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하청-노동조합 상생협약을 파기해 하도급업체 ‘임금삭감’을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케이블 방송 업계 2위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티브로드(대표이사 김재필)가 하도급업체 노동조합의 면담 요청을 두 차례나 거부했다. 티브로드는 협력사 노사문제라며 개입하지 않겠다며 발을 빼는 모양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지부장 이영진)에 따르면, 전국 22개 티브로드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80%가 도급기사이고, 센터는 ‘다단계 하도급’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13년 티브로드와 협력사협의회, 그리고 노동조합은 △재하도급 금지 △상생지원금 지급 등을 핵심으로 한 상생협약을 맺었는데 티브로드는 재하도급을 방치하고 지원금을 수수료에 녹여 임금삭감과 함께 ‘노조 깨기’를 하고 있다는 게 노동조합 주장이다.

올해 협력사협의회는 기본급을 동결하면서 상여금을 성과급으로 전환하는 임금삭감안을 노조에 제시했다. 원청이 내려주는 도급비를 탓하며 희망퇴직을 접수하거나 폐업을 시도하는 센터 또한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티브로드가 지난해 영업이익 1574억원에 당기순이익 1068억원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티브로드의 이 같은 행보를 납득할 수 없다는 분석이 많다.

7일 티브로드지부는 언론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서울 명동 티브로드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티브로드의 실적은) 동종업계 씨앤앰의 390억원, CJ헬로비전의 260억원 당기순이익 규모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티브로드 내 협력업체 AS, 설치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임금삭감과 구조조정에 직면하는 등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티브로드지부와 언론단체들은 “티브로드 원청은 2014년 협력업체 단가수수료 정책을 인당고정비 지급에서 가입자대비 단가수수료 지급정책으로 일방적으로 전환함으로써 협력업체들은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 노동자 임금삭감, 희망퇴직 시행, 도급기사 전환을 실시했다”며 “티브로드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방기함으로 결과적으로 노사상생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티브로드지부는 수수료에 녹인 상생지원금을 고려하더라도 티브로드의 AS단가는 경쟁업체의 절반 수준이라고 밝혔다.

▲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지부장 이영진)는 7일 오전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민주언론시민연합(공동대표 박석운) 언론개혁시민연대(대표 전규찬) 등 언론운동단체와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와 공동으로 서울 명동 티브로드가 입주한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티브로드에 원하청 상생협약을 준수하고 구조조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미디어스)

티브로드지부 이영진 지부장은 “부산 낙동고객센터의 경우, 센터장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고, 조합원을 상대로 영업지표를 ‘압박’해서 노조를 말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조합원들은 해고 위에 놓여 있고, 개인사업자가 되지 않으면 임금이 삭감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지표를 지시하고, 설치·수리기사들을 실적으로 줄세운 뒤 저성과자부터 해고하겠다는 센터까지 있다.

업계에서는 2013년 상생협약을 맺은 티브로드가 하청과 노동조합에 돌아선 배경을 두고 ‘주식시장 상장’을 짚는다. 최근 티브로드는 4개 계열사를 흡수하는 등 상장을 준비 중인데, 이 같은 상황에서 티브로드의 갑작스러운 ‘비용절감’과 ‘노조 깨기’는 모회사 태광그룹의 총수일가와 투자자 사모펀드운용사의 주식가치를 높일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호전 전 태광 회장은 2011년 4천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는 와병 중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이 전 회장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은 여전히 태광산업 지분 43.57%를 보유하고 있다. 이 전 회장과 태광산업 등 특수관계인은 티브로드 지분 79.05% 이상을 보유 중이다. 티브로드가 실적을 끌어올려 상장한다면 최대수혜자는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원청이 하청을 옥죄고, 하청은 노동자를 길거리로 몰아냈다. 그런데 당기순이익 1060억원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인가. 노동자에게서 빼앗아간 것이다. 상생협약을 파기한 것도 모자라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탈바꿈시키려고 한다. 원청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문제를 만든 장본인은 진짜사장 원청 티브로드”라고 말했다.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 박석운 공동대표(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티브로드는 상생협약을 어기면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변칙적인 재하도급을 하고 있다”며 “특히 연간 천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한 사업자가 자신이 합의한 협약을 어기고 반사회적 작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티브로드가 방송사업자가 지켜야 할 공공성을 버리고 막무가내로 나선다면 상장과 지주회사 합병을 저지하는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최재혁 간사는 “법률을 따질 필요가 없다. 노동의 문제도 아니다. ‘약속은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은 예의와 상식의 문제다. 돈을 그렇게 많이 벌고, 심지어 벌어오는 사람을 내팽개치는 것은 상식과 예의에 어긋난 것이다. 시민단체도 적극 결합하겠다”고 말했다. 노동당 최승현 부대표는 “2013년부터 투쟁과 승리로 일군 것을 티브로드가 싸그리 지키지 않고 있다”며 “올해는 진짜사장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노동당도 힘차게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희망연대노동조합 티브로드지부는 최근 두 차례 면담을 요청했다. 티브로드 신인철 인사팀장은 이날 오전 미디어스와 만나 “(노조 요청에) 회신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그는 회신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죄송하다” “홍보팀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홍보팀 관계자는 “회사 입장은 협력사 노사 문제이고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면담 요청 공문에 회신하지 않은 이유는) 확인한 뒤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후 2시50분 현재 티브로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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