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뜸해진 감이 없진 않지만,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사회를 바탕으로 한 사회 고발물 성격을 갖는 영화들이 대거 나온 적이 있었다. 2012년 1월에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이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둔 것을 신호탄으로 <변호인>, <26년>, <노리개>, <돈 크라이 마미>, <남영동 1985>, <MB의 추억> 등의 작품이 개봉했다. 갈수록 사회 불평등을 체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 작품 대부분은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지만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관객들에게 큰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영화 내적으로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선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화하거나, 스토리에 있어서도 단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또한 일부 작품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급조한 티가 나 오히려 혹평에 휩싸이기도 했다.

6월 24일에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은 많은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겼던 <혈의 누>의 각본가 김성제의 영화 연출 데뷔작이자, 실제 사건을 바탕에 두고 전개되는 일종의 고발 영화이다. 그 사건은 바로 2009년 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혼란에 빠뜨렸던 ‘용산 참사’이다. 레아 호프가 있던 남일당 건물에서 일군의 철거민과 활동가가 망루를 지으며 철거 반대 농성을 시작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경찰과 용역의 강압적인 진압이 벌여졌고 이는 경찰과 철거민 모두에게 큰 비극을 낳고 말았다. 2010년 문정현 감독의 <용산>, 김청승 감독의 <마이 스윗 홈 : 국가는 폭력이다>, 그리고 2012년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을 비롯해 여러 차례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사건이기도 하다. 극영화로써는 처음이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메시지를 장르의 틀에 담다

▲ <소수의견>은 ‘법정 영화’라는 장르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분명하게 가져가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영화이다.

놀랍게도 영화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제작되었던 사회 고발 영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수의견>은 당연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무시되었던 ‘장르’의 틀 안에서 전개된다. 영화의 원작자이자 각본까지 맡은 손아람의 소설이 그러하였듯,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은 절대 평면적이지 않다. 물론 영화의 전개 상 국선변호사인 진원(윤계상)과 그의 선배 변호사인 대석(유해진)이 검사(김의성)와 맞선다. 그러나 작품은 절대 쉬운 구도로 서사를 이끌지 않는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에게는 크고 작은 결함이 존재하며, 그것이 때로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 심지어는 진원과 대석이 변호하는 피고인 철거민 ‘재호’(이경영)마저도 말이다.

이렇게 다층적인 캐릭터를 형성한 상황에서 <소수의견>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내는 대신 이 사건이 법정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공판이 벌어지는 지에 초점을 맞춰 나간다. 사건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재판 과정을 그리는 것에 비하면 부차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변호사는 어떻게든 피고인을 무죄로 만들고 국가에게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책임을 묻기 위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한다. 검사는 이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머리를 굴린다. 이는 중앙 일간지의 기자 수경(김옥빈)과 판사(권해효)도 마찬가지이다. 각본과 연출은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각자 정해진 캐릭터에 충실하면서 감정과 서사를 이끌기를 주문하고, 이러한 방식을 통해 영화는 ‘법정 영화’라는 장르의 틀을 견고하게 세우고 있다. 영화 전반에 서려있는 차가운 톤의 색감과 차분한 카메라 워킹은 이 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물론 누군가는 이러한 전개 방식에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검사가 사건을 유리한 방식으로 이끌기 위해 갖은 음모와 술수를 부리는 부분은 기존에 개봉한 다른 사회 고발 영화에서도 보이는 대목이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두 명의 변호사들은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송강호)처럼 작품 내적으로는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작품 외적으로는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외치는 시원한 일갈을 전혀 내뱉지 않는다. 피고인 역시 마냥 결백하지 않으며, 기자는 생각만 앞설 뿐 어딘가 어설픈 모습을 계속 보인다. 판사 또한 쉽게 한 쪽의 편을 들지 않는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상황과 사건을 통해 제시할 따름이다. 이는 기존의 작품들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작품이 택하고 있는 이 방식은 영화 내적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서 법정의 모습을 담는 방식을 통해 작품에 더 깊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두 명의 변호사가 최대한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려 선택한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은 이러한 형태의 재판을 전담으로 맡는 검사를 앞세워 배심원의 감정을 자극하려 하고, 변호사 측 역시 검찰보다는 수위가 낮을 뿐 비슷한 방식으로 피고인을 변호한다. 사회적으로 공분을 낳고 있는 사건을 맡는 변호인은 돈을 벌기 위해 마치 철거민 사망 사건에서 검찰이 보였던 모습을 그대로 가져와 불합리하지만 법적으로는 타당한 판결을 이끌어 낸다. 여기에 영화는 공정해야 할 법정이 인맥과 학연, 그리고 권력에 짓눌려 왜곡되는 모습을 계속 비춘다. 단지 극적으로 장면들을 비추는 대신 일상에서 너무나도 쉽게 벌어지는 모습처럼 보이도록 연출되어있다. 이렇게 <소수의견>은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감정을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연출이 극대화되는 지점은 바로 영화의 결말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국민참여재판의 1심 선고가 내려지고 피고인이 받은 판결에 방청석이 웅성거리고 곧 혼란에 휩싸인다. 이 때 영화는 방청석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강조하는 대신 오히려 최대한 낮추며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관객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와 정리되는 법정과 검사와 변호사, 피고인의 모습, 그리고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방청객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며 이 중대한 장면을 차분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작품은 이런 식의 연출을 통해 법정의 구조와 대상들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이들이 처해있는 모순과 불합리의 상황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메시지는 바로 지금 한국의 법이 어떠한 지점에 놓여 있고, 이러한 법을 토대로 정의가 실현되고 진실이 밝혀질 수 있느냐는 강한 의문이다.

제 2, 제 3의 <소수의견>들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 이미 여러 차례 개봉이 지연되고 투자-배급사마저 교체된 <소수의견>은 안타깝게도 극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수의견>은 작품의 감정을 계속 절제하며 원작에 존재하던 다양한 플롯을 들어내면서까지 법정에 초점을 맞췄다. 당연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이 노력의 결과로 <소수의견>은 몇몇 코믹 장면에 대한 호불호, 그리고 법정 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배치되는 인위적인 상활 설정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큰 흠을 잡기 어려운 영화이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주연부터 조연까지 균질하게 맞춰져 있으며, 무엇보다 기존의 실화 바탕 고발 영화에서 너무나도 쉽게 무시되었던 장르에 대한 이해가 확고하다는 점에서 분명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소수의견>은 개봉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많은 시련에 시달려야 했다. 원래 2013년 하반기 개봉 예정이던 작품은 ‘좀 더 나은 흥행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약 2년가량 연기되었고, 결국 영화의 투자-배급사가 CJ E&M에서 강우석 감독의 영화사 시네마서비스로 교체되고 나서야 겨우 개봉을 확정짓게 되었다. 언론시사회가 끝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감독이 “서너 달만 더 개봉이 연기되었으면 일인 시위라도 할 생각이었다”고 답한 것에서도 느껴지듯, 관객들은 물론 제작진들까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개봉 연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견>은 앞으로 제작될 실화 바탕의 영화들이 넘어야 할 어떤 분명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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