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하며 유례없는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해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한다”, “정치는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선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려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 당청관계를 노출했다.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후 사실상 사퇴 압박까지 한 초유의 사태였다.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당대표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며 ‘원조 친박’으로 불리는 유승민 원내대표는 2011년 말 박근혜 비대위 체제 이후 비판 목소리를 높이며 ‘탈박’했다. 지난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된 이후에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경제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고 하면…” 등 정부 정책의 한계를 지적해 그 행보에 관심이 집중됐다.

청와대와 당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그였으나, 대통령으로부터 공개석상에서 ‘사퇴 촉구’를 받은 다음날 유승민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퇴 압박을 계속했다.

당청 파국, 박근혜 대통령도 책임 있다는 조중동

당청이 대체로 공조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유승민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다소 엇박자를 내 왔다는 것을 감안해도, 국회와 유 원내대표에게만 모든 사태의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 그간 박 대통령을 비호해 온 조중동의 주장이다. 박 대통령의 ‘강경발언’이 나온 배경을 인정하면서도 유 원내대표가 처했던 곤란함이 존재했다는 점, 박 대통령 역시 꼬인 당청관계를 풀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더 큰 혼란이 오기 전에 당청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조언을 곁들였다.

▲ 조중동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작심 발언'이 나온 배경을 이해한다면서도, 박 대통령 역시 당청 갈등에 책임이 있고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스

조선일보는 26일 <與野에 날 선 비판 퍼부은 대통령, 국회만 탓할 자격 있나>(▷링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여야가 대통령의 ‘날 선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면서도 “문제는 박 대통령이 과연 이런 여야를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 왔는가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은 이날 정치권 전체를 상대로 타협이나 대화보다는 공격과 대결을 선택했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국정 차질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며 “대통령은 이제 정치권 비판을 넘어서 앞으로 대통령과 여야,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를 어떻게 꾸려갈 것이며, 주요 국정 현안은 또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배신의 정치’,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에 할 말이다>(▷링크) 사설에서 “국회가 국민을 등지는 ‘배신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비판에 여야는 과연 당당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 거칠고 직설적”이라고 꼬집었다.

동아일보는 “일각에서는 통쾌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는 문제 해결은커녕 더 꼬이게 만들기 십상이다. 국회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는 데는 박 대통령의 책임도 없지 않다”며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에서 나타나듯이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사태를 더 키우고, 인사 실책과 소통 부족으로 소중한 국정 에너지를 허비했으며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겸허하게 돌아보지 못한 것에 국민은 배신당한 느낌”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생산적인 정치, 원활한 국회 운영을 위해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자주 만나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 대통령도 자신의 실책에 대해 진솔하게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중앙일보는 26일 <거부권 사태, 파국으로 흘러선 안 된다>(▷링크) 사설에서 “대통령은 어제 ‘기가 막힌 사유들로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이 많다’며 행정부가 피해자임을 주장했다. 대통령의 분노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막판 분풀이보다는 그때그때 여야 지도부나 국민에게 사정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며 “대통령과 여야는 이번 사태가 파국으로 흐르지 않도록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27일에는 비판의 강도가 좀 더 세졌다. 조선일보는 27일 <정권의 수준 보여주는 대통령·劉 원내대표 분란>(▷링크) 사설을 통해 “대통령이 눈 한번 부라렸다고 국회의원 160명을 대표하는 여당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용서’를 비는 장면은 해외 토픽감”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가 지금처럼 유 원내대표와 여당을 어떻게든 무릎 꿇리고 말겠다며 위압적 태도로 나오는 것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국회법만 해도 위헌 논란과는 별개로 유 원내대표로선 박 대통령이 시한까지 못 박은 공무원연금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야당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더구나 야당이 협상 무기로 쓴 국회선진화법은 박 대통령 자신이 당 비대위원장 시절 주도해 만든 것이 아닌가. '지금 누가 누구 탓을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며 “메르스 사태와 경제 추락, 외교·안보 분야의 대형 도전이 중첩된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당이 지금 이럴 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유승민 찍어내려 ‘당청 內戰’ 벌일 만큼 한가한 때인가>(▷링크) 사설에서 “여당이 국회법 파문 수습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진노에 편승해 ‘유승민 찍어내기’ 내전에 돌입한 모습에 국민은 배신감을 느낀다”며 “더구나 대통령의 개인감정 때문에 여당 원내대표를 갈아치우는 것이 온당한지도 의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박(비박근혜) 지도부 무력화에 나선 듯한 친박의 권력투쟁 양상에 국민이 박수를 칠지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또한 <대통령과 당이 싸우면 국가가 손해다>(▷링크) 사설에서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폭발’은 임기의 반환점에서 나온 것이다. 대통령은 그동안 여당과 얼마나 소통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대통령은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 본관에 ‘격리’되어 있다. 비서실과 떨어져 있는데 당과는 더욱 멀리 있다.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 만나는 횟수가 너무 적다”며 “대통령이 국가 차원의 문제로 입법부의 행태를 지적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당과의 갈등 문제는 다르다. 이를 언급하려면 다른 자리를 찾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정면충돌에 앞서 그동안의 소통 부족을 냉정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메르스와 가뭄, 경제활성화 법안, 사드 배치 문제 등의 현안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임기 후반부 국정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소통을 복원하고 단합을 재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통령 격노’와 ‘유승민 사퇴여론’만 남은 방송뉴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나왔던 25일부터 28일까지 방송뉴스는 대통령의 격앙된 감정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KBS·MBC·SBS 방송 3사 메인뉴스의 보도는 대통령의 발언-유승민 의원 사퇴여론 부각으로 대동소이했다.

