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서울시의회는 ‘교통요금인상에 따른 의견청취안(이하 ’교통요금인상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가 의회에 안건을 제출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30%에 가까운 인상 폭이 무색하게, 그 흔한 시민 의견수렴 과정조차 없었다. 이에 김상철 노동당서울시당 위원장은 <서울시 주민참여기본조례>를 이용하여 서울시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자는 묘수를 내놓았다. 서울시민 5000명의 서명을 모아 교통요금인상안에 대한 공청회를 청구하자는 것이었다. 고백컨대 그런 조항, 아니 그런 조례 자체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게 됐지만, 알게 무언가. 그렇게 서울시당 사무처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단순한 반대서명과는 다르다, 반대서명과는!

노동당서울시당은 5월 한 달 동안 서울 주요 도심에서 열두번의 길거리 서명전을 주관했다. 관건은 19세 이상의 서울시민을 찾는 것이었다. 주민참여기본조례에서 공청회 청구인의 자격을 그렇게 제한해뒀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많은’ 사람이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익히 알던 서명운동과는 달랐다. 이 서명운동이 성공할 경우 공청회를 열어야 할 법적 의무가 서울시장에게 부여될 예정이었다.

▲ 노동당 당원이 시민에게 서명전의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김한울)

단순히 교통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취지가 아니라는 점을 섬세하게 설명하는 일 역시 중요했다. ‘당신의 서명으로 교통요금 인상을 막을 수 있다’는 쉬운 말로 뭉갤 수도 있었겠지만, 진짜 문제는 서울시가 교통요금 인상을 추진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그 과정에 이해당사자인 시민들이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민의 권리를 지키자는 것이지요?”

혜화역 서명전에서 만난 백발이 고운 할머니. 그녀가 이 모든 설명을 듣고 차분하게 던져준 ‘한줄요약’이다. 시민의 권리를 지킨다니,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하지만 함께 나서 줄 시민들이 없다면 아주 허약한 말이기도 했다. 마침 그 날 귀갓길에 마주친 두 ‘새’자 돌림 정당들의 현수막에 쓰여 있는 말들에 비하면 말이다.

그들은 ‘생활비 줄여주는 새줌마’, ‘가스비 10.3% 인하했습니다’, ‘공무원연금개혁 해냈습니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성과(?)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딘가 ‘지붕이 있는’ 곳에서, 몇몇 ‘중요한’ 사람들 사이에서 결정된 일이리라. 초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거리에서 5000명의 서명을 받아내 마침내 공청회를 청구했다고 해서 ‘노동당이 서울시 교통요금 인상을 막아냈습니다’는 식의 현수막을 걸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 해야 하는 말은 그저 '시민의 힘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공청회가 열립니다' 정도일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비록 단 한 번의 공청회뿐일지라도 그것을 꼭 성사시키고 말겠다는 생각이 든 건 길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다. 특히 길에서 만난, '일하는' 사람들의 열띤 호응은 예상 밖이었다. 6, 70대의 공공근로 종사자들은 글을 못 쓴다며 이름과 생년월일과 주소를 받아 적어줄 것을 부탁했고,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전단지를 뿌리던 아주머니들은 당원이 전단지를 대신 뿌려주는 틈을 타 서명에 참여했다. 더운 날씨에 인형 탈을 쓰고 버티던 알바노동자들은 인형 탈 구멍 사이로 넣어준 서명지에 이름을 적어주었고, 캠퍼스의 청소노동자는 청소도구를 가져다 두고 다시 돌아와서 서명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주었다.

▲ 노량진역에서 만난 청소노동자가 잠시 일손을 거두고 서명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노영수)

▲ 강남역에서 만난 인형 탈 알바노동자가 피켓을 들고 서명전에 가세하고 있다. (사진=백상진)

물론 긴 설득이 필요했던 때도 있었다. 마침 세월호 버스킹으로 홍대를 뒤덮은 노란 리본의 물결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이 서명전도 싸잡아 반대하는 주차관리노동자를 만났다. 결국 그는 ‘놀러가다가 사고가 난 건데 왜 국가에서 배상을 해줘야 하냐’면서도, 마지못해 서명에 응해줬다. 비슷하게 ‘국가에서 하는 일에는 그저 믿고 따라야 한다’면서도 못 이기는 척 청구인이 되어준 할머니도 계셨다. 이 절반의 설득이 가능했던 건 그다지 특별한 스킬 덕분이 아니었다. 그저 웃는 얼굴로 기다리고 끈질기게 대화하기, 그거면 족했다.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 그 이야기

