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음악웹진 <보다>의 김학선 편집장이 미디어스에 매주 <소리 나는 리뷰> 연재를 시작한다. 한 주는 최근 1달 내 발매된 국내외 새 음반 가운데 ‘놓치면 아쉬울’ 작품을 소개하는 단평을, 한 주는 ‘음악’을 소재로 한 칼럼 및 뮤지션 인터뷰 등을 선보인다.

시작하며

음반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좋은 음반들은 매일같이 나오고 있다. 음반의 종말을 얘기하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시대에 뒤처져(?) 음반을 내고 또 그 음반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코너는 그 음반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싱글이 아닌 EP 이상의 음반들이 그 대상이고, 뛰어나거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새 음반들을 6장씩 소개하려 한다. 절대 객관적이지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나의 취향과 선택이 한 사람에게라도 닿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국내 음반

바이 바이 배드맨(Bye Bye Badman) / <Authentic> (2015. 6. 4.)

2011년의 바이 바이 배드맨(이하 BBB)은 진정 찬란했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을 비롯해 많은 신인 음악가 선발 대회에서 그들은 이름을 올렸다. ‘상금사냥꾼’이란 농담이 들릴 만큼 BBB만큼 돋보이는 신인은 없었다. 같은 해 발표한 첫 앨범 <Light Beside You>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 상도 받았다. 처음의 임팩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꾸준히 활동했고 지금 두 번째 앨범을 내놓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BBB의 새 앨범은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만든다. 거칠게 분류해 과거의 그들이 오아시스(Oasis) 같았다면 지금의 BBB는 워시드 아웃(Washed Out)이나 토로 이 므와(Toro Y Moi) 같다. 영국의 록 음악이 과거 BBB의 자양분이었다면 지금은 신스팝이나 칠웨이브 같은 음악이 BBB의 곳곳에 파고들어가 있다. 프로듀서도 글렌 체크(Glen Check)의 김준원에게 맡겼다. 다행스러운 건 이런 변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스타일은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곡을 잘 쓰는’ 그들은 변화된 스타일 안에서 자신들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신디사이저가 전면에 나선 밴드가 됐지만 BBB의 매력은 휘발돼지 않고 그대로 담겨있다. 여름밤에 더 잘 어울리는 청춘의 사운드가 여기에 있다.

빌리 카터(Billy Carter) / <Billy Carter> (2015. 6. 18.)

두 명이 활동하던 시절부터 빌리 카터를 봐왔다. 김지원과 김진아는 어쿠스틱 기타를 매고 한국에서 듣기 어려운 블루스와 힐빌리, 컨트리 음악을 들려줬다.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수많은 버스킹 무대를 가졌던 이들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클럽 무대와 거리를 가리지 않고 공연을 했다.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돼서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빌리 카터는 3인조 밴드가 됐다. 드러머 이현준이 들어오면서 어쿠스틱 기타는 일렉트릭 기타로 바뀌었고, 사운드는 훨씬 로킹해지고 과격해졌다. 둘이 할 때부터 돋보였던 불량스러운 매력 역시도 더 진해졌다. 블루스를 전면에 내세웠고 개러지나 컨트리 같은 것들이 따라 붙는다. 말하자면 스타일은 그대로, 혹은 더 넓게 가져가면서 사운드의 증폭을 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들려주거나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이 생겼다. 라이브 무대가 그 증거다. 가끔씩 2인조 시절의 단출한 매력이 생각날 때도 있지만, 이 트리오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에너지는 확실히 인상적이다. 이 직선의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면 당장 홍대 앞에 있는 클럽 FF로 가라. 더 뜨겁고 더 매력적인 빌리 카터가 무대 위에 있을 것이다.

윤수일 밴드 <1집> (2015. 4. 21.)

