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북아현13구역 6블럭. 뉴타운 재개발을 위한 철거 현장에서 철거민들과 진압경찰·용역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거친 숨소리가 이어지며 곧 강제진압이 시작된다. 급박한 현장의 상황은 ‘만만치 않은 문제’가 벌어졌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강제진압 과정에서 의경 김희택이 사망하고 철거민 박재호(이경영 분)의 아들 신우 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영화 <소수의견>은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며…”라는 자막으로 시작하지만, 관객을 ‘용산참사’로 안내한다.

영화 <소수의견>은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상황의 '싱크로율'이 높은 건 당연하다. 영화는 참사를 덮기 위해 서북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을 키우라는 청와대의 이메일 홍보 지침을 부각시킨다. 용산참사 당시, 청와대는 '강호순 사건'으로 여론을 무마하라는 이메일 홍보 지침을 내렸었다. 석연치 않은 경찰특공대 투입 과정과 그 개발의 배후에 얽혀있는 도림개발을 비롯한 복잡한 자본의 이해 관계 그리고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는 경찰과 검찰의 음흉함까지, 영화는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질주한다.

▲ 18일 오후2시 메가박스동대문에서는 영화 <소수의견> 언론시사회가 진행됐다. 시사회에는 김성제 감독을 비롯해 윤계상(변호사/윤진원 역), 유해진(변호사/장대석 역), 김옥빈(기자/공수경 역), 이경영(철거민/박재호 역), 김의성(검사/홍재덕 역)이 함께 했다ⓒ미디어스

김성제 감독, “용산참사 뿐 아니라 21세기 한국사회를 보여주고 싶었다”

‘용산참사’를 소재로 해 주목받았지만, 그래서 제작과 개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영화 <소수의견>(감독 김성제/제작 하리마오픽쳐스/배급 시네마서비스) 이 오는 24일 개봉한다. 2013년 제작이 완료됐으나 개봉이 미뤄져 2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18일 오후2시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소수의견> 언론시사회는 현실을 비추는 영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김성제 감독을 비롯해 윤계상(변호사/윤진원 역), 유해진(변호사/장대석 역), 김옥빈(기자/공수경 역), 이경영(철거민/박재호 역), 김의성(검사/홍재덕 역)이 함께 했다.

김성제 감독은 <소수의견>과 ‘용산참사’의 관련성에 대해 “모든 영화는 모티브가 있다”며 “원작 손아람 작가는 법조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 사이 용산참사가 벌어졌고 그것이 소설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원작 <소수의견>에 끌려 이를 영화화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했을 때, 그건 용산참사 뿐 아니라 21세기 한국사회의 풍경 그 자체였다. 서북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과 강호순 사건의 관계, 60명의 증인신청으로 인한 국민참여재판이 부결 등이다. 용산참사를 다뤘다기보다는 그 속에서 발생한 현실의 변주를 보여 주고 싶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당, 야당, 검사, 변호사, 시민사회 사무국장 그리고 의경들까지. 각각의 입장이 처해 있는 교집합의 상황과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용산참사는 단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풍경들이다.”_김성제 감독

원작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따른 영화 제목에 대해 김성제 감독은 “소수의견이라고 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뿐 아니라 3인 이상 합의부 재판부에서 채택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며 “그렇지만 법은 생물과 같아서 소수의견이었던 것이 세월히 흘러 다수의견이 되기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는 국민참여재판이 과도기적 상황이기 때문에 배심원들의 ‘평결’이 재판부의 ‘판결’보다 작은 권고적 효력”이라며 “무엇이 더 소수인지를 묻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 명의 판사가 9명의 배심원의 법 감정을 뒤집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왜 굳이 비전문가인 시민을 법정에 불러 들러리를 세우느냐는 문제의식이다.

철거민 변호 윤진원 역 윤계상 “그들 입장이 어땠을지 생각해볼 수 있기를”

그렇지만 영화가 원작과 완전히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원작에서는 5명의 의경들에게 한 명의 소년이 맞아 죽지만, 영화의 설정은 그렇지 않다. 공권력의 횡포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성제 감독은 “비극의 현장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구별보다는 그 너머에 문제들, 왜 그 사건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벌어졌는가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며 “영화를 통해 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답했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철거민 박재호의 변호인 역을 맡은 윤계상은 ‘평소에도 사회적 사건에 관심이 많은가’라는 질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당연히 관심이 있고, 소수가 피해와 상처를 받을 때 안타깝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윤계상은 <소수의견>을 선택한 이유를 자세히 밝혔다.

“<소수의견>은 사건의 전개와 내용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을, 아이러니하게 대중은 어떤 것이 맞고 틀린 것인가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 궁금케했다. 윤진원은 감독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했었었는데 나 같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주장이 세고,온 힘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봤다. 그래서 처음부터 감정을 숨기고 법으로 싸우고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대중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만일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들의 입장이었을 때 어떨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_윤계상

<소수의견>에는 한명의 변호인이 더 등장한다. ‘감초’ 역할로 윤진원과 함께 변호를 맡는 유해진(장대석 분)이다. ‘연기에 철학이 보인다’는 칭찬에 유해진은 “철학 같은 거 별로 없다”고 운을 떼며 “원작 소설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말랑말랑한 얘기를 다루는 건 아니어서, 그 곳에서 제가 할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 배우'는 언제나 그랬듯 이번 영화에서도 “변호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주는 딱딱함이 있는데 그 같은 관념을 깨고 영화에서 쉼표를 주”는 배역이다.

강제철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 공수경 역의 김옥빈은 “윤진원 변호사는 박재호의 무죄를 법정에서 밝히는 역할이라면 그 밖에서는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한 일(언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법정 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한다는 인식을 가진 법조인들을 눈꼴 시리게 보는 역할이었다”고 배역을 설명했다. 그는 “눈앞의 증거를 앞에 두고도 이것을 재판부가 채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 보는 두 변호사 앞에서 ‘누구나 알면(보도를 통해) 답이 나오는데’라고 의문을 가지는 마인드를 가진 기자 역으로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시사회에서 철거민 박재호 역의 이경영은 “삶의 터전을 지키고 싶었고 아들과 단촐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역할”이라며 배역을 설명한 뒤, “이 역할에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울림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홍재덕 검사 역의 김의성은 “조직의 논리에 충실한 사람”이라며 “스스로 국가를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작은 일들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온갖 거짓과 탈법을 행하는 일을 했다. 그런 캐릭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하거나 노력한 것은 없다. 아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 '트위터 스타'다운 유머를 발산했다.

<소수의견> 김성제 감독은 “어쨌든 오늘 공개를 해서 속이 시원하다”며 “3~4개월 더 개봉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속옷만 입고 시위를 할까도 생각했었다. 영화 많이 사랑해 달라”며 그동안의 맘고생을 전했다. 어느새 잊혀졌지만, 아직 잊혀져서는 안 되는 그 사건을 다룬 영화 <소수의견>은 2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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