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일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금품 메모’에 오른 여당 인사 8인 중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만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또는 공소권 없음 처분하기로 한 것이다. 검찰은 여기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특별사면 의혹 수사에 대해 노건평 씨가 5억 여 원 정도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포착됐지만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공소권 처분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혔다. 결국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한 수사 결과다.

애초 정치권 관계자들은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한 검찰의 대응에 두 가지 가능성을 예측했다. 검찰 수사가 끝난 후 반드시 정치권에서 특검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게 실마리다. 만일 특검이 검찰의 수사 결과보다 심화된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 검찰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검찰이 특검의 성과를 우려한다면 일정 강도 이상으로 수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대 특검의 사례를 돌아보면 제대로 된 성과를 낸 적이 거의 없다. 따라서 특검이 무용할 걸로 확신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결과를 낼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본 결론은 결국 후자에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한 특검이 진행되더라도 큰 성과가 없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을 거라는 점이다. 특히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금품공여자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검찰이든 특검이든 수사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지적돼왔다. 이렇게 보면 사실상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이후 어떤 절차를 거치든 검찰의 이번 중간수사결과 발표 내용과 유사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 한겨레 3일자 1면 기사

3일 일간지들은 이런 논란을 반영해 지면을 꾸몄다. 한겨레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 청와대 뜻대로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1면 톱에 배치해 “결론은 수사 초기에 ‘예상된 범위’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다. 수사팀의 칼끝은 박근혜 정부 핵심인사들 앞에서 번번이 무뎌졌다”고 썼다. 한겨레는 이어지는 5면 기사에서 이른바 ‘친박 실세’들에 대해서는 계좌추적도 하지 않았으면서 검찰이 공소시효가 지난 노건평 씨의 혐의에 대해 막판까지 기소를 검토한 점,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에 대해 공개수사에 나선 점 등을 들며 “‘친박 실세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이라는 사건의 성격이 희석되는 효과도 낳았다”며 “결과적으로 친박 실세들을 피해간 이번 수사 역시 ‘청와대 가이드라인’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게 됐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이날 1면에 <친박 무죄, 비박 유죄, 폭로엔 ‘괘씸죄’>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또, 경향신문은 2면 기사에서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죽음을 앞둔 금품 공여자의 ‘최후진술’은 진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서 벗어난 결론”이라며 “‘2명에 대한 폭로는 사실이고 6명에 대한 폭로는 거짓’이란 게 검찰의 판단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향후 관련 재판에서 성 전 회장의 진술 신빙성에 흠집을 내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해설했다.

▲ 경향신문 3일자 2면 기사

경향신문은 3면 기사에서 “검찰은 ‘구체적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근거를 찾을 실력과 의지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면서 “정치적 눈치를 본 수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는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했다. 또 경향신문은 검찰이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 노건평 씨 등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도 “정치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야당과 노 전 대통령 측은 억지로 ‘끼워넣기’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수사지시를 내린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 의혹에 검찰이 충실하게 ‘노무현 죽이기’로 응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3일자 6면 기사

그러나 이런 신문들의 반응과는 달리 보수언론은 정권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특히 조선일보는 상대적으로 노건평 씨 혐의에 포커스를 맞췄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 톱에 <“성완종 특사 대가로 노건평 측에 5억 줘”> 제하의 기사를 배치하고 검찰이 공개한 노건평 씨의 5억 원 가량의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건평씨가 당시 최고위급 인사에게 성 전 회장의 사면을 부탁한 것으로 안다”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6면 기사에서도 로비스트 역할을 했던 경남기업 임원 김모씨가 노건평 씨와 동향 출신이고 ‘아재’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 등을 강조하며 당시 정황을 세세하게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지면에 <노건평의 특사 개입 어이없고, 산 권력 피해간 檢도 한심>이란 제목의 사설도 배치했다. 제목을 보면 노건평 씨 의혹과 검찰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건평씨 등 참여정부 관련 인사들에 대한 비판이 절반 이상이다. 검찰에 대한 비판은 “이러니 죽은 권력에만 칼을 대고 살아 있는 권력은 적당히 넘어간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라는 단 한 문장에서만 이뤄졌다.

▲ 조선일보 3일자 사설

조선일보의 이러한 지면 편집은 박근혜 대통령의 2012년 대선자금 문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어떻게든 비틀어보려는 정권의 이해관계와 들어맞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이 사건이 뜨거운 감자로 취급될 당시부터 참여정부 시기의 특별사면에 대해 언급하며 ‘정치권 전반에 대한 개혁 문제’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 바 있다.

다른 보수언론들의 경우 조선일보처럼 처신하지는 않았다. 중앙일보는 1면 하단에 <검사 13명 투입하고…‘성완종 리스트’ 구속 0>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하고 6면 기사에서 “수사팀 구성 후 82일 동안 검사·수사관 등 30여 명이 투입돼 벌인 수사치고는 초라한 성적표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검찰이 성완종 전 회장의 금품메모에 오른 사람 중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만 소환 조사했고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서는 부실한 서면조사로 대체했다면서 “특히 이번 수사의 핵심으로 지목돼온 2012년 대선자금 전달 의혹에 대해선 수사 의지가 애초에 없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이완구 전 총리가 검찰 수사를 ‘코미디’라고 부르며 다음 총선에 출마해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밝혔고 홍준표 경남지사는 검찰이 정치적 수사를 했다고 반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 중앙일보 3일자 6면 기사

중앙일보는 이날 <정치 공방 불씨 된 미흡한 ‘성완종 리스트’ 수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수사팀은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수사도 어려운 상황에서 ‘곁가지’라 할 수 있는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 로비 의혹까지 파헤쳤다. 이는 수사팀 역량을 분산시켜 본건 수사를 부실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루한 정치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좀 더 강력한 수사의지를 갖고 수사에 임했더라면 이 문제로 인한 더 이상의 갈등과 혼란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의 ‘가이드라인’ 때문에 검찰이 눈치를 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동아일보는 1면 하단에 노건평 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 포인트를 맞춘 기사를 배치하고 이어지는 10면 기사에서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등 ‘친박근혜계’ 핵심 인사 6명을 모두 무혐의 처분한 반면 막바지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특별사면 의혹에 수사를 집중한 건 균형을 맞추기 위한 행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결국 ‘권력실세 면죄부’로 끝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에도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면서 “‘정치개혁 차원에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의혹을 낱낱이 밝혀내라’는 박 대통령의 주문과는 달리 검찰이 소극적 수사에 그침으로써 이번 일을 정치개혁의 단초로 삼겠다는 대통령의 구상은 물 건너간 셈이 됐다”고도 썼다. 검찰의 그 ‘소극적 수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으로 비롯됐다는 것에는 눈감고 있는 셈이다.

▲ 동아일보 3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또 “성완종 리스트의 진실은 비록 못 밝혔다 해도 국회의 부당한 특권과 ‘정치금융’의 폐해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금배지를 단 기업인들이 관련 상임위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고, 의원들은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으로 여기며, 기업 워크아웃 결정에 금융감독원이 개입해 좀비기업을 양산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대선자금 문제인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정치권 전반에 대한 개혁 문제로 성격을 바꾸려 했던 박근혜 정권의 시도와 정확히 들어맞는 주장이다. 결국 언론마저 이런 식이니 검찰이 정권 입맛에 맞춘 수사 결과를 내놓아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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