없다. 토마스 바셰크라는 자유저술가가 쓴 <새로운 노동에 대한 철학>이라는 책이 있다. 20여가지 직업을 체화해 자기 생각을 정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중세, 근대, 현대로 넘어오면서 노동철학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요약했다. 노동에 대한 돈, 임금, 분배적 정의를 뛰어넘어서 삶의 문제로 다뤘다.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전문가를 추천해 달라.

자타가 공인하는 노동법 전문가 김지형 전 대법관이 소장으로 있는 해밀 노동법연구소에서는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한다. 변호사, 노무사, 그리고 관료들도 참석한다. 다 열려 있다. 학계에서는 이화여대 도재형 교수, 한양대 강성태 교수, 한양대 박수근 교수가 있다. 건국대 조용만 교수, 서울대 이철수 교수도 있다. 변호사 가운데서는 김선수 변호사, 김기덕 변호사가 있다. 노무사 가운데서도 산업재해 쪽은 권동희 노무사(새날), 이주노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유성규 노무사(참터)가 있다. 민주노총법률원 박주영 노무사는 노동3권을 헌법적 관점으로 접근해 왔다.

-현실적인 조건이 있어서 판결 내용 요약하고 전문가 멘트 하나 받는 정도의 비슷한 포맷으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기자들에게 조언한다면.

일례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문제와 관련해서도 고용노동부도 브리핑을 했다. 아전인수 격 해석이 많다. 그래서 노동판례를 봐야 한다. 노동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기본문법이 되는 부분을 공부하면 그들의 거짓말이 눈에 보인다. 아무런 반박 없이 받아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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