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가 이승만 정부의 망명 추진 단독보도 이후 이루어진 전례 없는 반론보도를 두고 “굴욕적”이라며 “조대현 사장이 연임을 위해 보수세력에게 굴복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KBS <뉴스9>는 지난달 24일 일본 야마구치현의 문서를 근거로 6·25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가 일본 망명을 추진했다고 단독보도했다. 다음날에는 임진왜란 때 선조와 한국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을 거론하며 지도자들의 ‘심약함’은 죄가 아니지만 그 결과를 고스란히 백성들이 떠안았다는 인터넷 뉴스가 나갔다. KBS 보도를 두고 종북좌익척결단 등 극우 성향의 시민단체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고, 조선일보, 뉴데일리 등의 매체도 한목소리로 KBS 보도를 비난했다.

▲ 7월 3일 KBS <뉴스9> 보도

보도가 나간 지 9일 만인 지난 3일, KBS <뉴스9>는 “KBS는 앞서 충분한 반론 기회를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승만 기념사업회, ‘일 망명 정부 요청설’ 부인>(▷링크) 리포트를 통해 이승만기념사업회 측의 반론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승만기념사업회의 반론은 “항상 6.25 사변 중에서도 권총을 옆에다 놓으시고 주무셨어요. 결국 싸우고 죽는다 이것이지”, “이땅에 일본인들이 오게 되면 공산당에 겨누었던 총을 그놈들한테 먼저 겨누겠다고 그러셨거든요” 등 이승만 대통령의 ‘성정’을 강조한 내용으로 보도와는 무관한 ‘주장’에 가까웠다. 한편, 반론 보도 전후 과정에서 6월 24일, 6월 25일 기사는 모두 삭제돼 현재 KBS뉴스 홈페이지에서 볼 수 없는 상태다. (▷ 관련기사 : <KBS 이사장 “이승만 보도, 시끄럽다” 전례없는 ‘긴급 이사회’ 소집>)

새 노조는 “KBS에 대한 보수진영의 압박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승만기념사업회 등 보수단체들이 해당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보도본부장과의 면담을 진행했고, KBS 사측은 언론중재나 소송 등의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수단체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내용의 반론 보도를 들어줬다”고 밝혔다.

새 노조는 “만약 KBS가 낸 보도에 오류가 있거나 관련 보도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당연히 KBS는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해당 보도에서 오류가 있는 부분은 일본 외무성이 야마구치현 지사에게 한국 정부의 망명 요청설을 전했다고 한 날인 1950년 6월 27일이(라는 날짜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6.25 발발 직후 이승만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미국 정부에 망명 정부 수립 의사를 타진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 무초 주한 미 대사가 1950년 6월 27일에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을 보면 ‘신성모(국방부 장관 겸 총리서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내각이 일본에 망명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지 여부를 내게 타진했다. 이에 대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나와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반론은 마치 당초 보도가 전체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것처럼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과도하고 굴욕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고 지적했다.

▲ 7월 3일자 KBS <뉴스9> 보도

새 노조는 “통상적인 반론보도였다면 27일 날짜 표기의 오류에 대한 수정과 우리 보도의 한계에 대한 기념사업회 측의 입장을 단신으로 전하는 정도면 됐을 내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유감 표명과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의 내용까지 담아 당초 보도와 같은 분량과 형식의 리포트로 반론보도를 내주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굴욕적 반론보도가 나간 것”이라며 “명백한 오보에 대해서도 이 같은 대처를 하지 않았던 KBS가 왜 이번 보도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처가 달랐는지에 대해 사측은 명백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새 노조는 “사측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격적이고 굴욕적인 방식으로 이승만기념사업회 측의 반론 보도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조대현 사장이 연임을 염두에 두고 뉴라이트 학자 출신인 이인호 이사장과 보수진영에 굴복한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중재와 소송 등의 절차를 통해 자사 보도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하기 보다는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부의 압력에 미리 겁을 먹고 정당한 절차조차 포기한 것은 조대현 사장과 강선규 보도본부장을 비롯한 사측이 공영방송을 수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능력조차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며 “앞으로 공정방송위원회 등을 통해 조 사장을 비롯한 사측의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 노조는 이승만 보도와 관련해 8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한 KBS이사회 이인호 이사장에 대해서도 “공사의 독립성을 위해 존재해야 할 이사회가 개별 보도의 내용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것은 이사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부당한 방송 개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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