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화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급기야 ‘박근혜 번역기’까지 나와 폭소를 불러 일으켰다. 국가지도자의 단점을 풍자로 소화하는 것은 국민들이 나름의 곤란함을 타개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풍자로 즐길 수 있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언론의 입장에선 두서없는 대통령의 발언을 어떻게 정리해야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잘 전할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고 연일 고민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대응과 관련하여 삼성서울병원장을 꾸짖은 다음날인 18일, 이를 전하는 언론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난국을 타개했다.

한겨레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종시에 있는 보건복지부의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와 즉각대응태스크포스 등을 찾아 발언한 전문을 인터넷판에 공개했다(클릭). 박근혜 대통령의 혼란스러운 화법이 잘 드러나 있다. 특유의 ‘중언부언’덕에 한 눈에도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처리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겨레가 공개한 전문을 18일 각 신문 지면에 실린 것과 대조하면 기자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다.

▲ 중앙일보 18일자 2면 기사.

중앙일보는 2면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전하는 기사를 실었는데, 삼성 사장단이 그룹 차원에서 깊이 반성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는 내용의 기사 하단에 작게 배치됐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메르스 확산이 꺾이려면 전체 환자의 반이 나온 삼성서울병원이 어떻게 안정되느냐가 관건”, “삼성서울병원의 모든 감염 관련한 내용들이 아주 투명하게, 전부 공개돼야 한다. 모를 때 더 불안하다.”

“거기(삼성서울병원)를 잠시라도 드나들었던 환자나 방문객 등의 동선, 명단을 확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방송으로 전부 신고하라고 알리고 있는데 신고를 다 받아서 다시 한번 확실히 진단해야 한다.”

“투명하게 공개해서 빨리 알리고 (메르스)가 종식으로 들어가도록 책임지고 해주시기 바란다. 모르면 대책이 안 나온다.”, “보수적으로 하실 필요가 있다, 잘해 주시기 바란다.”

중앙일보가 전한 발언만 따로 떼놓고 봐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한겨레의 전문에서 해당 부분을 찾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제 메르스 확산이 꺾이려면 전체 환자의 반이 나오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이 어떻게 안정이 되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에도 많이 협조를 해 오셨지만 삼성서울병원의 모든 감염과 관련된 내용들이 아주 투명하게 전부 공개가 되고, 그래서 의료진 중에서 모르는 사이에 뭔가 접촉이 있었다든지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전부 좀 알려져서, 모를 때 더 불안하거든요.”

“이제 거기에 위험한 그 기간 동안에 잠시라도 드나들었던 환자나 또는 방문객이나 이런 동선을, 그 명단을 확실하게 확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방송으로도 전부 신고하시라 알리고 있는데, 신고를 다 받아 가지고, 그건 본인을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주위는 물론이고. 그렇기 때문에 신고를 다 받아 가지고 다시 한 번 전부 확실하게 진단을 함으로써 삼성서울병원에서의 문제가 확실하게 여기서 차단이 되면 종식으로 가는 데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동아일보 18일자 기사.

동아일보 역시 이날 4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정리해 전하고 있다.

“메르스 확산이 꺾이려면 전체 환자의 절반이 나오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이 안정되느냐가 관건”, “삼성서울병원의 감염 관련 내용들이 전부 투명하게 공개되고 더 확실하게 방역이 되도록 해 달라.”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실하게 차단이 되면 (메르스 사태가) 종식으로 가는 데 큰 계기가 될 것”

“삼성병원이 잘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동아일보가 전한 발언 중 위의 중앙일보 보도와 일치하지 않는 대목은 “더 확실하게 방역이 되도록 해달라”와 “삼성병원이 잘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인데, 이 부분을 한겨레 전문에서 찾으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래야 더 확실하게 대처를 하니까, 그런 거는 전부 좀 투명하게 공개가 됐으면 하고, 또 환자가 많다 보니까 아무래도 환경이 오염된 부분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더 확실하게 방역이 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행이 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확실하게 이것을 끝내자, 삼성병원이 잘 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이 되니까….”

▲ 조선일보 18일자 6면. 빨간색 박스 표시가 박근혜 대통령의 삼성병원 관련 사진기사이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소극적인 태도로 보도했다. 6면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사진기사로 처리한 것이다. 이 사진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서울병원의 모든 감염과 관련된 내용들이 아주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환자·방문객 명단과 동선 등을 신고받아 확실히 진단하는 등 철저히 방역이 되도록 해달라”고 발언했다고 전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소극적 편집은 박근혜 대통령의 메르스 사태 대응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그간 줄기차게 비판해온 삼성 측에 어떤 ‘시그널’을 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조선일보가 <‘이재용의 삼성’, 국민 보건에 기여할 길 찾아봐야 할 때>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삼성서울병원과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비판을 거듭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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