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이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메르스 관련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꼬집었던 풍자방송이 보수단체로부터 ‘박원순에 대한 찬양방송’으로 낙인 찍히면서 부터다. 그 후, 14일 ‘민상토론’이 결방함으로써 곧바로 외압 의혹으로 번졌다. 논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4일 ‘민상토론’에 대해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은 신중을 기해야한다”는 내용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 제5호 위반으로 행정지도 ‘의견제시’ 제재에 나선 것이다. ‘의압 의혹’이 실제 ‘외압’으로 이어진 셈이다.(▷관련기사 : KBS 개콘 ‘민상토론’ 불방 이어 방심위 '제재'까지)

실질적인 정치적 ‘외압’ 이후 방영된 28일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과연, 방통심의위 제재 등 논란에도 정치권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할 수 있을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비록 타겟을 현 정권이 아닌 전 정권으로 옮기긴 했으나 “정치권 풍자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어 보인다.

‘가뭄과 4대강’ 소재로 한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부족함이 없었다”

지난 주 ‘민상토론’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극심한 가뭄과 4대강 사업을 주제로 풍자를 이어갔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을 100% 해결할 것처럼 홍보했다. 환경파괴는 물론 사업의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반대여론은 무시됐다. 그 후, 흐르던 강은 고여 있는 거대한 호수로 변질됐고 그로 인해 녹조라떼, 큰빗이끼벌레 출현, 물고기 떼죽음, 강바닥 뻘 형성 등 퇴행적 파괴가 진행됐다는 평가들이 이어지고 있다. 4대강 사업이 별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은 이번 가뭄을 들어서도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뭄과 4대강 사업을 주제로 다뤘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민상토론 코너의 정체성과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 28일 KBS '개콘' 민상토론 가뭄과 4대강사업을 주제로 한 토론의 모습
그동안 보여줬던 정치풍자의 강도 역시 여전했다. 해당 방송에서 박영진은 “가뭄 문제를 해결책은 무엇인지 난상토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대성은 “우리가 물 부족 현상에 대해 뭘 이야기를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고, 유민상은 “몰라, 그냥 대강해”라고 답했다. 그러자 박영진은 “대강?”이라고 되물으며 “4대강 사업을 이야기한 것이냐”고 몰아갔다.

4대강 사업으로 주제를 몰아가자 유민상은 박영진에 “진짜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박영진은 오히려 “4대강 사업은 진짜 대단하고 역사에 남을 만한 사업이었다는 것이냐”고 재차 물었다. 유민상은 “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재차 박영진의 억지사회를 문제 삼았지만, 박영진은 “4대강 사업을 생각한 사람은 진짜 천재라는 뜻이냐”고 억지사회를 굽히지 않았다. 또한 유민상이 “이 정도 했으면 됐지 않느냐”고 말하자 박영진은 “가뭄에 이 정도 기여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 4대강 사업 때문에 더 큰 가뭄을 막을 수 있었다는 말이냐”고 유민상을 몰아세웠다.

박영진의 억지사회는 김대성도 피해가지 못했다. “김대성 씨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물음에 김대성은 자신에게 질문이 온 것을 책망하며 “아, 망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박영진은 “4대강 사업이 망했다는 것이냐”, “4대강 사업이 쓸데없는 거였다는 뜻이냐”고 몰아갔다. 억지 사회를 견디지 못한 김대성은 “너, 쫌”이라고 답답해했고 박영진은 그 말을 그대로 “녹조!, 4대강 사업 때문에 환경이 파괴됐다는 말이냐”고 이야기했다. 김대성의 “왜 이렇게 오늘따라 말이 시비조야”라는 불편함을 토로했지만 박영진은 “아, 22조. 투입된 세금 22조가 아깝다는 말인가. 김대성 씨가 다 어디로 갔느냐며 되게 아쉬워하고 있다”고 토론을 이어갔다.

