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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부 전체와 맞서려는 '거부권', 대통령은 무얼 이루려는가[기자수첩]국민적 불안 상황, 섬뜩한 대통령의 태도
김민하 기자 | 승인 2015.06.16 17:37

입법부와 행정부의 정면 대결이 눈 앞에 다가왔다. 국회의장이 중재한 여야합의안에 대해 청와대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보면 청와대 관계자는 “한 글자 고친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등의 입장을 내놓았다. 그간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에 보여온 입장을 상기하면 대통령이 결국 거부권을 행사하는 시나리오를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아마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일방적인 불통 대통령’이란 비판이 또다시 나올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단지 ‘불통’의 문제로 비판할 성질의 것을 넘어선다.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이 능동적으로 움직여 만들어낸 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것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단지 ‘불통 대통령’의 문제가 아닌, 입법부 전체와 싸운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게 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필연적으로 여당인 새누리당이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된다는 점도 문제다. 국회법 개정안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총대를 메고 공무원연금개혁안 합의를 위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유승민 원내지도부를 사실상 ‘아웃’시키기겠다는 의지표명을 음으로 양으로 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밤의 긴급브리핑을 통해 의사인 35번 환자의 동선이 통제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내용을 발표할 때에도 청와대는 유승민 원내지도부를 비난하는 전화를 언론사에 돌린 것으로 알려져있다. 메르스보다 ‘유승민 응징’이 먼저였던 셈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에 휴업했다가 최근 수업을 재개한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서울여자중학교를 방문,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공은 다시 새누리당에 넘어간다.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다시 상정해 여야합의로 처리하는 경우 당·청관계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수순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으며 그렇다고 묵혀뒀다 없었던 일로 하기엔 이게 야당과의 합의 사항이었다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새누리당 내의 고질적인 친박 대 비박 갈등이 불거져 나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그간 논란이 돼왔던 여의도연구원장에 친박계가 동의할 수 있는 인사를 앉혔는데 앞서의 상황을 감안하면 사무총장과 사무부총장을 포함한 당직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방식의 고려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주류 출신 지도부로서는 입지가 축소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탈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청와대가 애초 제기했던 ‘위헌 논란’에 명분이 없다는 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국회의장의 중재를 통한 야당과의 지리한 협상 끝에 국회법 개정안의 ‘요구’라는 대목을 ‘요청’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청와대가 언급하는 ‘고친 한 글자’란 바로 이 대목을 말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요구’와 ‘요청’의 차이에 대해 “호랑이와 고양이의 차이”, “서울 부산만큼 동떨어진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등은 “요구나 요청이나 별 차이 없다”는 주장 등을 내놓고 있으나 경험적 언어의 세계에선 요구보다는 요청이 한 단계 낮은 표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학계의 의견도 청와대와는 결이 다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공법학자들을 대상으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한 공법학자의 82.6%가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 여부에 대해 위헌이 아니라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령이 위법할 경우 그것의 수정·변경의 요청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 행정입법 권한도 입법부가 행정부에 위임한 성격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 등이 근거다. 이 설문조사를 통해 거론된 근거 중에는 행정부가 행정입법을 통해 과도하게 입법부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선택지도 존재했다.

물론 이런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처리된 법안의 재의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어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여 대통령이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 그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세월호특별법 무력화를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이것을 입법부 전체와 ‘원수’가 돼가며 목숨걸고 당장 추진할 종류의 것인지 의문스럽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대통령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상기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말했고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주장했으며 ‘100% 대한민국’으로 요약되는 사회통합을 약속했다. 이런 공약들은 대부분 임기 초기에 폐기됐거나 후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지식·콘텐츠 산업의 육성 등을 의미하는 ‘창조경제’를 말했지만 취임 2년이 지나도록 이 구상이 ‘창조경제센터’를 만드는 것 말고 정책적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선거가 없는 올해 실현해야 한다고 공언한 4대부문 개혁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적폐론’에서 연유한 것이지 창조경제와는 큰 관계가 없다. 오히려 4대부문 개혁으로 대표되는 구조개혁은 단기처방에 만족할 수 없다는 전통적 신자유주의자들의 오랜 프로젝트에 포함되는 것에 가깝다. 즉 구조개혁에는 반드시 입법문제가 걸릴 수밖에 없는 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 복잡한 과정을 시행령으로 우회하겠다는 어떤 전략으로 보인다.

   
▲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에 휴업했다 최근 수업을 재개한 서울시 강남구 일원본동 대모초등학교를 방문, 손씻기 실습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고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메르스에 대한 태도에서도 어떤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서울 강남구의 대모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메르스라는 게 어떻게 보면 중동식 독감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독감 때문에 예방주사도 맞고 신종이 나오면 새로운 예방주사 맞고 거의 매년 연례행사같이 퍼진다”, “처음 겪는 것이라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학생 여러분이 음식 골고루 먹고 운동하고 생활 주변도 깨끗하게 관리하는 좋은 습관 몸에 붙이면 전염병이 얼씬할 수 없다”, “세상이 다 문을 열어놓고 살면서 그 나라에만 있던 독감이 올 수도 있고, 항상 그런 위험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내놨다. 메르스 누적 사망자가 이날로 19명에 이르렀고, 별다른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으며, 4차감염이 일어났는데도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등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국가지도자가 내놓은 발언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섬뜩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대통령이 국민들의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에 전혀 공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발언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예기치 않은 메르스 사태까지 발생해서 경기 회복의 불씨가 다시 사그러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고 “메르스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은 정상적인 해외활동까지 영향을 미치고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우리 경제를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메르스 ‘대란’의 한복판에서조차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가 ‘경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의 엉망진창인 초동대응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마음아파하거나 노력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경제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대통령의 세계는 ‘사람’이 아닌 ‘돈’의 소유일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돈’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외침에 다름아니다. ‘돈’의 세상에서 사람은 잘살기가 힘드니, 부디 그런 시도는 그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민하 기자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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