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지도부가 ‘봉숭아 학당’이 됐다.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자 고성이 오가는 혼란이 벌어진 것이다. 김태호 최고위원의 발언에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반박하고, 김태호 최고위원이 이에 재반론을 하려는 순간 김무성 대표가 일어나 회의 종료를 선언하고 퇴장해버렸다. 김태호 최고위원의 돌발행동에 일부에서는 ‘욕설’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시작된 여당 내부의 분열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 동아일보 3일자 1면 기사

3일 일간지들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지면 편집을 했는데, 보수언론의 경우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서로 차이를 보였다. 동아일보는 1면 톱에 <욕설… 퇴장… ‘난장판 여당’>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하고 “야권 내홍이 블랙홀처럼 국정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다”면서 “여권은 야당과 달리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 지금 여권에 이런 책임의식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여권 내부의 ‘진흙탕 싸움’에 국민이 볼모로 잡힌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이어지는 3면 기사에서 이날 최고위원회의 상황을 자세하게 전하면서 김태호 최고위원의 돌출행동에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6일까지 시간을 주기로 한 친박계도 난감한 입장이 됐고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명분을 줄 수 있다고 해설했다.

또, 동아일보는 1면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2일 한국 주도로 결성된 중견국 협의체인 MIKTA(믹타, 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터키·호주)의 국회의장단 오찬 일정을 20분 접견 일정으로 축소했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이 자리에 불참한 것을 들어 “박 대통령과 정 의장이 거부권 행사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게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유승민 내홍’의 불똥이 외교 사안으로 번졌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애초 정의화 의장까지 참석하는 오찬을 검토했다 접견 형식으로 바꾼 것은 정의화 의장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면서 이는 국익을 중시하는 외교가 아니고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도 놓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 중앙일보 3일자 1면 기사

동아일보가 그나마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려 했다면 중앙일보는 ‘물타기’에 나선 모양새다. 중앙일보는 1면 톱에 <정치가 부끄럽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새누리당 내분 사태를 보도했다. 재미있는 건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사진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의 사진을 함께 배치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기사 내용에서도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의 반목, 여당과 청와대 청와대와 국회 사이의 단절,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갈등을 모두 묶어서 언급했다. 중앙일보가 이런 지면 편집을 보여준 것은 새누리당의 분열에 더해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까지 묶어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론의 관심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상 보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내분에 더 집중돼있다.

중앙일보는 2면 <‘믹타’ 국회의장단 만나면서…정의화만 뺀 박 대통령>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청와대와 정의화 국회의장 간의 갈등 양상을 보도하고 김무성 대표가 지난 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 불참한 것에서도 당청관계의 단절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김무성 대표가 “수천 명이 모인 자리에 몇 시간 앉아 있다가 대통령과 얼굴도 못 보는 행사에 갈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해명했다고 전하면서도 “당내에선 ‘청와대가 김 대표 측에 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3면에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하면서 김태호 최고위원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청래 최고위원 같이 비춰질까 걱정”이라는 당내의 우려가 나온다고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박 대통령, 당정협의 조속히 재개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아무리 원내대표 거취를 놓고 싸울지라도 국가 현안에는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게 대통령과 여당의 의무”라면서 “박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뿐 아니라 국회의장과도 상종 자체를 기피하는 모습이니 걱정스러울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7월 임시국회와 추가경정예산 심사 등 향후 국회일정에서도 이런 파행이 이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과 별개로 국정 현안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리 밉더라도 여당 지도부와 소통을 재개하는 것이 순리”라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3일자 1면

조선일보의 경우 아예 문제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주요 일간지 중 거의 유일하게 1면에 새누리당 내분 사태를 다루지 않았다. 이 문제는 4면에 가서야 언급되며 그마저도 사실관계를 건조하게 나열하며 어떤 ‘해석’도 첨가하지 않은 기사로 보도됐다. 조선일보는 동아일보가 1면에서 다룬 믹타 5개국 국회의장 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사실과 청와대 및 국회의장의 해명을 병렬 나열해 작게 다뤘다.

▲ 조선일보 3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유승민 분란’ 정치 순리에 맡기고 국정 정상화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임기가 절반 넘게 남아있는 대통령의 여당 원내대표 거부 입장이 확고한 상황에서 사태가 어떻게 매듭지어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선 누구든 예상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라며 “여권은 이제 유 원내대표 문제의 해결은 정치적 순리와 상식에 맡기고 감정싸움을 자제하면서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어차피 알아서 물러나게 돼있으니 그만 싸우고 정신 차리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 조선일보 3일자 5면 기사

조선일보가 대신 이날 1면에서 집중한 것은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결과 발표로 그 중에서도 노건평 씨 의혹에 대한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또 5면에 <천정배, 김두관·박주선 만나 “전국정당 만들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호남은 물론 수도권에도 후보를 내는 ‘전국 정당’의 창당을 추진하며 이를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인사들을 만나기까지 했다고 보도했다.

이 날의 상황만 놓고 보면 조선일보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사실상 여당의 분열에서 야당의 위기로 여론의 눈을 돌리려는 편집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그간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며 심판의 역할을 자처하던 조선일보가 다시 ‘선수’의 영역으로 달려 나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심상찮은 분위기 속에서 다시 경기장에 등장한 조선일보의 선전이 이후 정국에 어떤 상황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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