▲ 6월 25일자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보도

KBS <뉴스9>는 25일 <박 대통령,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정치권 질타>, <박 대통령, 유승민에 “배신 정치” 직격탄…사퇴 거부>, <여당 “개정안 재의 않기로”…사실상 ‘자동 폐기’>, <야 “국회·국민에 선전포고”…국회 일정 전면 거부> 등 관련 소식을 4개 리포트로, 26일에는 <유승민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친박 ‘사퇴 압박’>, <청와대 “대통령 의중 단호…유 원내대표 책임져야”>, <문재인 “심판 받아야 할 사람은 대통령” 직격탄> 등 3개 리포트로 전했다. 27일에는 <친박, 강도 높은 사퇴 압박…유승민 거취 기로>, <여 “일정 거부 명분 없어” 야 “대통령 눈치보기 그만”>, 28일에는 <친박 사퇴 압력에 ‘유승민 버티기’…여 내홍 심화> 리포트를 내보냈다.

MBC <뉴스데스크>는 25일 <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배신의 정치, 국민이 심판해야">, <거부권 행사 배경?…"삼권 분립 원칙 훼손 '위헌 소지' 크다">, <與 "대통령 뜻 존중하겠다"…국회법 '자동 폐기' 가닥>, <野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선전 포고…국회 일정 전면 중단">, <[집중취재] 당청·여야 관계 냉각…거부권 후폭풍 거세질 듯> 등 5개의 리포트로 해당 소식을 보도했다. 26일에는 <'거부권' 후폭풍… 與, 유승민 버티기에 내분 확산>, <靑, 유승민 사과에도 '무반응'… 朴의 선택은?>, <박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 유승민, 뭐가 문제였나>, <野, 국회 일정 전면 거부 파행… 문재인 "대통령 심판해야"> 등 4꼭지가 방송됐고, 27일과 28일에는 각각 <친박계 중진 긴급 회동… '유승민 사퇴 촉구' 한 목소리>, <거세지는 '유승민 사퇴' 압박… '친박' vs '비박' 충돌 조짐> 리포트를 보도했다.

SBS <8뉴스>는 25일 <박 대통령 '거부권' 행사…"행정마비로 국가 위기">, <박 대통령, 유승민에 직격탄 "자기 정치에 이용">, <새누리 "대통령 뜻 존중…재의 않고 자동 폐기">, <유승민 "채찍으로 받아들일 것"…사퇴 요구 거부>, <새정치 "대통령 고집과 독선만 남아…일정 중단"> 5개 리포트를, 26일 <유승민 유임에 청와대 '불쾌'…대대적 사퇴 압박>, <"박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반성문 쓴 유승민>, <'원조 친박'서 '배신자' 된 유승민…애증어린 10년>, <문재인 "심판 받을 사람은 대통령"…일정 거부> 4개 리포트를 선보였다. 27일에는 <새누리 친박, 집단행동 돌입…유승민 거취 고심>, 28일에는 <유승민 "드릴 말씀 없다"…최고위 최대 분수령>의 리포트가 나갔다.

