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이 경쟁과 상업화로 내몰리고 있어 안타깝다. KBS 수신료를 인상하면 KBS 뿐 아니라, 유료방송과 신문 등 미디어 산업 전체의 활력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6일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다. KBS 수신료를 인상하면 지상파 광고축소에 따른 ‘낙수효과’가 발생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수신료 인상을 강조해왔던 방통위와 새누리당 의원들 역시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 독일과 프랑스 공영방송 재원구조 개편을 통해 살펴봤을 때, 이 같은 기대를 갖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유선영)는 10일 <방송산업의 재원 구조와 미래 비전> 특별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 두 번째 섹션에서는 ‘공영방송 재원 구조 개편이 방송시장에 미치는 재정적 파급효과: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제가 진행됐다. 1987년과 2009년 각각 공영방송 재원구조를 개편한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공영방송 KBS수신료 정책에 시사하는 바를 찾자는 것이 취지였다.

독일의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이 비슷한 경쟁력을 가지게 된 까닭은?

독일과 프랑스 공영방송 재원구조 재편을 통해 공적재원 확대 및 광고축소라는 현 KBS수신료 인상(월 4000원/연간2100억 원 광고축소)과 같은 방향의 정책이 추진됐다. KBS 조대현 사장은 지난달 1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New KBS플랜>으로 △연간 광고규모를 4100억 수준으로 동결(연간 2000억 수준 광고축소), △KBS 2TV 평일 01시~21시 광고 폐지, △중장기적 목표로 ‘광고 완전 폐지’ 설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기도 하다.(▷관련기사 : KBS 수신료, ‘인상’이라 써야하지만 ‘현실화’라고 읽어달라?)

▲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유선영)는 10일 <방송산업의 재원 구조와 미래 비전> 특별세미나를 개최했다ⓒ미디어스

‘독일’ 사례발표를 맡은 한국외대 심영섭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독일은 1984년 1월 Sat.1과 RTL plus가 정식 개국하면서 공영과 민영이 경쟁하는 이원방송체제가 출범했다”며 “초창기 공영방송의 재원은 수신료 70% 대 광고수입 등 기타 30% 비율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상업방송은 100% 광고수입에 의존했다. 방송재원에 대한 별도의 법적 규제조항이 없었던 시절이다. 그 후, 1987년 <연방방송법률>에 해당하는 제1차 방송국가협약(Rundfunkstaatsvertrag)이 서독 11개주에 의해 체결되면서 공영방송의 광고시간에 대한 엄격한 제한규정이 등장한다. 이로 인해 공영방송 라디오는 △하루 광고총량 90분, △광고 가능한 시간은 5시부터 21시까지로 제한됐다. 공영방송 TV는 △하루 방송광고 총량 20분(최대), △광고가능시간은 20시까지(20시부터~22시 금지)된다. 반면, 민영방송에 대한 광고제한은 △최대 일일 방송시간의 15%, 시간당 20%(12분) 등을 제외하곤 특별한 게 없다는 것이 심영섭 강사의 설명이다. 간접광고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공영과 민영의 차이 없이 허용됐다. 독일은 2009년 17.98유로로 수신료를 인상한 후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심영섭 강사는 “독일은 1984년 공·민영 이원방송 체제 도입 이후, 공영방송은 수신료를 주재원으로 방송광고와 기타 수입을 보조적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반면, 민영방송은 광고수입을 주재원으로 유료방송 가입료, 기타 프로그램판매와 통신판매 등을 도 다른 재원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후, 공영방송의 시청점유율은 45%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심영섭 강사는 “이렇듯 독일 방송시장에서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이 비슷한 정도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방송정책결정권자들이 1987년 이원방송체계의 경쟁을 보호하는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프랑스의 공영방송 광고완전폐지 정책은 왜 실패했나

프랑스에서 공·민영 이원체계가 시작된 때는 1984년 지상파 유료방송 Canal+, 1986년 La Cinq와 M6이 잇달아 개국하면서부터다. 1987년 제1공영채널이었던 TF1이 민영화되면서 본격적인 이원체계가 구성된다. 그렇지만 프랑스는 1968년 국영방송체제(ORTF) 하에서 이미 브랜드 광고가 시작됐고 그때부터 ‘방송광고를 통한 수익이 전체 예산의 25%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상한선이 있었다는 것이 단국대 송영주 커뮤니케이션 강사의 설명이다. 프랑스에서는 그후, 2008년까지 공영방송 재원구조는 2/3 수신료 및 1/3은 광고로 유지해왔다.

