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취업규칙' 개정에 대한 노조와의 합의가 필요한 임금피크제를 추진하면서 직원들에게 개별 동의서를 받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양대 노조는 단체협약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는 와중에 사측이 이를 회피하고 독단적으로 동의서를 받는 것을 두고, ‘부당노동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KBS는 지난 8일 금동수 부사장 명의로 ‘임금피크제 개별동의 절차 공지’라는 문서를 사내에 공유했다. 2016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정년연장(만 60세)에 대비해 사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위한 ‘임금피크제 자발적 개별 동의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니 참여해 달라는 공지였다. 올해 퇴직예정자를 제외한 일반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동의서 접수는 오늘(19일) 오후 6시에 마감된다. 동의서에 담겨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의 내용>

1. 정년연장 : 현 정년 도달월 분기말일 → 만 60세 도달월 분기말일
2. 지급보수 : 현 정년 도달월 분기말 기준으로 평균임금의 50%를 정년연장 기간 동안 매월 지급
※ 평균임금의 범위 :
- 기본급, 상여금, 근속수당, 연차휴가보상수당, 특수직무 수당, 가족수당, 급식보조비, 교통보조비 또는 자가차량이용 보조금 중 교통보조비 상당액
※ 정년연장기간 중 보직자(프로젝트팀장 포함)는 직책수당지급
※ 임금협상 결과는 반영되나, 승호/승급은 없음
3. 퇴직금 중간정산 : 공사 보수규정에 따라 중간정산
4. 특별휴가 실시 : 근무기간 중 2개월 유급휴가
※ 만 55세 도달월 분기말일부터 퇴직일 내에 2개월 유급휴가 실시
5. 복리후생 및 처우 : 임금피크제 적용 전과 동일
6. 상기 조건이 노동조합과 합의하에 변경되는 경우 그 조건을 적용함
7. 시행시기 : 2016. 1. 1.부터

하지만 지난 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대현 KBS 사장도 밝혔듯 임금피크제는 근로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받거나 노조와 합의해야 하는 사항이어서, KBS 혁신추진단이 독자적으로 직원들에게 개별 동의서를 받는 것에 대한 사내 반발이 크다. 특히 KBS가 현재 하고 있는 노사 단체협약에서 임금피크제 도입 논의를 공식화하지 않은 채, 혁신추진단 주도로 개별 동의서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상 ‘노사 합의 정신’을 무시했다는 주장이다.

양대 노조는 사측이 개별 동의서를 받기 시작한 8일, 각각 <임금피크제 자발적 동의 모집 철회하라>, <임금피크제 날치기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내어 ‘전면 거부’ 입장을 밝혔다. 양대 노조는 회사의 임금피크제 일방 추진은 부당노동행위이며 강제성도 불이익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혁신추진단이 주최한 임금피크제 관련 설명회가 열린 지난 10일, 피케팅을 통해 항의 의사를 전달했다.

▲ KBS 혁신추진단은 지난 10일 임금피크제 개별 동의제 관련 설명회를 열었다. 사진은 KBS노동조합-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항의 피케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보여주기 식으로 일방 강행… 노사 협의로 풀어야”

‘노사 합의’가 필요한 사안임에도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고 하는 사측의 움직임에 대해 내부에서는 “보여주기 식”, “고령 직원들의 생산성을 무시하는 것”, “충성 경쟁 확인용” 등의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KBS노조 관계자는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교섭대표노조와 협의해야 시행할 수 있는 문제인데 사측이 일방적으로 동의서를 받고 있어 저희는 총력 투쟁하겠다는 입장”이라며 “동의서를 추진하는 혁신추진단장도, 조대현 사장도 노조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해 놓고 열흘 정도 지나 돌변한 것은 최근 발표현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 때문이 아닌가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측에서 자세한 숫자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략 세 자리 정도라고 한다”며 “저희는 계속 사측과 투쟁하면서도 노사협상을 통해 도입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새 노조 관계자는 “일단 만 60세 정년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인데 50%씩 임금 삭감을 해야 한다는 입장만 고수하는 것 자체가 오류다. 또 고용노동부 권고에도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을 언급했을 뿐 ‘임금피크제’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설령 개별적인 동의를 받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수많은 직원들에게 적용되는 큰 틀의 변화인데 2주 서명 받는 것으로 갈음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사 합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강제 시행할 경우 노사 간 강한 충돌이 예상되는 것도 문제지만, 동의서를 쓴 사람들이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더 우려된다”고 전했다.

▲ 임금피크제 적용 동의서
또 다른 새 노조 관계자는 “근로자의 이익을 후퇴시키는 근로조건의 저하가 발생할 때는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구하고 있는데, 회사는 ‘정년이 2년 더 늘어났기 때문에 후퇴가 아니’라는 고용노동부와 방향을 같이 하는 것 같다”면서 “사장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선전도 할 수 있고, 간부들 충성경쟁을 시키고, ‘개별 동의’라는 절차를 통해 노조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서 추진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현재 양대 노조는 정년을 만 62세로 연장한다면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또, 정년을 앞둔 2년 동안 임금을 절반으로 삭감하는 것 외에도 재무상태, 인력수요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다양한 안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미디어스는 개별 동의서 접수 계기 및 ‘부당노동행위’ 지적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오강선 혁신추진단장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오강선 단장은 “노조와 대화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외부에 이렇다 저렇다 알리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여러 가지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저희 상황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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