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간의 역사가 담겨 있는 MBC 옛 사옥이 면세점으로 탈바꿈 한다?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레미콘과 아스콘, 건설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유진기업이 MBC와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MBC 옛 사옥에 시내 면세점을 추진하고 있다. ‘유진기업을 면세점 운영 기준에 맞는 중소기업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결과는 10일 결정된다.

관세청은 최근 늘어나는 관광객들의 수요에 맞춰 서울 3곳(대기업2곳, 중소·중견기업 1곳)과 제주 1곳에 신규로 시내 면세점 운영권을 허가할 계획이다. 서울지역 일반경쟁 입찰에는 ‘호텔롯데’, ‘HDC신라면세점’, ‘신세계DF’,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SK네트웍스’, ‘현대DF’, ‘이랜드면세점’ 7개 법인이 참여를 신청했다. 중소·중견기업 입찰에는 ‘유진DF&C씨’, ‘세종면세점’, ‘청하고려인삼’, ‘신홍선건설’, ‘파라다이스’, ‘그랜드동대문DF’, ‘서울면세점’, ‘중원산업’, ‘동대문듀티프리’, ‘SM면세점(하나투어)’, ‘하이브랜드듀티프리’, ‘SIMPAC’, ‘듀티프리아시아’, ‘동대문24면세점’ 총 14곳이 참여했다. 제주지역 입찰에는 ‘제주관광공사’와 ‘엔타스듀티프리’, ‘제주면세점’ 3곳이 신청했다.

면세점 사업 전체 매출은 2007년 2조6442억 원에서 2014년 8조3077억 원으로 급증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릴만한 수치다. 그런만큼 기업들은 이번 시내 면세점 입찰에 높은 기대감을 가졌다.

치열한 경쟁만큼 잡음 또한 크다…또 다시 재벌 몰아주기?

그렇지만 많은 기업들이 입찰에 참여하면서 벌써부터 ‘잡음’이 일고 있다. 관세청이 최종 결과를 발표할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기업들 간 과열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재벌 몰아주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서울지역 시내면세점 입찰을 둘러싼 ‘잡음’ 중심에는 증권가 보고서가 있다. 이와 관련한 보고서가 발표될 때마다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널을 뛴다. 그러다보니 논란도 심심찮게 생겨난다. A증권과 현대백화점 갈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A증권은 <유통업! 왜 면세점에 열광하는가?> 분석 보고서를 통해 서울지역 시내면세점 사업자로 ‘SK네트웍스’와 ‘신세계’가 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반면 현대백화점에 대해서는 ‘면세점 운영경험이 전무하다’, ‘선정된 지역 근처 롯데면세점이 위치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낮은 점수를 줬다. 현대백화점 측에서 곧바로 “공정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보고서 삭제 요청했고 결국 이는 갈등으로 번졌다.

▲ 여의도 MBC 옛 사옥ⓒ미디어스
이러다보니 과열양상을 비판하는 언론보도도 심심찮게 나온다. 세계일보는 <면세점 입찰 점수 매기는 ‘증권사 꼼수’>(▷링크) 기사를 통해 “증권사의 보고서 내용에 따라 해당 기업의 주가가 급등락을 거듭해 주식시장의 혼탁과 과열도 부추긴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일보는 “일각에서는 주가 시세차익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뉴스토마토는 <사공 넘치는 시내 면세점 입찰 ‘혼탁양상’>(▷링크) 기사를 통해 증권가 보고서와 관련해 “입찰 기업 중 상장사 모두는 한번 이상 유리한 보고서가 나왔지만 비상장사인 롯데면세점과 이랜드에게 유리한 보고서는 한개도 없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면세점 시장을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가운데, 관세청의 이번 시내 면세점 입찰 또한 대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과 홍종학 의원은 면세점 시장의 독과점을 우려해 ‘롯데’와 ‘호텔신라’의 면세점 운영 허가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면세점 시장에서 롯데의 점유율은 50.76%(2014년 말 기준)에 달한다. 호텔신라 역시 30.54%를 점유하고 있다. 두 기업이 이미 면세점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면세점 운영을 추가로 그들에게 허가하면 독과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2일 “롯데와 신라호텔이 (면세점)시장지배적 사업자는 맞다”면서도 “이들 업체가 입찰하는데 법적인 제재를 할 근거는 없다”는 의견을 관세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종학 의원실 관계자는 “면세점 사업이 ‘재벌 편들기’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며 “정부는 이 같은 지적 때문인지 이번에는 중소·중견 기업에 면세점 한 곳을 별도로 내줄 계획이지만 그 또한 우려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중소·중견 입찰에 참여한 유진기업과 파라다이스 등의 규모를 봤을 때 재무제표 연결기준으로 계산한다면 중소기업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도 지적했다. 이어, “만일 연결기준으로 계산하지 않는다면 대기업들도 자회사를 내서 중소·중견 입찰에 나설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냐. 이번이 아니더라도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MBC 옛 사옥, 면세점 추진된다면?

