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동안 바빠서 못 만난 사람들, 오다가다 여행 중에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 회사를 그만 둔 내가 궁금한 사람들. 나이도 성별도 지위도 지역도 다른 그들이 던진 질문은 항상 똑같았다. 왜냐하면 내가 만든 명함을 내밀었기 때문. 그들은 내 명함을 찬찬히 살펴보거나, 실소를 참거나. 서둘러서 나는 답했다. 회사를 관두고 여행을 가려고 만든 명함이에요.

첫 번째 유형은 질문형이다. 명함을 보며 지금 여행자세요? 라고 묻는 사람부터, 무중력의 일상이 무슨 뜻이에요? 이거 직접 디자인 했어요? 아니면 날카로운 사람들은 한자 이름이 아름다울 미가 아니라 원래 정교하다 미를 쓰세요?

어떤 이들은 오타를 찾았다. 그들이 명함을 바라볼 때 미간에 힘을 주고 입은 살짝 나온다. 질문을 던지기 전에 이런 의미다. "그만두고 얼마나 좋아요" 혹은 "후련 한가요" 라는 의미다. 이들은 다음 대화에서 어깨를 앞으로 내밀고 팔꿈치를 탁자에 기대며 탐정마냥 내게 질문을 퍼붓는다. 진짜로 회사를 관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약간의 질투가 묻어나온다. 그럴 때 나는 서둘러 대답한다. "여행 못 갔어요. 아직, 목 디스크 때문에요. “

두 번째는 보자마자 실소를 참는 유형. 명함에 대해 궁금증은 없다. 고로 현재의 나에 대한 호기심도 없다. 적당히 미소를 지으며 적당한 예의를 갖춘다. 첫번재 유형과 달리 두번째 유형은 회사를 한 번쯤 그만두거나. 오랜 공백기를 가진 경험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명함을 슬쩍 쳐다본 다음에 충고를 한다. "공백기가 길어지면 좋지 않아요. " 혹은 어떤 이들은 "그러면, 지금 돈은 있고, 돈은 벌어요 ?“ 그럴 때 나는 서둘러 답한다. "저 돈 벌어요. 이것 저것 하면서. " 그들의 관심은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얼마나 버냐는 것으로 바뀐다.

회사를 관두고 나를 부르는 호칭은. 내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며 명함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기대였다. 나는 여전히 누구에게 기자였다. 기자들끼리 말하는 김선수, 김프로로도 불렸다. 단 한 번, 내 명함에 감격한 어느 교수님이 술자리에서 내내 여행자님이라고 불렀지만 이내 다음날에는 김 기자라는 호칭으로 바뀌었다. 물론 지인들은 김백조, 김백수라고 불렀다.

사실은 회사를 관두거나, 관두지 않거나 당신에게 필요한 건 계획이다. 회사를 관두기 직전, 버킷 리스트를 적어 내려갔다. 첫 번째로 이사, 두 번째로 남미 여행, 세 번째로 일본어 공부 네 번째로 하루에 한 번 글을 쓸 것. 지금에 돌이켜봐서 지킨 것은 남미 대신 제주도와 오키나와로 여행, 그리고 하루에 한 번 글쓰기 정도였다.

그 다음으로 회사를 관둔 당신에게 필요한 건 정신력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조언을 던진다. 명함 한 장을 두고서 여러 말이 쏟아져 나오듯이, “밥은 잘 먹고 다녀”부터 “언제 재 취업 할 거야.”까지. 그 수많은 질문에서 꿋꿋하게 자기만의 길을 간다는 건 실로 힘든 일이다. 물론 친구들의 조언과 지원도 필요하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의 조언을 때론 나를 아프게 한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를 믿는 정신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한 생활력이다. 퇴직금은 한순간이다. 나 역시 그랬다. 퇴직금으로 여행을 하고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웠지만 어느새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회사를 관두고 내가 세금을 이렇게 많이 내는 지도 몰랐다. 각종 보험, 국민연금과 도시가스, 전기세 그리고 휴대폰 요금에 허덕였다. 그야말로 진정한 독립생활이었다.