송영주 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2008년 1월 8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시청자 복지를 위해 광고를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며 “그 후, 코페위원회(공영방송개혁 특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공영방송 재원 구조 재편이 시도됐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공영방송 재원구조 개편은 △광고 단계적 폐지(수신료 소폭 인상 및 물가연동제 도입), △민영방송사업자의 광고매출과 통신사업자 매출 과세로 구가 보조금 마련 후 공영방송 광고수익 손실분 충당 등으로 재편됐다. 방송광고시간의 경우, 공영방송은 △20시~다음 날 06시까지 광고 폐지(144분->84분)됐다. 반면, 민영방송사의 총 광고시간은 △시간당 평균 6분에서 9분으로 확대(144분->216분)됐다.

송영주 강사는 “프랑스 공영방송사의 광고 축소가 민영방송사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으로 민영방송사의 광고매출에 대해 세금을 추가적으로 부과하겠다는 계획이 정당화됐다”며 “이 세금은 1986년 9월 30일 법이 규정하는 방송사업자에 한해서 부과되는데, 과세 대상은 TF1, FTV, Canal+, M6와 신생 DTV채널과 케이블·위성채널까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세율은 연간 3(부가가치세 제외)였지만 정책당국은 (3%를 거둬들이는데)실패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낙수효과’가 그만큼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금제도의 설치로 약9400만유로의 재원확보를 예상했지만 2009년 민영방송사의 광고매출에 대한 과세는 2770만유로 정도의 추가 재원확보가 가능했고, 2010년에는 1780만 유로, 2011년 1700만 유로, 2012년 1800만 유로를 거둬들였다.

송영주 강사는 2012년 상원 상임위 보고서를 인용해 “공영방송의 광고수익이 민영방송사에 고스란히 돌아갔다고 볼 수 없다”며 “특히, 신생 DTV채널들과 인터넷 매체들과의 경쟁이 치열하고, 어느 쪽이 공영방송의 광고수익을 흡수했는지는 알 수 없다. 광고시장이 역동적인 만큼 이 세금으로 영속적인 방법으로 공영방송의 재원을 보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프랑스는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는 시점(2011년 10월 1일)부터 전 시간대 광고를 폐지할 예정이었다”며 “하지만 예산 위기가 지속되면서 이는 2016년까지 유예된 상태다. 공영방송에서 빠지는 광고수익이 다른 민영방송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공영방송에서 빠지는 광고 민영방송으로 갈 것이라는 단순 가정이 문제”

독일 공영방송 재원구조 재편과 프랑스 공영방송 재원구조 재편의 성공과 실패 차이는 1987년과 2009년의 시기차에 따른 매체환경 변화때문 이라는 것이 성균관대 지성우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1987년에는 매체환경이 단순했지만 2009년에는 이미 다매체다채널 시대에 돌입한 상황이라 효과가 달랐단 지적이다. 프랑스의 사례는, 더욱더 복잡해진 미디어환경에서 KBS 수신료를 인상하고 광고를 축소한들 타 매체로 이동이 기대만큼 단순하지 않을 것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지성우 교수는 “1987년 독일은 공영방송으로 가는 광고를 막아 그것이 유료방송으로 갈 수 있었다”며 “반면, 프랑스는 유료방송 말고도 다른 채널이 많았기 때문에 같은 효과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영방송 쪽으로 가는 광고만 막으면 민영방송으로 가겠구나 하는 것은 착각”이라면서 “자칫 잘못하면 포털 및 외국 인터넷 사업자들에게만 좋은 일 시키겠구나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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