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20층 VIP병실. 그 곳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하 호칭 생략)이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전국에서 VIP병실이 가장 많은 병원으로 19층에 53개, 20층에 8개가 있다. 이건희가 있는 20층은 19층보다 병실이 더 넓고,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보안요원이 엄격히 출입을 통제한다. 호텔로 치면 ‘로얄 스위트 룸’인 것이다.

이건희는 급성심근경색 후 의식을 찾지 못했으나 삼성서울병원에서 에크모 치료(체외막 산소화 장치), 체온을 32도 까지 낮추는 저체온 치료 등 최첨단 치료를 받으며 1년이 지난 지금도 입원 중이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강남성모병원 등 소위 ‘빅5’라고 불리는 서울의 대형병원은 규모, 시설, 기술 수준 등에서 한국 의료의 정점에 있다. 암, 심근경색과 같은 중증질환에 걸리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찾는 곳이다. 특히 아산병원과 삼성병원은 현대와 삼성이 운영하는 ‘재벌병원’이다.

이렇게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이 지금 메르스 최대 진원지가 되었다. 6월 22일까지 메르스 확진자 172명 중 84명이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되었다. 삼성서울병원장은 사과 기자회견을 했고, 병원 이사장으로 갓 취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응급실은 부분 폐쇄가 되었고, 병원 주변 일원동 일대는 인적이 끊겼다.

▲ 지난달 23일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내원객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직접 머리를 숙여 사죄한 뒤 환자 치료는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뚫렸다”

처음에는 삼성서울병원이 억울할 만했다. 번복하긴 했지만, 삼성서울병원의 감염내과 과장은 국회에서 “정부가 뚫렸다”고 말했다.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이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는 초기 대응에서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메르스 발생 병원과 지역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은 채 괴담 확산을 막겠다고 헛다리만 짚었다.

삼성서울병원은 5월 20일에 1번 환자를 최초로 확진한 병원이다. 그러나 평택성모병원에 같이 있다가 감염된 14번 환자는 정부의 방역 관리망 밖에서 움직이다가 5월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왔고, 이것이 2차 유행의 시작이었다. 만약 정부가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 시기에 병원에 있었던 환자와 보호자, 병원 방문자들이 보건당국에 신고하도록 조치를 취했다면 이런 사태를 막았을 수도 있다.

평소에 감염병 관리를 위한 충분한 전문 인력도 확보하지 않았고, 현장의 판단을 존중하며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체계도 없었다. 재난적 상황에서 시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협조를 구할 것인지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 허술한 국가 방역체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시장 바닥’에 누워있는 환자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삼성서울병원의 2차 유행은 평택성모병원의 1차 유행보다 훨씬 많은 감염자를 발생시켰고, 그 확진자들은 전국에 분포해 있었다. 다시 전국적 차원의 방역망이 구성되어야 했다.

14번 환자가 이틀간 체류했던 삼성서울병원의 응급실은 ‘시장 바닥’과 같았다. 빅5 병원이 다 그렇듯 삼성서울병원 역시 응급실이 포화상태이고, 응급실 체류시간이 길다. 뿐만 아니라 가족, 보호자들까지 간병을 위해 병원에 있으니 메르스가 확산되기 딱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바로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와 병원 양극화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 ‘의료쇼핑’을 해 본 경험이 있다. 옷을 고를 때처럼 기분 좋은 쇼핑은 아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치료를 받아도 병이 낫지 않을 때 새로운 병원을 찾는다. 한국에서는 환자가 어느 지역에 살든, 어떤 병이든 자기가 원하는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편리한 듯 해도 문제가 있다. 메르스 환자들은 초기에 메르스란 확진을 받지 못하고 여러 병원를 돌아다니면서 사태를 확산시켰다.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 있고 주치의 제도를 갖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 있으면, 환자에 따라 병원의 역할과 기능이 분리된다. 1차 의료를 책임지는 동네병원의 의사들은 주치의가 되어 평소 환자의 건강상태, 직업, 여행력 등을 파악한다. 주치의는 자기 환자가 중증질환에 걸려서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2, 3차 병원에 환자를 의뢰하면서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병원의 대부분이 공공병원이고, 국가가 의료비를 거의 다 책임지는 영국의 국가의료서비스(NHS)가 이러한 방식이다. 우리와 비슷한 전국민건강보험체계를 가지는 대만도 주치의 제도가 있다.