길에서 만나 서명을 요청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서울시민이 아니라서, 나이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혹은 ‘신분상 제약’이 있어서 서명에 응하지 못했다. 특히 서울시의 교통요금 인상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경기도 주민들이 그랬다. ‘신분상 제약'이 있는 사람들은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경찰이나 군인이나 공무원, 혹은 그 직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 서명전을 하던 당원들과 산책을 하던 주한미대사 리퍼트가 만나 사진을 찍었다. 그는 서명에는 응해주지 않았다. 그도 공무원이다. (사진=백상진)

서명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이 서명-전(戰)의 목표는 분명했다. 5000명의 '유효서명'을 채워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유효서명’이 될 수 없는 자들에게 이 서명전의 취지를 열심히 설명하는 일은 비효율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그저 5000명 중의 한 명으로 대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에서 인용되기도 했던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말을 잠깐 빌려오면 어떨까. ‘5000명이 서명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서명하는 사건이 5000번 일어나는 것’으로 이 일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통요금 인상에 억울해 하는 경기도민과도 교통요금인상안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야 했고, 서명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고등학생이 그가 참여할 수 없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주어야 했다.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이런 일에 참여하기는 좀 그렇다'는 청년에게도 일단은 서명의 의미를 잘 설명하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했다. 지나가다 길을 묻는 외국인이라면? 물론 친절한 안내와 함께 서명전에 대한 설명을 잊지 않았다.

그토록 염원하던, 단 한 번의 '성공의 기억'

무엇보다, 서명전을 함께 한 당원들과 작은 성공의 기억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얻었던 가장 중요한 배움 중 하나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치를 바라보고 달려가다 함께 하는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고 지나쳤던 날이 있었다. 마치 ‘도를 아십니까'처럼 취급하는 날선 눈빛들 사이에서 자꾸만 작아졌을 당원들의 마음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이 전쟁 아닌 전쟁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했고, 함께 하는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도록 했고, 하루의 성과를 같이 자축했다.

▲ 성공회대 서명전을 마친 후 노동당 당원들의 단체사진.

다시, 현수막 이야기다. 항상 ‘비판한다', ‘각성하라'는 문구로 끝나는 현수막을 뽑는 게 지겨웠던 날이 있다. 그저 누군가를 ‘까는' 것이 아니면, 그러니까 그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마저 희박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우리가 무언가를 '해냈다’고 쓰고 싶었다. 두 ‘새’ 정당들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말을 겉으로 써 붙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중요한 건 함께 공유하는 성공의 기억이 아닐까. 한 사람이 서명하는 사건을 오천 번 만들기 위해, (입에 단내가 나도록) 오만 번도 더 같은 말을 반복했다는 것. 그것을 우리가 '함께' 했고, 결국 공청회를 청구하는 일에 '성공'했다는 것. 비록 제대로 된 공청회를 열 수 있을지, 그래서 서울시의 막무가내식 교통요금 인상을 저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일의 모든 과정을 직접 치러 본 사람이 열 배는 늘어났다는 것. 그래서 다음에는 더 큰 성공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 희망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 노동당 당원들과 버스노동자들이 교통요금인상안에 대한 공청회 청구인 서명을 서울시에 제출하고 있다. (사진=김한울)

백상진 / 노동당 서울시당 총무부장

평당원으로 활동하다 노동당 서울시당의 업무를 보조해주기 위한 자원봉사를 맡으면서 진보정당 당직자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4년 지방선거 시기 출산휴가를 떠난 회계 담당 당직자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임시로 채용됐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초보 당직자이지만 회계, 홍보, 대외협력 등 선거에 출마한 다른 당직자들의 업무까지 떠맡는 신세였다. 최근에는 평당원 두 명과 함께 '음기양조'라는 당내 행사 기획 그룹을 만들었고 '당원-되기', '내 꿈은 연대왕', '더 시리자 임팩트' 등의 행사를 주최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