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원내대표 문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자 김무성 대표가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승민 원내대표가 용기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면서 다시 한 번 사퇴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김태호 최고위원과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이 문제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자 김무성 대표는 “고마 해라”라는 말을 남기고 퇴장했다. 김태호 최고위원 역시 “이러는 게 어디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회의장을 나갔다. 이후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고성이 오가는 혼란의 도가니가 됐다.

▲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 김태호 최고위원(왼쪽)이 발언을 시작하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 끝내!"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 김태호 최고위원의 발언 시작 후 김무성 대표가 갑자기 회의를 종료하고 떠나자 김 최고위원이 자리에서 일어서 항의의 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 원내대표를 공개 비난한 ‘6·25 발언’ 직후 새누리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사실상의 ‘재신임’을 결정한 이후 청와대는 사퇴를 종용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유승민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운영위원회가 무기한 연기되고 ‘메르스 추경’을 논의하는 당·정 협의에도 유승민 원내대표의 참석이 사실상 거부되자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실상 업무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퇴장까지 감행한 것은 당의 파국을 막기 위해 본인이 직접 운영위원회 연기를 지시하는 등 노력하고 있음에도 친박계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비박계 일각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메르스 추경까지 처리하고 명예롭게 자진사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친박계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법 재의안을 상정하는 6일 투표에 불참해 재의를 무산시키고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추경안을 20일에 처리할 수 있도록 야당의 협조를 구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당분간 사퇴 의사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보수언론들의 보도에도 일정한 변화가 감지된다. 그간 유승민 원내대표 문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실책을 강하게 지적해왔던 조선일보는 2일 지면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관련 보도를 최소화시켰다. 이날 조선일보가 지면에 배치한 기사 중 유승민 원내대표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사는 단 두 건 뿐이다. 이는 간헐적인 충돌이 반복되고는 있으나 일단 6일까지 당내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한 것으로 비춰진다.

▲ 조선일보 2일자 사설

그러나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靑 정무기능 大수술 없이는 대통령 나머지 임기 더 힘들 것>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에도 유승민 원내대표가 물러나지 않겠다는 분위기고 비박계 의원들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것은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제는 대통령이 제대로 된 정무 보좌를 받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청와대 정무 기능을 의도적으로 축소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전 수석, 초선 의원에 불과했던 조윤선 전 수석 등을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지금은 한 달 넘게 정무수석을 아예 공석으로 남겨둔 상태다”라면서 “당·청간 가교 역할을 기대했던 이병기 비서실장도 이런저런 제약 때문에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다”라고도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감각을 과신할 수 있지만 ‘정치9단’으로 불렸던 역대 대통령들도 이해하기 힘든 인사를 하거나 정치적 결정을 내린 예가 있다면서 “과거의 정치적 성공이 대통령을 자기 과신과 독선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 역시 이런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지금 박 대통령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밝혀주고 손발 역할을 해줄 정무기능의 복원”이라면서 “청와대 정무 라인에 대한 대수술 없이는 대통령의 남은 절반 임기가 성공으로 끝을 맺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 2일자 칼럼

또 다른 보수언론인 중앙일보 역시 이날 보도에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도 파국을 막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 여당 지도부가 만나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중립적인 제안을 내놨다. 중앙일보는 <유승민=선거 당선 후 배신=이재오?>라는 제목의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명의 칼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중용해온 만큼 ‘배신’을 이야기 할 자격이 있고, 유승민 원내대표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근혜노믹스’를 정리해 대선 공약의 틀을 맞췄다는 점에서 청와대 정책을 낮춰 보는 것도 이해가 된다며 “문제는 두 사람에게 양팔을 잡힌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둘 중 한 사람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중립적 지적을 내놓은 것이다.

다만 중앙일보는 <최경환, 경제 못 살리면 당 복귀 말라>는 제목의 이정재 논설위원 칼럼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총선 전에 당으로 복귀해 ‘친박 구심’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혹여 대통령에게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얼른 접으시라고 말씀드려야겠다. 최 부총리도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했다. 이 글에서 이정재 논설위원은 메르스 사태와 그리스 위기에 중국 경제도 심상찮고 미국의 금리 인상도 예정돼있다면서 이런 판국에 ‘장수’를 바꿀 수 없고 그간 경제활성화의 중요성을 말해온 청와대와 정부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경제문제와 관련해 최경환 부총리의 행보를 평한 것이지만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이후의 대안으로서 최경환 부총리의 ‘정치적 활용’에 부정적 입장을 표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무성 체제 붕괴 이후 최경환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비대위원회가 출범할 것이라는 추측 등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응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도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보도에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아일보는 유승민 원내대표를 둘러싼 논란을 4면 절반 정도에만 할애했다. 그러면서 동아일보는 <유승민 ‘왕따’시키는 새누리당, 이 수준밖에 안 되나> 제하의 사설에서 김무성 대표가 국회 운영위 연기를 지시하고 추경을 위한 당정협의에 유승민 원내대표가 불참한 사실 등을 언급하며 “지금 새누리당에는 당무에서부터 당정 협의, 국회 운영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새누리당이 6일 국회법 개정안 재의에 참석은 하되 표결에 불참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에 대해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면서 스스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다. 국회의 다수 의석을 갖고 있고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 여당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형식적으로만 놓고 보면 재의안 표결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맞서라는 주문처럼 느껴진다.

▲ 동아일보 2일자 사설

그러나 동아일보는 송평인 논설위원의 <유승민이 사퇴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송평인 논설위원은 이 글에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에 강제성이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국민을 조삼모사로 속일 수 있는 원숭이 정도로 취급한 것”이라고 폄하하면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됨에도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했고 거부권 행사 이후 처리의 책임도 져야 하는데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재의 표결에 불참하기로 했기 때문에 사실상 불신임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일자 칼럼

송평인 논설위원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통과를 위해 불가피하게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한 것이라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도 “국회의 행정입법 강제규정은 설혹 위헌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법안에 연계하는 식으로 다룰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 정도 식견이 없다면 원내대표의 자격이 없다. 그가 더 위험한 일에 개입되기 전에 그를 사퇴시켜야 한다”고 반론을 폈다. 송평인 논설위원은 주역을 인용하며 유승민 원내대표를 ‘야윈 돼지’에 비유하고 “야윈 돼지가 우리를 뛰쳐나와 사방을 뛰어다니며 엉망으로 만들려는 순간에 그 돼지를 제지한 것이 이번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본질”이라고도 주장했다. 결국 송평인 논설위원의 이 글은 청와대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보수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면서도 당청관계의 복원과 갈등의 수습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동아일보가 이런 식의 ‘양다리 걸치기’를 감행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날 보수언론이 모두 유승민 원내대표 관련 보도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내보이고 있는 것도 계속 문제를 부각시켜봐야 여권 내부의 분란만 가속화시킨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신문의 모든 지면에 유승민 원내대표 문제를 ‘도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이 올바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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