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원내대표를 둘러싼 집권여당 내의 분란이 수습되지 않고 있다. ‘친박계 좌장’이라 불리는 서청원 최고위원과 이정현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에 이어 1일 최고위원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애초 모두발언을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인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이날 회의 과정 전체를 비공개로 전환해 진행했다. 회의 석상에서 친박 대 비박의 정면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갈등이 표면화되는 걸 원치 않는 김무성 대표는 의원들에게 “언론인터뷰를 삼가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이날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는 새누리당 김성태·이장우 의원, 이혜훈 전 의원 등이 차례로 등장해 유승민 원내대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변한 것이 없다”고 대답하고 있다. 일각에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 자연스럽게 유승민 원내대표의 자진사퇴가 가능해지지 않겠냐는 주장도 나오지만 유승민 원내대표는 7월 추경안까지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보도가 나와 ‘명예퇴진’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 1일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1면 기사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이날 1면에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 의원들에 대한 여론을 다뤘다. 경향신문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각각 내건 현수막 사진을 싣고 대구 현지의 민심을 보도했다. 배은망덕하다거나 안 뽑겠다거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거다. 한겨레는 이날 1면에서 몇 안 되는 친박계 의원들의 폭주가 제어되지 않는 것은 당내 중진이 무기력하고 당내 개혁세력도 사라져 자정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이 두 신문들과 비교하자면 보수언론의 1면은 다소 문제를 피하려고 하는 양상이다. 이날 조선일보는 그리스 문제를, 중앙일보는 메르스 사태 관련 병원개혁 문제를, 동아일보는 지방자치 20주년을 1면에서 다뤘다. 여기서 먼저 눈여겨 볼 부분은 조선일보의 지면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그리스 국가부도와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협상안에 대한 국민투표 등의 소식을 다루고 2면에는 “공짜복지 좋아하다 이 지경까지”라는 한 시민의 발언을 제목으로 한 현지 르포 기사를 배치했다. 또, 3면 기사에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을 ‘EU 문제아’로 지칭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군기반장’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 1일자 2면, 3면 기사

그리스 문제는 조선일보처럼 단순하게 볼 수 없는 문제다. 보수언론은 그간 그리스 문제를 ‘공짜복지’의 문제로 다뤄왔지만 공직자들의 일상화된 부패와 우호적 지지층에 대한 앞뒤 없는 포퓰리즘, 터키와의 갈등으로 인한 과도한 국방비 지출, 관광과 금융에 집중된 경제체제에 유럽연합 가입으로 인한 환율주권 상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군다나 현 급진좌파연합(이하 시리자) 정부는 그리스 경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데 대한 책임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시리자 주류인 시나스피스모스가 과거 신자유주의 개혁 연정에 참여했던 정도를 제외하고는 국정에서 사실상 소외돼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취임한지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도 한계다.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독일과 금융자본 및 국제통화기금(IMF)이 시라자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시리자 정부 또한 국제채권단과의 협상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주요 요인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에 눈을 감고 그리스 문제를 ‘좌파’ 일반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보수언론의 전통적 이데올로기 전략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날 조선일보가 이 소재를 좌파를 공격하는 것을 넘어서서 박근혜 정부를 공격하는데도 활용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경제는 6년 만에 최악, 권력 싸움에만 골몰하는 靑·여당>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경기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메르스 사태의 충격이 더해져 글로벌 위기 이후 6년 만에 모든 경제지표가 최악인 상황에서 그리스 위기의 파장까지 더할 위기라며 “경기 추락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 비상 상황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대다수 국민의 눈에는 집권 세력 스스로가 시대착오적인 권력 놀음을 벌이며 골든타임을 날려보내고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면서 “청와대와 여당은 경제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당사자가 바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라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찍어내기’에 경제적 위기의 해결이 난망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조선일보 1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또 <국회법 재의 뭉개겠다는 與, 이게 올바른 집권당 자세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조선일보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법 개정안 재의 표결을 6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새누리당이 표결 불참을 시사하고 있는 것과 관련 “이 문제는 여당이 표결 불참 같은 꼼수로 적당히 넘어가기에는 너무 큰 문제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헌법적 권한 경계를 정리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고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압박하고 나서면서 이번 파동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이 걸린 사안이 됐다면서 “새누리당으로선 당장의 위급한 상황만 모면하려 들 게 아니라 당당하게 토론을 거쳐 표결에 임하는 것이 정도다”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표결 불참을 모색하는 것은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명예퇴진론’과 맞닿아 있다. 표결에 불참함으로써 국회법 개정안을 폐기하고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면 이 사태를 일단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표결에 실제로 참여할 경우 ‘반란표’가 나와 자칫 국회법 개정안이 재의결될 수 있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조선일보는 토론을 거쳐야 한다는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새누리당이 표결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이는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 하라는 주장으로 읽힐 수도 있다.

▲ 중앙일보 1일자 칼럼

상황이 심상찮아보이는 건 중앙일보의 지면을 봐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따로 의견을 내놓진 않았지만 칼럼을 통해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입장을 제기했다. 중앙일보는 양선희 논설위원의 <‘마녀사냥’ 하기 좋은 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을 문제삼으면서 “권력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마녀사냥을 권한다. 이젠 유권자들이 정신차려야 할 때다”라며 “우리가 집단이성을 살리지 못한다면 공허한 분노로 주인을 대신해 살생을 맡는 사냥견 처지로 전락하는 ‘위험한 시절’을 계속 살게 될 거다”라고 주장했다. 맥락을 보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선동’에 속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같은 면에 실린 중앙일보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의 칼럼 역시 박근혜 대통령에 비판적이긴 마찬가지다. 서승욱 차장은 이 칼럼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정치권의 긍정적 평가를 전하며 “유승민의 좌절이 우리 사회 중도주의자나 ‘진영주의 극복론자’ 전체의 좌절로 이어지지는 않기 바란다”면서 “‘노빨’과 ‘일베충’이라고 서로 삿대질하며 싸우는 우리 풍토에서 어떻게든 간극을 좁혀 보려는 이들의 노력은 ‘유승민의 좌절’과는 무관하게 필요할 테니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에도 대통령의 변화를 촉구하는 칼럼이 실렸다. 동아일보 홍찬식 수석논설위원은 <박정희 박근혜의 같지만 다른 운명>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국회의 여야와 유승민 원내대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같은 여권 울타리에 있는 특정 인사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처음부터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면서 “그가 원하는 정치를하고 목표를 이루려면 유 원내대표 같은 인사들도 포용하고, 야당 사람들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대통령이 듣기 좋은 얘기를 섞긴 했지만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로 이 국면이 끝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보수언론들이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편을 들지 않고 있는 것은 확고한 흐름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강하게 발언했는데도 유승민 원내대표가 자리를 지키면 그때는 ‘레임덕’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굳이 “선거로 심판해달라”고 말한 것도 이를 감안한 것일 수 있다. 여당을 통한 정국 장악이 안 되면 국민에게 직접 호소를 하더라도 자기 뜻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장기화되면 2016년 총선에서 대구 동구 을 선거구에 유승민 원내대표를 공천할지 말지를 두고 분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본인은 행사를 안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 공천권은 김무성 지도부에 있다.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김무성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던지 김무성 대표를 구워삶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이 ‘공작’이라도 벌이지 않는 이상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보수언론의 비판적 행보는 이러한 것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훈수를 둘래야 둘 수도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큰 일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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