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MBC대주주 방문진, EBS 이사가 한꺼번에 교체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늘(1일)부터 2주간 KBS와 방문진 이사 추천 공모를 받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다. 국가재난상황에서 국민들이 공영방송 보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재앙에 가깝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영방송은 달라지지 않았다. 메르스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은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원했지만 안이한 정부 대응에 지쳐 SNS 등의 정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선도적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국민들을 더욱 답답하게 했다.

30일 <공영방송 이사회 활동평가와 과제> 토론회에서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방송학자들은 공영방송의 공정성이 하락한 가장 큰 원인으로 ‘정치권력’으로 꼽았다.(▷관련기사:방송학자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필요” 91.8%) KBS 이사 11명 중 7명은 정부여당이 추천한다. 사장은 정부여당 측 인사가 다수인 이사회에서 다수결로 선출된다. 방문진은 6대3, EBS는 7대2 구도로 정부여당과 야당이 각각 추천한다. 정치적 입김이 문제가 되는 건 당연하다. 공영방송의 신뢰도 추락은 피할 수 없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 6월 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술인연합회, 방송코메라기자협회, 방송촬영감독연합회, 공영언론이사추천위원회가 공동주최한 '공영방송이사회 활동평가와 과제' 토론회의 모습ⓒ미디어스
“이사회, KBS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일 결정한다고 봐도 무방”

토론회 발제를 맡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남철우 정책실장은 “이사회는 말 그대로 최고의결기관”이라며 “<방송법>에서 정한 기능만 16개”라고 설명했다.

<방송법> 제49조(이사회의 설치 및 운영) ① 이사회는 다음 각호의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1. 공사가 행하는 방송의 공적 책임에 관한 사항. 2. 공사가 행하는 방송의 기본운영계획. 3. 예산·자금계획. 4. 예비비의 사용 및 예산의 이월. 5. 결산. 6. 공사의 경영평가 및 공표. 7. 사장·감사의 임명제청 및 부사장 임명동의. 8. 지역방송국의 설치 및 폐지. 9. 기본재산의 취득 및 처분. 10. 장기차입금의 차입 및 사채의 발행과 그 상환계획. 11. 손익금의 처리. 12.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 13. 정관의 변경. 14. 정관이 정하는 규정의 제정 및 개폐. 15. 기타 이사회가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②이사회는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감사에게 공사에 대한 감사를 요청할 수 있다.

남철우 정책실장은 “이사회는 KBS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일을 관장하고 결정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KBS이사는 전원 비상임이지만 1년에 공식적인 회의만 104회(2014년)를 개최했다”며 “이사장은 상임이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든지 출근할 수 있는 자동차, 사무실, 비서가 제공되며 10여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이사회 사무국에서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혜택은 혜택대로 누리면서도 KBS이사회의 역할인 △공정방송 확보, △수신료 인상 등 경영개선, △지배구조 개선 등 기본적인 역할은 방기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KBS이사장이 보도 및 프로그램에 개입했다는 증언이 여러 곳에서 나온 것도 문제다. 남철우 정책실장은 이길영 전 이사장과 관련해 “KBS 감사로 올 때부터 채용비리 등으로 문제가 됐지만 정치권을 등에 업고 밀고 들어왔다”면서 “또, 학력위조 등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길환영 전 사장 선출을 주도하고 ‘KBS 사장 위 이사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사건건 개입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문제에 있어 특히 ‘편향적’이란 평가를 받는 현 이인호 이사장에 대해서도 “특정 프로그램(뿌리깊은 미래)에 대한 발언으로 결국 방통심의위로부터 제재를 받게 했다”고 평가했다.(▷관련기사:"'국제시장'은 진실에 바탕, '뿌리 깊은 미래'는 혼란 유발")

“MBC 신뢰도 추락하는데 방문진은 손해 없고 책임도 안 진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김혜성 홍보국장은 “MBC 주식의 70%를 소유한 방문진은 사장 선임 등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최고의사결정 기구”라면서 “그렇지만 MBC는 끝없이 공정성과 신뢰도 면에서 추락하고 있지만 방문진은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았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혜성 홍보국장은 토론회에서 김재철 전 사장 해임 건의안이 상정된 방문진 전체회의의 상황을 자세히 언급했다.

