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운명의 그야말로 ‘풍전등화’다. 새누리당 최고위원 8명 중 최소 4명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무성 대표 역시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다”고 발언해 무작정 유승민 원내대표를 감싸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29일 아침에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 친박계 구심인 서청원, 이정현 최고위원이 출석하지 않으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에 관한 긴급 최고위를 연다는 계획이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날 일간지들도 이 사태를 주요 소식으로 다뤘다. 중앙일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일간지가 유승민 원내대표를 둘러싼 갈등을 1면에서 다뤘다. 특히 보수언론들은 ‘패닉’에 빠진 모습까지 보였다.

▲ 중앙일보 29일자 3면 기사.

중앙일보는 유승민 원내대표 관련 소식을 1면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2면과 3면에서 비중있게 다뤘다. 중앙일보는 2면 기사에서 청와대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당내 비박들의 입장도 불명확해지면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고립됐다고 보도했고 3면 기사에서는 원칙을 한 번 정하면 끝까지 밀어 붙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로 볼 때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가 아니면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등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메르스 사태와 ‘그렉시트’ 문제, 중국의 수출·내수 부진 등의 경제적 악재가 겹쳐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을 내놨다. 중앙일보는 “나라가 흔들리면 여야가 어디 있고 진보·보수가 어디 있겠는가. 내년 총선 공천권이 아무리 중요해도 권력투쟁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라며 “친박·비박이나 친노·비노의 여야 집안싸움부터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당장 청와대와 여야는 정치휴전부터 선언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가 29일 오피니언면에 실은 박근혜 대통령에 비판적인 사설 및 칼럼.

중앙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 번째 화살>이라는 제목의 정경민 경제부장 칼럼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을 비판했다. 정경민 경제부장은 이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이 때문에 올 초 사정정국을 만들고 ‘성완종 리스트’에 휘둘리게 됐다고 분석하면서 메르스 사태에서 만회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박근혜 대통령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배신의 정치’라는 승부수를 던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경민 경제부장은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가뭄에 더해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까지 이뤄지게 되면 경제가 파탄나고 선거에서 이기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앙일보의 이날 지면에는 김형구 JTBC 정치부 기자의 칼럼도 실렸다.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법 재의를 위한 명분쌓기를 해왔고 여당 의원의 정부특보 겸직 문제도 허용해 청와대의 사정을 봐준 측면이 있다면서 “여와 야 사이에서 이쪽에 하나를 주면 저쪽에도 하나를 주는 기계적 형평을 최대한 맞추려 한 정 의장이다. 다음에는 어느 쪽으로 기울지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중앙일보는 대통령의 일방적 행보에 대해 기자들의 칼럼을 통한 비판을 감행한 것이다.

동아일보 역시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이날 1면 기사에서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사실상 자진사퇴를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전하고 4면에서는 청와대가 ‘조기 레임덕’을 단속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이 같은 강경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2016년 총선 이후 김무성 대표 등 ‘미래권력’을 중심으로 여권이 재편되면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다.

▲ 동아일보 29일자 김순덕 논설실장 칼럼.

이날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김순덕 논설실장의 글은 이 사태에 대해 동아일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김순덕 논설실장은 <이병기 실장, “안 된다” 말하고 사표 내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의 하나인 정호성 부속실비서관이 대통령의 메시지에 계속 개입하고 있고 오히려 이병기 비서실장이 청와대 ‘왕따’가 됐다는 풍문을 전하면서 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은 “어차피 사표 낼 각오면 명색이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이제는 3인방을 내보내야 한다’고 왜 말 못하는지, 내가 내는 세금이 아깝다”면서 “정호성을 거쳐야 하는 서면보고 말고 장관 수석의 대면보고를 받으면 세상이 달리 보일 거라는 진언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소수의 측근에 둘러싸여 국정을 운영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 동아일보 29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이날 <박 대통령, 진노 거두고 당정청 소통시스템 복원 나서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친박계 인사들의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요구를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내후년 대선까지를 염두에 두고 ‘여권 새판 짜기’를 노린 권력투쟁이라는 의구심을 살만하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의 유 원내대표 비판에는 감정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설령 유 원내대표의 잘못이 크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대응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썼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이 사태를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을 한 것이다.

이날 가장 눈여겨볼만한 신문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1면에 새누리당 지도부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걸로 가닥을 잡았다고 전한 이후 4면에서 청와대의 태도가 더 강경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조선일보는 5면에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유승민 원내대표 등의 입장을 각각 반영한 기사를 배치했다. 특정 주장에 강하게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고루 주장을 전하면서 다소 축소된 형태의 보도를 한 셈이다.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들과 달리 기명칼럼 등을 통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나 유승민 원내대표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한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막장으로 치닫는 與 내분, ‘실패한 정권’ 작정했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 발언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한 친박 대 비박의 대결구도가 강화되고 있어 지도부가 와해되고 전당대회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전당대회를 다시 치를 경우 내년 4월 총선 공천까지 걸려 있는 터라 죽기 살기 식 경쟁 속에 당 내분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친박 측에서 거론하는 원내대표 불신임 의원총회 소집이나 당 지도부 총사퇴 같은 방법은 자칫 당·청을 공멸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 조선일보 29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또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이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에 이른 상황이다. 이런 국민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대통령과 여당이 머리를 맞대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이 정권은 내분으로 치달았다”면서 “스스로 ‘실패한 정권’을 만들겠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또 “대통령이나 여당 지도부 모두 심상치 않은 민심 흐름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다”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결국 평소 정권에 우호적 입장을 취해왔던 보수언론들마저 박근혜 대통령의 ‘승부수’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이다. 언론의 본분 보다는 오로지 정권과의 아찔한 로맨스에만 관심을 가지던 보수언론의 꼬일대로 꼬여버린 입장을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오늘 느끼는 감정은 고소하다기보단 섬뜩하다는 것에 가깝다. 작정하고 편을 들어주려는 보수언론조차 기를 질리게 하는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절반 이상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승부수’로 붕괴됐던 콘크리트 지지층이 다시 결집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조선일보의 표현대로 정말 한심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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