패널로 설정된 김승혜는 손을 들고 유민상에 “KBS는 출연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MBC는 출연을 잘 안하시는 것 같다”며 “MB가 그렇게 싫습니까?”라고 물었다. 유민상은 “싫다뇨”라고 답하자, 박영진은 곧바로 “아, 좋군요”라고 받아쳤다. 유민상은 “시간을 조금만 달라”며 손가락으로 ‘조금’이라고 표시했지만 박영진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입니까. 하트를 날리고 엄청나게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멋대로 해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민상은 옆에 앉아있던 김대성에 “너도 말 좀 해”라고 말을 돌렸다. 이에 김대성은 “싫다”고 답했지만, 박영진은 이를 놓치지 않고 “난 MB가 싫다, 그런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김대성은 박영진의 이 같은 억지사회와 관련해 “난 MB얘기한 적도 없는데 지어내고 만들어내고 지 멋대로”라고 쓴 소리를 던졌다. 그렇지만 박영진은 “MB가 자기 맘대로 만들어 내고 짓고 그래서 싫다는 말이냐”고 물러서지 않았다. 게임을 통해 유민상이 ‘기념사진 촬영권’을 타자 박영진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입간판을 꺼내어 “마음에 드는 사람과 미소를 짓고 사진을 찍고 마음에 안 드시는 분은 눈에 안 띄게 저 멀리 치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풍자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유민상이 “이제 정말 (토론을)끝내자”라고 이야기했지만 박영진은 “(MB)임기가 끝났으니 4대강 사업 얘기도 끝내자는 것이냐”고 몰아세웠다. 유민상이 “아, 진짜 끝까지”라고 불만을 토로하자, 이번에도 “4대강 사업에 대해 끝까지 잘잘못을 가려 잘된 사업인지 아니면 세금낭비인지 확실히 평가하자는 말이냐”고 언어유희를 이어갔다.

‘민상토론’이 신랄한 정치풍자 가능한 까닭?…호불호 드러내지 않기 때문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은 앞서 언급했듯 유민상과 김대성 그리고 박영진이 선보이는 ‘언어유희’를 바탕으로 정치를 풍자하는 코너다. 그들은 특정한 주제를 놓고 신랄하게 풍자를 이어가지만 그 안에서 호불호를 드러내진 않는다. 가뭄과 4대강 사업을 주제로 토론했지만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수단체에서 문제로 지적한 ‘메르스’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박원순 찬양’이라면서 그 근거로 박근혜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중 하나를 고르라는 주문에 김대성이 “나는 서울에 사는 D씨로 하겠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것이 박원순 시장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이라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과연 해당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 중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됐을지는 의문이다.

▲ 28일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캡처
오히려 김대성은 둘 중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보수단체들이 문제로 삼은 메르스 대응 편에서도 “나는 서울에 사는 D씨로 하겠다”라는 김대성은 곧바로 “요즘 뻔히 아는 것을 이니셜로 하는 게 유행”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메르스가 창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병원명을 ‘비공개’로 하는 것에 대한 비틈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지난 주에도 박영진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중 한 명을 선택해 사진을 찍으라고 요청했고 유민상은 그 중간에 선 후 “이렇게 사이좋게 나란히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것이 그동안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이 줄곧 보여준 개그 소재흐름이었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그런 컨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서울에 사는 D씨’를 선택한 것이 박원순 시장을 선택했다고 본 보수단체들의 주장은 그렇기 때문에 근거가 부족하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에 사는 시민이 아니란 말인가.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이 첫 선을 보인 이후, 관련 기사를 쓰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그동안 정부여당에서 정치풍자 코미디에 대해 병적이라고 할 만큼 집착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 창구가 된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MBC <무한도전>와 tvN <SNL코리아> ‘글로벌 텔레토비’(여의도 텔레토비 후속), KBS <개그콘서트> ‘용감한녀석들’에 대해 행정지도를 하면서 줄곧 ‘정치심의’ 논란에 휩싸여왔다. 이와 별개로 tvN <SNL코리아> ‘위크앤드 업데이트’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유사보도로 지목되면서 정치풍자 양이 크게 줄었다. 이번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역시 그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방통심의위는 ‘의견제시’라는 행정지도 제재는 매우 낮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심의로 인해 유사한 수준의 풍자에 보수단체로부터 민원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편 역시 보수단체 입장에서는 MB에 대한 일방적인 폄훼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차례 반복돼 민원이 제기되면 제재수위가 올라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코너에 대해 행정지도를 결정한 방통심의위원들에게 한 때 유행했던 개그 하나를 던진다. 아주 오래된 개그이지만 여전히 필요한 그 구절을 말이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