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법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인정하는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내렸으나 노동부는 이주노조 규약에 있는 ‘고용허가제 폐지’를 정치운동으로 규정, 설립신고서 보완을 요구했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노동부는 과거 반려 행위를 취소해야 하나 이를 즉각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가 노조 규약을 문제 삼아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꼴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7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위원장 우다야 라이)에 공문을 보내 오는 27일까지 노동조합 규약 등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노동청은 이주노조 규약에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고용허가제 반대” “연수제도 폐지” 등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노동청은 2005년 이주노조가 제출한 설립신고서에 쟁의행위와 관련한 찬반투표 규약, 총회 절차, 조합 해산 절차 등이 기재되지 않았거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 등 백여개 단체로 구성된 이주공동행동은 13일 성명을 내고 “노동부의 요구는 노조결성권을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정당한 노조활동을 억지로 정치활동으로 얽어매려는 비열한 작태”라고 규탄했다. 이주공동행동은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체류자격이 없다고 하더라도 노조법 상 근로자에 해당하니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노동부가 이주노조의 설립 신고를 재차 반려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노조는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는 물론, 노무현 정부가 시행한 고용허가제를 비판하며 ‘노동비자’ 도입을 촉구해왔다. 노동조합이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규약으로 정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런데 노동청은 뜬금없이 이주노조의 규약을 문제 삼고 규약 개정을 요구했다. 이주공동행동은 “노동조합 활동에서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 개선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활동은 필수적”이라며 “이주노조가 이주노동자의 체류 지위에 상관없는 노동권 보장을 위해, 단속추방에 반대하고 합법화를 요구하고 고용허가제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주공동행동은 “이러한 내용은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유하는 내용이기도 하다”며 “정당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를 두고 정치운동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대한민국 어느 노조의 규약이라도 다 해당될 것”이라고 노동청을 꼬집었다. 이주공동행동은 “차라리 이주노조 설립을 인정 못하겠다면 그렇다고 솔직히 말해야지 이렇게 법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이주노조 설립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즉각 설립필증을 발급하라고 촉구했다.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정영섭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를 개선하고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곳”이라며 “노동부는 ‘노동조합 결격사유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하지만, 이주노조는 임금체불 상담 등 개별적 권리 구제 활동에 집중하는 노조다. 노동부가 이런 활동까지 정치운동으로 보는 것은 이주노조, 나아가 노동조합으로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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