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책과 긴밀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강북 끝과 강남 한복판을 오가는 긴 출퇴근길로 인하여 하루 일과의 상당한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야만 했는데 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만 했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까 생각도 했지만 선천성 기계치로 태어나 타블렛PC나 휴대폰에 MP3 또는 영화를 넣는 법은 끝끝내 익히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해볼 만한 것이 독서였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값만 지불하면 되니 간편한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책을 읽을 때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흥미로운지 그렇지 않은지만 보였다. 이해할 수 있고 공감이 가는 끝까지 읽은 책과, 반쯤 읽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아 책꽂이로 향하는 책으로 나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보였다.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많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삶도 이해가 가더라. 이때부터 반쯤 읽었을 때 책꽂이로 향했던 그 책들을 다시 꺼내 봤던 것 같다. 감응하고 소통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작가의 문장이 보이는 건 그 이후였다. 그리고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막막한 느낌이었다. 결국 그 무엇도 쓰지 못했다.

이런 막막함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보다. 요즘 서점가에서 글쓰기에 관한 책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통령의 글도 있고, 회장님의 글도 있다. 연봉을 높이기 위해, 블로그 마케팅을 위해,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위해서 등등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글쓰기 책이 존재한다. 하지만 『글쓰기의 최전선』은 그 전투적인 책 제목만큼이나 특별하다. 저자 은유가 강의했던 글쓰기 강좌 이름이기도 하다. 범인(凡人)들의 보통의 글쓰기, 독서를 통해 ‘나’와 ‘세상’에 대해 사유하고 감응하고 그것을 자신의 글로서 옹호하는 그 과정에 자체에 대한 의미를 조명한다. 철저한 읽고, 함께 말하고, 나의 느낌을 쓰는 훈련이다.

나 자신에 대해, 그 삶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조금씩 불편해지며 깨어있는 게 목표였다. (31쪽)

잘 쓴 글이든, 미완의 글이든, 숨겨둔 글이든, 파일로 저장하지 않고 날리는 글이든, 그런 과정하나하나가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문제를 형성하는 노릇이며 ‘삶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못 써도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붙들고 늘어진 시간은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기 한계와 욕망을 마주하는 계기이자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이라고, 이제는 나보다 안달과 자책을 내려놓고 빈 말이 아닌 채로 학인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어떤 글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우리 어서 쓰자고.(35쪽)

다른 글쓰기 책과 달리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흔히들 기대하는 글쓰기의 기술, 즉, 글을 어떻게 포장하고 효과적으로 풀어내는지에 관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솔하게 이야기를 적어가며 나를 마주하는 과정과, 그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나 이런 순간을 몇 번 즈음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머리 속은 온통 뒤죽박죽이고, 가슴은 답답하고, 문제가 무엇이며 해결책은 더더욱 알 수 없을 때, 나의 감정과 사건을 써 내려가면 점점 문제는 또렷하게 제 실체를 드러낸다. 때에 따라서는 너무 시시껄렁한 고민에 감정을 소모했다는 허탈감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글쓰기는 문장이 적힐 때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이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처음부터 소위 말하는 ‘글쟁이’가 아니었다. 나는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막연하게 재능의 영역이라고 치부했다. 그런 고정관념이 바닥을 드러낸 나의 언어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어왔다. 증권회사 직원이었고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가 남들 보기 번듯한 회사를 그만두고,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자유기고가로서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다. 막연하게 꿈꿔온 직업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살아갈 수 있는 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독서와 배움, 사회의 아픔에 대한 감응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무기로 삼아 글쟁이로, 글을 가르치는 강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흥미롭다. 그리고 저자의 학인들의 발전은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에 맞딱 뜨리고 있는 나에게 귀감을 넘어 부러움을 마저 불러 일으킨다.

저자는 2011년부터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2015년부터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 마을공동체 청년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강좌도 열었다. 4년 동안의 수업을 통해 경험한 학인들과의 어려움을 토대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우리가 여지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고충에 대하여 이 책은 이야기한다.

제1부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는 목소리를 갖지 못한 이들이 자기 삶을 용기 있게 증언하면서 자기 언어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2부 ‘감응하는 신체 만들기’는 각기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시를 낭독하고 외우고 느낌을 말하면서 감각의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3부 ‘사유 연마하기’는 상식과 금기에 도전하며 자기 관점에서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 4부 ‘추상에서 구체로’는 관념적이고 모호한 감상을 나열하는 게 아닌, 삶에 근거한 살아 있고 정직한 글쓰기를 권한다. 5부 ‘르포와 인터뷰 기사 쓰기’는 나의 언어로 타인의 삶을 번역하는 글쓰기 실전 프로그램이다.

특히 부록으로 실려있는 저자의 수업에 참석한 학인이 쓴 세 편의 글은 인상적이다. 모두가 경험에 근거해 자기 언어를 만들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작품들이었다. 「효주씨의 밤일」은 노동 르포르타주로 맥도날드에서 석 달 동안 야간 아르바이트 경험을 토대로 정치인들이 떠들어대는 말들과는 다른 고단 비정규직 서민의 일과를 담아 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와 이혼 후 가족등록부에만 존재하는 아빠를 인터뷰한 글은 특별한 기교도 없고, 억지스럽게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담담하게 쓰여져 읽고 나면 가슴 한편이 조금 시리다. 부록까지 읽고 나니 왠지 글을 쓰고 싶어진다. 좋은 글이란 우리의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지금 당장 ‘글쓰기의 최전선’ 수업으로 달려가고 싶을 지경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좋을 글을 쓰기 위해, 사고의 유연함을 위해, 지금 당장 독서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곧 바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친절하다. 수업시간에 읽은 책들의 목록이 간단한 내용 요약과 함께 실려있다. 이제 당장 읽고,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이미정 _ 대한민국의 흔한 전공 경영학을 배웠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유통회사를 다니다 어느 날, 딱 10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1인 출판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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