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D-day)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공언한대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가 어떤 모양새로 정리되는지에 따라 이후 정국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지도부와 합의한 당사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승민 원내대표를 특정해 비난하는 바람에 새누리당 내의 계파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정국이 얼어붙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그간 주장해온 대로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친박계 인사들은 이후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 일단 함구하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주변에서는 사퇴불가론과 불가피론이 교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을 경우 친박계 일부에서는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는 언급까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비박계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입장이 중요해진다. 김무성 대표는 사태 초기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막는 듯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명분있는 사퇴’를 주장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자칫 잘못하면 친박 대 비박의 전면전이 시작될 수 있으므로 어떤 경우든 파국을 피하자는 게 김무성 대표가 반복해서 내놓고 있는 입장의 핵심이다. 김무성 대표가 여기서 잘못 처신하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결코 단순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언론들은 나름 사태의 수습을 위해 행보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결국 사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는 보수언론들의 입장은 일치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각각의 입장에서 미묘하게 다른 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조선일보는 이날 지면에 <유승민 원내대표도 분명한 입장 밝혀야 할 때 왔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그간 유승민 원내대표가 거취에 대한 입장을 제대로 밝히지 않아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한 이상 내년 5월까지인 임기를 채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와 여당 관계가 비정상인 상황을 그때까지 끌고 간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 둘 중의 한 사람은 그만둘 수밖에 없는데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이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면서 “유 원내대표가 끝까지 가겠다는 것은 옳지도 않다”고 썼다.

▲ 조선일보 6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대통령까지 포함된 여권의 내홍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면 국정은 산으로 갈 테고, 그 가장 큰 책임은 유 원내대표가 지게 될 것”이라면서 “일단 유 원내대표가 시기를 못박아 퇴진을 공식화하면 친박계도 추경 통과 때까지는 기다릴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한다”고 썼다. 또, 조선일보는 “정치인이 갈림길에 서게 됐을 때 자신이 손해 보는 쪽으로 갈 경우 큰 실패가 없었다. 국민이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도 썼다. 종합해보면 유승민 원내대표가 억울할 수 있겠으나 참고 접어줘야 한다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조선일보는 이날 <정무수석 공석 50일째>라는 제목의 짧은 사설을 함께 배치했다. 여기서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 들어 정무수석이 장기간 공석이거나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면서 “청와대 정무수석은 단순한 대통령의 정치권 심부름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만약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면 당·청 관계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청와대는 수석들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조직이다. 그 중에서도 정무수석은 핵심이다. 이 구멍을 빨리, 제대로 메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도 촉구했다. 파국으로 치닫는 당청관계가 박근혜 정권을 지속적으로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어떻게든 사태의 해결을 모색해보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의 경우 이날 지면에 이 문제에 대한 기사와 사설을 최소화시켰다는 게 포인트다. 중앙일보는 유승민 원내대표를 둘러싼 정국에 대한 기사는 단 두 건만을 배치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여부와 방식, 이후 상황 변화를 전망한 기사와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막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마주쳤음에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그것이다. 중앙일보는 다른 신문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사설도 배치하지 않았다.

▲ 중앙일보 6일자 칼럼

하지만 중앙일보는 강찬호 논설위원 명의의 <김무성 “고개 들면 죽는다” 공포 이겨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나름의 입장을 개진했다. 강찬호 논설위원은 이 글에서 김무성 대표가 과거 대통령 선거에 두 번 출마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점을 거론하면서 대구경북(TK) 지역 여론을 거스르면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체화하였을 것으로 예측했다. 강찬호 논설위원은 야당의 차기 대권주자 다수가 부산경남(PK) 출신인 상황에서 김무성 대표가 TK표심을 잡지 못하면 대통령 꿈을 꾸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후 정치권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선 TK지역의 여론관리가 필요하다며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찬호 논설위원은 “결국은 대통령의 구심력에서 벗어난 독자성이 있어야 한다. 김무성 스스로 대통령과 차별화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라면서 “약점을 보완해줄 인물이 유승민이다. 경제통인 데다 개혁 성향이 분명해 러닝메이트로 삼으면 외연이 크게 확장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김무성 대표가 나서서 유승민 원내대표 편을 들어달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김무성 대표의 역할을 주문하는 건 동아일보 역시 마찬가지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청와대와 함께 국정의 한 축을 책임진 집권당의 김무성 대표가 친박과 비박의 틈바구니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차기 대선을 내다보는 김 대표가 대통령과 각을 세울 순 없는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줄타기’만 하는 것은 진정한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올 4월 중남미순방에 나서기 직전 김무성 대표를 만나 ‘뒷일’을 부탁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제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게 그 빚을 갚을 때”라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6일자 사설

결론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의 입장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국회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한 김무성 대표의 ‘입장’은 표결 불참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새삼스레 존중해줘야 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즉, 동아일보의 주장은 이 다음이 핵심이다. 동아일보는 사설의 다음 대목에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 표결에 참가해서 함께 상정될 61개 경제 관련 법안 처리 무산을 막아야 한다면서 “야당에 책잡히지 않으려면 여당도 국회법 개정안 재의 표결에 당당하게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6일자 칼럼

동아일보는 이날 지면에 <대통령에 대한 예의, 대통령의 예의>라는 제목의 심규선 기자 명의 칼럼을 실었다. 심규선 기자는 이 글에서 “나는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지지한다”면서 “다음은 당에 맡기고 제2, 제3의 수는 갑 속에 넣어두는 게 옳다”고 썼다. 이를 동아일보의 입장으로 해석한다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퇴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대통령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나머지 문제는 여당이 알아서 해결하게 두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실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중앙일보의 주장처럼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을 들이받거나, 동아일보의 주장처럼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 재의요구안에 표결 참석을 할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보수언론의 이런 제각각 엇갈리는 행보를 보면 이번 상황이 얼마나 정치적 측면에서 비상식적인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체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이례적 상황이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본인의 생각과 언동에서 비롯됐다는 점이야말로 현재 정국의 가장 슬픈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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