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순방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연일 국내상황에 대해 신문지면과 라디오에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경제위기는 깊어가고 있다. 온 나라가 촛불로 뒤덮일 때에도, 장바구니에서 한숨이 쏟아져도, 대통령에게 험한 소리 안 하던 ‘조중동’이 드디어 대놓고 쏘아대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0일 사설 ‘금리는 대통령 지시를 듣지 않는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17일 라디오 연설 “낮은 금리로 필요한 곳에 자금을 공급해달라”와 18일 화상전화 국무회의의 “시중 금리가 내려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발언 등을 전하면서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도 기업의 대출 요청엔 등을 돌리는 은행들 태도는 비판받을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 해도 대통령이 “시중금리를 내릴 조치를 취하라”고 한 것은 해선 안 될 말”이라고 지적했다.

▲ 11월 20일자 조선일보 31면.
조선, 대통령 “시중금리 내려라”는 현실 모르는 이야기

또 조선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4%로 낮췄지만 은행들의 자금조달 금리는 더 올라갔다. 그만큼 은행들도 돈이 궁한 상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출금리만 낮추라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이고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다. 은행 탓을 하더라도 정부가 해야 할 일부터 먼저 한 뒤에 하는 게 순서다”고 꼬집었다.

같은날 <중앙일보>는 한층 더 격앙된 어조다. 사설 ‘대통령 말만 무성하고 정부는 꼼짝 않고’에서 “이 대통령이 은행권에 자금 공급을 요청한 것은 이번으로 다섯 번이 넘는다”면서 “우선 이 대통령은 앞으로 금융정책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기 바란다”고 쐐기를 박았다. 또 “대통령이 시장원리에 맞지도 않고 금융 시스템의 작동 방식에도 어긋나는 금리인하와 자금지원 요청을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11월 20일자 중앙일보 25면.
중앙 “대통령, 금융정책 언급 그만”…“이런 정부, 정부라 불러야 하나”

이어 중앙은 “대통령의 거듭된 발언은 공허하기도 하거니와 대통령의 권위와 신뢰에 흠집만 더할 뿐”이라면서 “실제로 신용경색을 풀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앙은 마침내 “지금 대통령의 말만 있을 뿐 금융당국의 손발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런 정부를 정부라 불러야 하는가. 참으로 답답한 정부”라고 이명박 정부를 깎아내렸다.

특히 21일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조선-중앙이 강만수 지경부 장관 경질을 요구할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던 이 신문은 이명박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 부인의 차림새를 힐난했다. 김순덕 편집부국장은 칼럼 ‘영부인의 헵번 스타일’에서 대통령과 함께 비행기 트랩에 오른 영부인의 오드리 헵번 스타일의 코트를 언급하며 “패션계에서 ‘헵번류의 복고적 여배우풍’으로 분류한다는 대통령 부인의 차림새는 머리카락 끝을 살짝 말아올린 재키풍 헤어스타일과 함께, 국민과 동떨어진 상류사회 이미지를 발산한다”면서 “경제 살리기를 한다면서 종합부동산세 감세에나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 11월 21일자 동아일보 31면.
동아 “달력 되돌릴 수만 있다면 대통령 바뀔 수도”

또 김순덕 부국장은 종부세 폐지와 재산세 개편설, 대통령 비서동 신축경비와 대통령 특수활동비 증액 등을 거론하면서 “한 나라의 운명을 떠맡은 정부라면, 요즘처럼 비상한 시기엔 국민이 가장 절절해하는 부분에 공력을 집중해야 하는 게 내가 아는 상식”이라며 “당장 종부세 감면이나 비서동 신축이 절실하다고는 ‘로마의 휴일’ 속 헵번 공주 아니곤 말하기 힘들다”고 비꼬고 있다.

이어 “11개월 전 현 대통령을 찍었던 적지 않은 사람이 정적들과 만나고 적진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남의 나라 오바마를 눈물나게 부러워하고 있다. 대통령은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대로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국민이 납득할 만한 국정쇄신을 해야만 한다”면서 “정말로 우리가 달력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대통령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변신이 너무 돌연하기에, 또 자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기에 조중동이 급기야 이명박 정권과 선을 그으려는 것인지는 예단할 수는 없다. 지난 촛불정국 때도 이들은 촛불을 괴담, 배후, 반미로 몰고가다가 그 세가 거대해지자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순정’으로 나왔다”거나 “민주주의는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도 갑자기 말을 바꾼 뒤,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촛불시민을 아동학대범으로 매도한 조중동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경제위기 속에 조중동의 외줄타기는 유난히 힘들고 아슬아슬해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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