서울지역의 경우 중소·중견기업 신규 면세점 입찰에서 14대 1로 경쟁률이 높아 가장 뜨거운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중 두각을 나타내는 입찰 기업은 MBC 옛 사옥에 면세점을 추진하고 있는 유진기업(유진디에프앤씨)이다. MBC는 당초 옛 사옥을 매각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부동산 경기가 하락해 무산됐다. 이로 인해 옛 사옥은 10개월째 공실 상태다.

1982년도에 준공된 옛 사옥은 MBC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최근 MBC <무한도전>은 MBC 옛 사옥을 활용해 ‘나 홀로 집에’ 특집 편을 선보이기도 했다. 기획하기에 따라 이외에도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다.

▲ (사진=유진기업)
유진기업은 이 같은 MBC 옛 사옥의 ‘스튜디오’와 ‘공개홀’, ‘드라마 세트장’, ‘공연장’ 등 방송시설을 그대로 활용해 한류문화콘텐츠 사업과 쇼핑 사업을 결합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면세점 공모에 도전장을 냈다. ‘한류 문화콘텐츠’라는 슬로건을 내건 만큼 유진기업은 이미 ‘FT아일랜드’, ‘씨앤블루’, ‘AOA’ 등 유명 아이돌이 소속돼 있는 FNC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을 소유하고 있는 뮤지컬 공연 전문 제작업체 설앤컴퍼니, ‘비밥’의 제작사 페르소나, ‘점프’의 제작사 예감, ‘페인터즈히어로’의 제작사 펜타토닉 등 공연 및 한류 콘텐츠 관련 업체들과도 제휴를 맺은 상태다. MBC 옛 사옥은 지리적으로도 경쟁기업들과 대비해 공항 근접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경쟁자들도 있다. 같은 중소·중견 입찰에 참여한 하나투어 역시 엔터테인먼트 IHQ와 큐브와 업무협약을 마친 상황이다. IHQ는 한류스타 김우빈을 비롯해 장혁, 김유정, 김소연 등이 소속돼 있다. 큐브는 아이돌 비스트, 포미닛 등을 주축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사다. 이처럼 하나투어는 한류 문화콘텐츠라는 유사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경쟁기업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MBC가 유진기업과 MOU를 맺게 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해 MBC 홍보팀 관계자는 “옛 사옥 매각 추진은 신사옥 이전 자금 마련을 위해서였지만 여타 경영적인 노력과 성과를 통해 자금을 충당했다”며 “이에 따라 급히 매각할 이유가 없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도 매각이 유리하지 않다. 유진과의 MOU는 현 상황에서 이런 종합적인 경영판단에 따라 회사와 사원들을 위해 최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MBC 옛 사옥을 MOU를 통해 면세점으로 탈바꿈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들이 많다. 한 언론학 박사는 “유진기업이 설명하는 대로 MBC의 방송시설을 잘만 활용한다면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며 “상암동으로 이전한 이후,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보더라도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 한 관계자는 “MBC가 옛 사옥을 매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건물을 새로운 활용 방안이 있다면 그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밝혔다. 언론계 한 관계자는 “MBC의 역사가 있는데, 매각을 통해 허무는 것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며 “다만, MBC가 공영방송이라는 점에서 방송문화진흥회 차원의 검토는 필요해 보인다. 무조건 수익성만 따질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관세청은 오는 10일 오후 서울지역 시내 면세점 3곳과 제주지역 시내 면세점 선정기업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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