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서비스를 제대로 못하고 기술발전 못하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콘텐츠와) 상생도 (이동통신사와) 경쟁도 못하는 상황이다. SO가 이동통신을 한다고 하자. 지금 상황이면 이통사와 똑같이 ‘이동전화 두 회선 가입하면 인터넷이랑 방송이 공짜입니다’라고 마케팅할 거다. 방송은 공짜라는 생각으로 사업을 하면 판이 모두 망가진다. 결합상품 동등할인을 한다고 해서 케이블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출발선을 한 번 그어보자는 이야기다. 공짜시장에는 상생도 경쟁도 없다. 다 알지 않나.”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한상혁 미디어국장 이야기다. 23일 케이블협회(회장 윤두현)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규모 기자간담회를 열고 방송 생태계가 무너질 처지라며 정부가 ‘결합상품 동등할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통신사들이 이동통신, 방송, 인터넷 서비스를 결합해 판매할 때 각 서비스별로 같은 할인율(최대 30% 이내)을 적용할 것을 정부가 강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동등할인을 할 경우, 가입자는 결합상품이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을뿐더러 방송과 인터넷 영역에서 케이블과 이동통신사와 가격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게 케이블협회 설명이다.

▲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정책간담회 모습 (사진=케이블협회.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케이블은 위기다, 그런데…

사업적 측면만 따져보자. 케이블은 위기다. 업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09년 유료방송사업을 시작한 이동통신사와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자(IPTV사업자)는 불과 6년 만에 천만 가입자를 모집했다. 한국미디어패널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동전화를 포함한 유료방송 결합상품 가입자는 2011년 11.5%에서 2014년 36.5%로 크게 증가했다. IPTV 출현 효과다. 특히 지난해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사는 ‘결합상품’ 마케팅에 집중했다. 결합 비율은 급등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동통신사들은 서비스마다 다른 약정기간을 활용해 가입자를 묶어(Lock-in) 스마트홈(사물인터넷)이나 각종 부가서비스로 가입자를 유도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이 유선부문에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방송-인터넷 공짜’ 마케팅을 벌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케이블은 이동통신도 없고 실탄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자신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상품권을 푼다”고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케이블 시장 잠식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케이블은 1500만 가입자를 유지하고 있다. CJ헬로비전, 티브로드, 씨앤앰, 현대HCN, 씨엠비 같이 덩치 큰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은 가입자를 늘리며 덩치를 키웠다. 1인가구와 OTT(Over The Top) 가입가구 증가로 일정부분 타격이 있겠지만 인터넷-방송 결합상품 덕에 전면적인 코드커팅(cord-cutting, 유료방송 해지)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MSO는 사물인터넷 시대에도 디바이스 제조사의 파트너이자 콘텐츠사업자의 ‘갑’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유료방송은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이 만원 안팎일 정도로 ‘저가’이긴 하지만 IPTV사업자와 케이블은 홈쇼핑과 T커머스 방송을 내보내는 대가로 천문학적 수준의 송출수수료를 받고 있다. 여기에 늘어나는 콘텐츠와 주문형비디오(VOD) 수요도 긍정적인 요소들이다. 아직 절반밖에 달성하지 못한 디지털전환율(2015년 4월 기준 50.1%)은 ‘가입자 뺏기’ 경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만, 사업자들이 경쟁하는 곳은 일부 중소SO 지역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 17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토론회 모습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케이블, 경쟁하지 말라

냉정하게 따지면 케이블은 이동통신사와 유효경쟁에서도 밀린다. 케이블의 미래는 인수합병 정도로 보인다. 그래서 문제는 여기부터다. 케이블이 가입자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이동통신사와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태광산업 티브로드 케이블방송 현황과 방송공익성 강화 및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김동원 박사(정치학 박사)는 “이미 입지를 굳히고 있는 IPTV/이동통신 3사의 수익모델을 추격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틈새시장의 네트워크 효과 구축”이라고 강조했다.

이동통신 가입자가 ‘온라인’에 몰린다면 케이블은 ‘오프라인’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김동원 박사 제안이다. 그는 “이미 다수의 지역 기반을 갖고 있는 케이블사업자가 그 자원을 이용하지 않고 IPTV와 동일한 전국 대상의 수익 모델을 찾는 것은 역설적”이라며 “유동성이 심한 온라인 네트워크보다 지속가능성이 높은 오프라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지역 케이블 가입과 이용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전략이 차별성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자가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고, 지역시청자위원회 등을 설치해 가입자를 끌어당긴다면 가입자 유지와 확대가 가능할 수 있다. 결국 ‘우리동네 케이블’ 전략과 함께 ‘지역시청자 권력’을 만드는 게 케이블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케이블이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과 함께 지역 공공서비스를 함께 구축하고, 마을 단위의 방송플랫폼을 자임하는 것도 가입자를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의 핵심고리는 ‘노동조합’이 될 수 있다. 지역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안전한 서비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추혜선 정책위원장은 “사업자들은 케이블은 사양산업이고 하락 추세에 있다고 하지만 케이블은 다단계하도급 구조에서 노동자들 단물을 빨아먹으며 수백억의 이익을 올리는 ‘땅 짚고 헤엄치기’ 산업”이라며 현장에서 가입자와 만나는 노동자가 ‘우리동네 케이블’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무료보편 플랫폼은 한국에 더 이상 없다. 지상파DMB 정도가 남아 있지만 거실TV에서 공공성을 구현할 수 있는 사업자는 케이블뿐이다. 당장 매각과 상장을 앞둔 씨앤앰과 티브로드가 투자자인 사모펀드운용사에 요구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새로운 유료방송을 위한 사회적 실험이 필요하다. 정부가 씨앤앰에 공적 자본을 투입하거나, KT 아래 있는 스카이라이프를 재공영화한다면 대안적 모델을 마련할 수 있다. 이통사와는 다르게, SO를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 서울 시내 KT대리점 앞에 붙은 마케팅 문구. 그래, 결합만이 살길이다. 케이블은 지역사회와 결합해야 한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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