한국은 이러한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어 있다. ‘빅5‘ 대형병원에 전국의 환자들이 몰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동네의원도, 지역병원도, 서울 대형병원도 같은 환자를 두고 경쟁한다. 진료를 받거나 입원을 하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빨리 입원하기 위해 응급실로 가기도 한다. 응급실이 꽉 차서 환자들이 대기실에도 누워있고, 심지어 병원 바닥, 야외 벤치에도 눕는다.

붕괴된 의료전달체계 속에서 빅5 병원은 유일한 승자였다. 지난 10년간 빅5 병원의 환자 점유율과 매출은 계속 늘어났다. 그러한 ‘일류’ 삼성병원이 시장바닥 같은 응급실을 방치하고 있었고, 감염 의심환자가 올 경우 격리해서 치료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은 메르스 바이러스의 서식처가 되어버렸다.

열악한 인프라와 병원 노동자

한국의 의료수준은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 미국의 80퍼센트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고, 암 환자 생존율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한국의 병원은 진단과 치료에서는 고가 장비와 시설을 확보하고 전문적 인력을 양성한다. 그러나 정작 병원 내부의 감염관리, 질병예방, 환자의 안전과 같은 기본적 공공인프라를 갖추는 것에는 소홀했다.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이 그랬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의심 환자와 접촉했던 의료인에 대한 격리조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심자를 적극 격리한 다른 병원과 달리 삼성서울병원은 초기에 폐쇄조치도 하지 않고, 역학조사도 늦은데다 정부와 서울시에 격리자 명단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아 정부가 특혜조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환자 이송 인력인 137번 환자는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9일간 일했다. 외주 업체 직원이라 관리가 되지 못했다는 의혹이 발생했고, 서울시에서 비정규직 전수조사까지 했다. 이 외에도 새롭게 발생한 많은 확진자들이 격리자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의 자체 방역망은 너무나 허술했다.

특히 의료진, 보안요원, 환자이송요원 등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노동자가 다수 감염된 것은 충격적이다. 병원 내 감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병원 내 감염 예방 체계는 지금처럼 비상시기가 아니라도 병원이 갖춰야 할 기본적 인프라다. 그러나 음압격리병실, 동선을 분리할 수 있는 시설, 의료진을 보호할 방호복과 마스크 등의 기본적 시설과 장비조차 제대로 갖춰놓지 못했다. 또한 사전에 교육과 훈련이 부족했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런 문제는 병원 인증평가 제도를 통해 방지되었어야 했지만, 정부는 병원인증평가 마저도 민간기관에 위탁해서 형식적 평가에 그쳤다.

공공의료체계 혁신부터 시작하자

신자유주의 의료 정책은 병원의 영리행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영리병원 허용, 민간의료보험 확대 등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돈이 되지 않는 필수의료, 특히 질병예방이나 감염병 관리에는 소홀했다. 국가지정격리병상, 음압 병상을 충분히 준비해두지 않았다. 또한 수익성이 낮은 필수 의료를 책임져 온 공공병원을 ‘애물단지’ 취급해왔다. 국립대병원에 경영평가를 도입하면서 공공병원에 돈벌이를 강요하고, 진주의료원처럼 적자를 빌미로 공공병원을 폐업시키기도 했다. 메르스가 발생하자, 정작 정부가 지정병원으로 활용한 곳은 공공병원이었다.

돈벌이 경쟁에 내몰려왔던 민간병원은 전염병 대응을 위한 시설과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일임에도 병원은 병원업무를 계속해서 외주화 시켜왔다. 병원의 외주화는 불안정한 고용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숙련된 인력이 부족해지고, 의료서비스 질이 저하되는 현상을 불러왔다. 이건희 회장은 살려내지만, 정작 병원 내 의료진, 비정규직 노동자와 환자들의 건강은 지키지 못한 삼성서울병원의 모습은 한국 병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가지정격리병상의 확충을 포함해 국가의 방역체계 전반을 전면 혁신해야 한다. 또한 병원 내 감염관리 체계를 재정비하고 이를 관리 감독하는 정부의 역할도 재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 공공병원을 수익성 잣대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전염병 관리와 같은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가야 한다.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보건소로 이어지는 협력체계를 구축해 공공부문부터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간병원 또한 공공적 역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사스, 신종플루 등 전염병 확산 사태가 있을 때마다 이런 논의가 있었으나, 실질적 조치는 미흡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올해 메르스 사태 이후 생명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이번에는 꼭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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