방송뉴스는 거의 같은 틀 안에서 비슷한 내용을 유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소개하고, 이 가운데 유승민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부분을 따로 소화한 후, 여야 반응을 전했다. 26일에는 유 원내대표의 사과 내용, 사과에도 냉랭한 청와대, 친박계 의원들의 비토 정서, 10년 만에 틀어진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관계 등이 부각됐으며, 27일~28일에는 비박계 의원까지 유승민 의원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가진 허점을 지적하거나, 공개석상에서 ‘대노 카드’를 꺼낸 배경을 분석하거나, 당청 관계가 악화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살피거나 하는 움직임은 발견할 수 없었다.

반면 JTBC <뉴스룸>은 25일 <"배신의 정치 심판해야"…유승민 '콕 집어' 격정 비판>(▷링크) 리포트에서 “대통령이 우군인 여당 원내 지도부를 공개석상에서 비판한 건 극히 드문 일”이라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의원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이라기보다 여야 전반의 합의에 따른 결과물이란 점에서 정치 논리에 이용됐다는 건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배신의 정치'를 질타하기에 앞서 박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신뢰를 집권 후에 잘 지켰는가, 그 부분부터 살펴야 할 것 같다”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의 발언을 소개한 후, “대통령 발언에 담긴 취지는 결국, 당이 청와대에 절대적으로 협조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아예 당과 선을 긋고 '마이 웨이'로 가겠다는 뜻이란 관측”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 정치권 향한 '12분 격정발언'의 숨은 의도>(▷링크)에서는 ‘배신’, ‘저희’, ‘심판’과 같은 극단적 표현을 쓴 박근혜 대통려의 작심 발언의 배경을 파고들었다. <뉴스룸>은 “여야 정치권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사실상 대국민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일단 불신이 높은 정치권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여론의 지지를 얻겠다는 포석인 셈”이라며 “반대편에 대한 비판으로, 메르스 사태로 흔들리고 있는 국정 동력을 회복하겠다는 의도도 실린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여당 원내사령탑’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유승민 원내대표를 직접 겨냥한 부분에선 여당 내부를 다잡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 6월 25일자 JTBC <뉴스룸>

<[데스크브리핑] '계산된' 대통령 격정 발언…뭘 겨눴나?>(▷링크)에서는 대통령이 ‘위헌’으로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이 정말 위헌인지를 되짚었다. 임종주 JTBC 정치부장은 “지난 29일 본회의 통과 직후에 대통령이 위헌요소가 있다고 주장해서 논란이 시작된 것”이라며 “그 이후 논란 끝에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해서 요구를 요청으로 수정을 해서 정부로 보냈지 않나. 상당수 전문가는 위헌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여야가 합의했고 국회의장이 중재했는데도 위헌이라고 규정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6일에는 <대통령 언급한 '정부 발목 잡았다'는 논란의 법안들은?>(▷링크)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발언의 사실관계를 따졌다. 정부가 요구한 경제활성화 법안은 총 30개인데 21개는 이미 통과됐고 나머지 9개 중 2개도 본회의에 올라가 있다는 점, 가장 논란이 되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의 경우 의료민영화를 위한 법이라는 우려 때문에 여야 입장이 갈려 상임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학교 인근에 관광 숙박시설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관광진흥법> 역시 일자리 창출 근거 등을 더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교문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등이 소개됐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지방재정법 개정안도 행정부 고유권한인 목적예비비 집행을 연계했다”고 했지만, 사실상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던 ‘누리과정 국가 지원’을 지키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한 야당의 반론도 언급됐다. 약속했던 국가 지원을 하지 않은 채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지방교육청 경비로 지출을 떠넘겼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