“야당 추천 이사 3명(권미혁, 선동규, 최강욱)이 제출한 김재철 MBC사장 해임안이 다뤄질 거라고 예상되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해임안은 가결도 부결도 되지 않았다. 6대3 구도 하에서 야당 이사들이 아예 표결 자체를 가지 않은 것이다. 괜히 표결에 부쳤다가 김재철에게 또 한 번의 면죄부만 주게 될까 우려해서였다. 야당 추천 이사들은 임기 초반부터 벽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_2012년 9월 27일

“상황 변화가 있었다. 10월 8일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방과 이상옥 전략기획부장,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비밀 회동이 한겨레 단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방문진 여당 이사들 내부에서도 김재철 사장 해임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예상을 뒤엎고 부결. 표결 직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 캠프의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과 하금렬 청와대 대통령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여당 이사들이 돌연 입장을 바꿨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2012년 11월 8일

그러면서 김혜성 홍보국장은 이에 대해 “현재 MBC를 관리감독하는 대주주 방문진 이사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방문진은 ‘MBC가 공적 책임을 실현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과 공공복지 향상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하지만 이대로라면 불필요한 기구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정치·사회 등에 대한 보도기능이 없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있는 EBS 상황 역시 심각했다. KBS와 MBC는 그나마 KBS이사회와 방문진에 사장 선출권이 있지만 EBS는 사장을 방통위가 공모하고 선출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홍정배 지부장은 “EBS 거버넌스는 방통위가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독립된 공영방송이 아니라 국영방송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정배 지부장은 EBS 이춘호 이사장과 관련해 “KT사회이사를 상당기간 겸임했다”며 “통신사업자의 사외이사와 공영방송 이사의 겸직은 금지를 강제하고 있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본인이 스스로 정리를 하고 EBS이사장 직분에 충실했어야 하지만 관용차를 타고 KT이사회, 전경련 강의 등 부당하게 사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감사원 감사결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서 홍정배 지부장은 토론회에서 EBS이사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보면, 김형준 이사는 <인성교육진흥법> 홍보와 광복 70주년 교육프로그램 제작을 주문했고 백복순 이사 또한 정부부처 및 국방부와 MOU를 통한 프로그램 제작을 주문했다.

“난다긴다하는 전문가들 들어가면 뭐하나…외압 못 막는데”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KBS와 MBC, EBS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문제는 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정치권이 해결해야한다는 점이다. 토론자로 나선 방송기자연합회 손관수 회장은 “KBS이사 구성을 보면 난다 긴다는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며 “그런데, 외압을 막아주는 그런 역할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사회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없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주장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정준희 강사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를 3~4년간 해왔는데 고민스러운 것은 정치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이슈라는 점”이라며 “정치가 풀어야할 논제”라고 설명했다. 정준희 강사는 “공영방송 이사로 좋은 분들이 선임돼도, 그 안(정치공학적으로 구성돼 있는 이사회)에 들어가면 사회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에서 방송제작에 이사들이 관여한 사실이 알려지면 잘린다”며 “한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데 결국 후견자의 대리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임무를 잘하면 또 다른 자리를 받게 된다”고 비판했다.

매체비평우리스스로 노영란 사무국장은 공영방송이사추천위원회(약칭 공추위)에 대해 “전문성을 고려해 선발해야 한다”며 “이사회의 역할 중 경영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계관련 전문가가 없다. 좌우, 진보·보수가 아닌 전문성을 갖추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인사로 뽑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손관수 회장은 “KBS 사장과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뉴스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며 “어떤 인물들이 추천됐는지 등 진행과정을 상세히 보도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인사는) 걸러지는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한편,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시민사회에서 공영방송 이사회를 감시하고 국민들에게 알려내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공영언론이 주인 없는 조직이 되면서 이사들 역시 책임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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