넷째는 체력이다. 회사를 관두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회사생활의 독소가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혹은 긴장이 풀려서 라고도 했다. 병원과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다보면 다시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백수 생활이 길어질수록 운동을 해야 한다. 한강에서 뛰던 자전거를 타던, 헬스장을 가던, 땀을 흘리고 나면 몸과 마음은 가벼워진다.

다섯째, 시간 관리다. 시간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주체할 수 없었다. 몇 가지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잡히지 않는다면 백수 생활은 여전히 괴로울 수밖에 없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신문을 보거나, 샤워를 하거나. 혹은 아침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나가서 사람을 만나거나. 이런 규칙들이 나의 생활에서 뼈대가 되지 않는다면 쉽게 생활을 무너지고 만다.

여섯 째, 태도다. 당신이 계획을 지키거나 지키지 못하거나, 안 지키거나 이 시간들로 겪는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깐.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는 걸로 충분하다. 그저 왜 못했는지 왜 잘했는지 그걸 아는 걸로도 그만이다. 지키지 못한 버킷리스트는 매달 매주 매일 다시 써 내려가면 그만. 죽을 때까지 버킷리스트를 새로 쓰고 고치고 다시 지우는 일을 할 테니깐.

회사를 관둔 8개월 동안. 그야말로 무중력의 세계였다. 영화 그래비티처럼 알 수 없는 외부요인에 우주 저 멀리로 둥둥 떠내려갈 때가 있었다. 중력이 없는 세계이기에 마음의 폭풍이 부는 날이면, 제주도로 오키나와로 도망가기도 했다. 파편처럼 다가오는 옛날 일들에 마음 고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명함 400장을 썼으면 하루에 못해도 2명 이상의 사람을 만난 것이다. 감사하게도 하루에 한 두 번의 밥값은 내가 내지 않았다. 대신 커피를 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청춘들이 겪는 고통은. 신문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4050대의 이야기도.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 차 한 잔 사달라고 졸랐다.

남미 여행은 안 가도 될 듯 싶다. 몇 개월 무중력 생활에서 나는 나를 다시 읽었다. 왜 이런 선택들이 이어져서 나의 인생이 그려졌을까. 그렇게 나 밖에 모르는 나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 위에 나처럼, 아니 침몰하는 우주선에 속 홀로 비행사처럼 폭풍을 침몰을 견뎌내었다.

힘들 때 내게 길을 알려준 책들이 음악들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있었다. 그 길에서 얻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였고, 그 안에 빛나는 빛을 읽어내는 것, 밝히는 것 역시 오로지 내 몫이었다.

명함을 주었을 때, 실은 내가 하고 싶은 대답은 이런 거였다. "남미 여행을 가면 모든게 해결될까요.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면 모든 게 해결 될 거라 믿지 않아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서 멀어진다지만 내가 가진 인생의 짐은 결국 내가 지고 가야하거든요. 회사를 때려치고 잠시만 쉬고 싶었어요. 자고 싶었어요. 몰랐죠. 저도 두달 만 쉬려고 했지만 남미 여행을 못 갈지 저도 몰랐어요.

그냥 이런 기분이에요. 지구를 등지고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 황홀한 그 푸른빛에 취하면서도, 뒤돌아서면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어둠. 그 가운데서 나는 이 지구를 등지고 다시 새로운 행성을 갈지, 아니면 다시 지구로 돌아갈지 고민하는 여행자.

저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그곳까지 어떻게 갈지는 생각해봐야죠. 우주선을 히치하이커 할지, 추락할지 아니면 돌진할 지. 아무도 알 수 없잖아요. 그러니 괜찮아요. 여행자처럼 하루하루를 살게요. 그런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 저는 충분해요“


#이 글은 여기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자 昇微 _ 글 쓰며 밥벌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다 수많은 낙방 끝에 통장 하나 없는 주제에 경제지 기자가 됐다. 그리고 과천을 거쳐 야당 출입으로 총대선을 치르고 산업부 재계를 거친 4년 3개월. 불면증을 얻고 퇴사했다. 현재는 무중력의 세계를 여행하는 가난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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