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가 이번에는 오리지널 팀으로 내한공연을 갖는다. 한국으로 날아온 이번 팀은 브로드웨이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배우들로 똘똘 뭉쳤는데, 마마 모튼을 연기하는 로즈 라이언 같은 경우 무려 18년 동안이나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관록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노트르담 드 파리>나 <캣츠> 같은 내한공연의 경우에는 한국 관객이 일일이 자막을 읽어야 하는 수고가 있지만, 이번 <시카고> 내한공연처럼 뮤지컬 속 넘버를 원어 그대로 듣는다는 감칠맛은 자막을 읽어야 한다는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 뮤지컬 ‘시카고’ ⓒ신시컴퍼니
이번 <시카고> 오리지널 내한공연은 ‘한국어 애드리브’라는 한국 관객을 위한 팬 서비스를 잊지 않고 있다. 속물 변호사 빌리를 연기하는 마르코 주니노가 “예쁜이”와 같은 애드리브를 할 때 객석은 탄성으로 가득 찬다. 록시를 연기하는 딜리스 크로만은 앙증맞으면서도 내숭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꼬리 아홉 달린 여우 같은 록시를 맛깔나게 소화하고 있었다. 벨마를 연기하는 테라 씨. 매클리우드는 록시로 말미암아 감옥 내 1인자에서 2인자로 미끄러지는 비애를 노련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들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몇 년, 혹은 십 년 이상 갈고닦은 기량을 국립극장에서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흥겹고 경쾌한 넘버와는 달리 <시카고>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세계관을 내포한다. 살인죄를 저지른 중죄인이라 해도, 유능한 변호사 빌리를 만나기만 하면 죄인은 순식간에 뉴스 메이커가 되고 스타 못지않은 화제의 인물로 등극한다. 신문의 1면 머릿기사를 장식하는 것은 물론이요, 죄수의 속옷 한 벌조차 몇 백 달러에 팔리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 뮤지컬 ‘시카고’ ⓒ신시컴퍼니
보드빌에서 스타를 꿈꾸던 록시가 감옥에서 1인자 벨마를 누르고 화제의 여주인공이 된다는 건,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는 스타가 되지 못했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수감되고 나서야 스타의 꿈을 이룬다는 극적인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시추에이션이다. ‘스타가 되고 싶으면 살인을 하고 빌리를 만나라, 그러면 스타의 길은 보장된다’는 걸 뮤지컬 <시카고>는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빌리라는 출세의 사다리를 만난다는 건 공짜로 되는 게 아니다. 빌리가 변호 비용으로 받는 5천 달러라는 거금은 지금 현재의 물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 뮤지컬의 배경이 1920년대이기 때문에, 뮤지컬 속 5천 달러라는 거금은 지금의 5백만 원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요즘 물가로 환산하면 몇 억 원이라는 거금이 뒷받침이 되어야 감옥에서 스타 탄생이 이뤄지게 된다.

▲ 뮤지컬 ‘시카고’ ⓒ신시컴퍼니
만일 몇 억 원의 돈이 없어 빌리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벨마와 록시가 수감된 교도소는 몇 십 년 동안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형수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변호사 빌리를 만나지 못한 헝가리 무용수가 교수형을 당했다는 건 ‘무전유죄’라는 법칙이 교도소에서 작용한다는 걸 의미한다.

만일 헝가리 무용수가 벨마와 록시처럼 돈이 있어서 빌리를 만났다면 목숨은 건졌을 테지만, 돈이 없어 빌리를 만나지 못한 탓에 유능한 변호를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렇게 <시카고>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세계관을 헝가리 무용수를 통해 극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죄수라 해도 돈만 있으면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하는 스타로 등극하지만, 반대로 돈이 없으면 스타가 되기는커녕 목숨마저 보전하지 못하는 ‘무전유죄 유전무죄’ 말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