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 비리 폭로 사건 이후 삼성으로부터 1년 이상 광고를 받지 못했던 <한겨레>(사장 고광헌)가 앞으로 삼성 광고 없이 경영해나가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최대 광고주인 삼성의 광고 중단으로 <한겨레>는 올해 적자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한겨레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의혹 제기와 편법 상속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해왔던 <한겨레> 지면에서 삼성 광고가 사라진 시점은 지난해 10월 30일. 이는 공교롭게도 김 변호사가 삼성 비리 의혹을 폭로(10월 29일)한 바로 다음날이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에도 삼성중공업의 사과 광고는 모든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에 게재됐으나 <한겨레>에만 실리지 않았다.

고광헌 사장은 지난 12일 <한겨레> 사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삼성이 우리 신문에 광고를 중단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인내심을 갖고 이 문제를 풀어보려 애썼으나, 더이상 삼성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고통이 따르더라도 삼성 광고 없이 가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 사장은 “삼성은 돈으로 <한겨레>를 길들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가치관과의 싸움”이라며 “어제(11일) 열린 임원회와 긴급 국실장회의에서 임원과 국실장들이 11월과 12월 상여금을 반납하기로 결의했다. 경영의 최종 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참으로 송구스럽다. 동시에 무한한 동지애를 느낀다”고 말했다.

고 사장은 “회사 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갈 것이다. 20년 전 우리의 자랑스런 선배들께서 만드시고 우리가 지금까지 소중히 지켜온 ‘한겨레적 가치’를 손상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합심해서 고통을 나눠지고 지혜를 모은다면 지금의 난관은 충분히 돌파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재승 <한겨레> 전략기획실장은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과 편법 상속 문제를 보도한 것은 언론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한 것인데 삼성은 광고를 중단했다. 그동안 삼성과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보려고 했으나 더이상 삼성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고통이 따르더라도 최대 광고주인 삼성 없이 그냥 가기로 했다”며 “이번 일로 <한겨레>의 보도나 편집 방향이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 실장은 “삼성이 먼저 광고를 제안한다고 해도 받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동안 삼성이 부당하게 <한겨레>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았으므로 경영계획에서 더이상 삼성 문제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먼저 재개하겠다면 거부할 의사는 없다”며 “경제위기와 삼성 광고 중단으로 초긴축경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한 내부 관계자는 “언론의 정당한 문제제기에 대해 광고중단이라는 치졸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기업의 광고라면 <한겨레> 지면에 싣지 않는 게 옳다고 본다”며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경영진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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