‘사랑만은 않겠어요’는 ‘아파트(A.P.T)’와 함께 윤수일을 대표하는 노래다. 1976년 열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윤수일(과 솜사탕)은 이듬해 안치행이 만든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부르며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로도 안치행이 이끄는 안타기획 소속 가수로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윤수일은 ‘밴드’라는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룹사운드란 모호한 명칭이 통용되고 있을 때 그는 과감히 윤수일 ‘밴드’를 결성해 새로운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안치행의 곡을 받아 부르던 그는 윤수일 밴드에서는 대부분의 곡을 직접 만들고 외국의 곡을 밴드 사운드로 새롭게 담았다. 윤수일이 주창하던 ‘시티 뮤직’은 1981년 나온 이 앨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2의 고향’은 이를 대표하는 곡으로 정서적으로나 스타일에서나 윤수일이 들려주고자 했던 잘 만든 ‘성인 취향’의(AOR) 록 음악이었다. 그는 좋은 작곡가였고 좋은 보컬리스트였다. 앨범의 마지막엔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의 ‘Passion’을 번안해 부르는데 로드 스튜어트와는 또 다른 보컬의 맛을 전해준다. 지금의 기준에서도 가끔씩 깜짝 놀랄 만큼 세련된 구석이 많다. 그 시절을 선도했던 도시의 음악이 35년 만에 재발매됐다.

이정식 / <Harmonia: Saxophone With Organ> (2015. 6. 16.)

일반 대중에게 이정식은 여전히 ‘한국의 케니 지’일지 모른다. 물론 이정식이란 이름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을 때 그 역시 ‘밤으로 가는 기차’로 대변되는 듣기 편한 곡들을 발표했었다. 하지만 ‘밤으로 가는 기차’의 이미지로만 규정짓기엔 이정식이란 색소폰 연주자의 세계는 훨씬 더 넓고 깊다. 그는 한국 재즈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고, 이지리스닝에서 프리 재즈까지 광대한 재즈의 세계를 대중에게 알려왔다. <Harmonia: Saxophone With Organ>은 이정식의 또 다른 세계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으로 분류될 이 앨범에서 이정식의 색소폰은 앨범 제목처럼 파이프 오르간과 함께한다. 누군가는 ‘주의 기도’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생명의 양식’ 같은 제목만으로도 거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감마저도 누그러지게 할 정도로 음악의 울림이 크다. 이정식의 색소폰은 더없이 부드럽고 오르간은 훌륭한 배경이 되어 그 모두를 넉넉하게 감싸 안는다. 사랑이 혐오보다 강한 것처럼 좋은 음악 역시 반감보다 강하다. 성스럽고 아름답다.

* 국외 음반

조 바르비에리(Joe Barbieri) / <Chet Lives!> (2015. 5. 26.)

지금 한국에서 조 바르비에리란 음악가를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당연히 그 수는 정말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아무리 조 바르비에리란 이름이 낯설다 해도 그의 음악을 듣는 순간 그 보편적인 감성에 모두가 매료되고 설득될 거라는 것이다. 조 바르비에리가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되기 전 운 좋게 그의 음악을 먼저 들었던 나부터가 그랬다. 조 바르비에리는 ‘이탈리아의 카에타누 벨로주’로 불리며 재즈와 월드뮤직의 경계에서 음악을 해온 음악가다. <Chet Lives!>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이다. 쳇 베이커의 연약한 음악이 그랬듯이 조 바르비에리의 음악 역시 <Chet Lives!> 안에서 더없이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감상용 음악이자, 훌륭한 배경음악이 되어줄 것이다. 자연스럽고 부담 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오랜 친구 같은 음악을 만나게 될 것이다.

트릭스터(Trixter) / <Human Era> (2015. 6. 4.)

이것은 트릭스터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에볼루션 뮤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헤비메탈 시장은 ‘열악’이란 말을 세 번 정도 반복해야 할 정도로 ‘열악열악열악’하다. 에볼루션 뮤직은 그 열악한 시장 상황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꾸준하게 양질의 하드록·헤비메탈 앨범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는 레이블이다. 트릭스터의 음악은 어쩌면 에볼루션 뮤직의 상황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누구나 쉽게 헤비메탈은 한물갔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꾸준하게 헤비메탈을 지키고 있는 에볼루션 뮤직처럼 트릭스터 역시 많은 이들이 구닥다리라 생각하며 주목하지 않는 하드록과 헤비메탈을 고집한다. 그들은 1990년에 데뷔했지만 그때는 이미 헤비메탈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대적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1990년대 초반 해체했던 팀은 2012년 재결성해 여전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사운드는 경쾌하고 멜로디는 귀에 쏙쏙 박힌다. ‘멜로딕’이란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을 정도로 각 곡은 좋은 멜로디와 훅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잘 만든 음악 앞에서 시대성이나 트렌드 같은 말들은 무의미하다.

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위원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을 맡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K-POP, 세계를 홀리다>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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