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생리현상도 돈을 지불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일까? 김승대와 아이비가 출연하는 뮤지컬 <유린타운>의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다. 돈을 지불해야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수 있고, 돈이 아까워 노상방뇨라도 했다가는 바로 경찰서로 끌려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주민들이 내는 세금, 그러니까 소변을 보고 내는 세금으로 부자가 된 기업가 콜드웰의 딸 호프(아이비 분)와, 김승대가 연기하는 바비가 사랑하게 된다. 소변을 보기 위해 지불하는 돈으로 부자가 된 악덕 기업가의 딸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콜드웰은 바비의 아버지를 연행해간 배후 세력의 ‘몸통’이기도 하다. 즉, 아버지를 잡아간 원수의 딸인 호프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기에, 바비는 이상해도 너무나도 이상한 사랑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원수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단다. 김승대의 답변을 들어보니 부조리극의 대가 브레히트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해답은 아래 일문일답 안에 담겨 있다.

▲ 뮤지컬 ‘유린타운’ ⓒ신시컴퍼니
- <유린타운>은 블랙코미디 뮤지컬이다. 블랙코미디에 도전하는 건 처음이 아닌가.

“코미디는 관객을 환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블랙코미디는 코미디의 한 장르다. 블랙코미디 역시 코미디처럼 관객을 재미있게 만들게 만들지만, 대사 하나 하나를 곰곰이 되씹어보면 촌철살인의 메시지가 있다. 가령 ‘우린 자유롭게 오줌을 쌀 것입니다’하고 절규하는 장면을 일차원적으로 보면 우스꽝스럽고 재미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바비의 투쟁은 자유롭게 오줌을 싸기 위한 투쟁이다. 돈을 받고 오줌을 눈다는 건 인간의 생리현상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라 마냥 우습게 볼 수만은 없다. 웃음 뒤에 풍자가 숨겨져 있다. 이런 요소가 블랙코미디의 매력이다.

그동안 정극 뮤지컬을 많이 해왔다. 코미디 뮤지컬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린타운>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코미디 작품에 많이 출연해왔다. 이들 배우들은 정극에서는 찾을 수 없는, 코미디만이 가질 수 있는 연기 호흡에 익숙하다. 정극에서는 배울 수 없는 연기 호흡을 <유린타운>을 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제가 잘하는 정극 뮤지컬에만 출연하면 정극 전문 뮤지컬 배우가 될 것이다. 뮤지컬 데뷔 초반에는 ‘비극 전문 배우’ 혹은 ‘패륜아 전문 배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뮤지컬을 계속 하다 보니 정극이라는 한 분야에 주특기를 갖고 싶지만은 않았다. <유린타운>이 아니면 언제 부조리가 섞인 블랙코미디 작품을 맡아보겠는가.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싫어서 블랙코미디와 같은 다양한 장르도 도전하고 싶었다.”

- 김승대씨가 연기하는 바비의 음역대에서 ‘하이 키’가 많아 보인다.

“음역대는 높지만 성악적인 음역대가 아니다. 이전에 출연한 <태양왕>의 넘버는 그루브를 많이 타야만 했다. 당시 <태양왕>에서 필립을 연기했다. 프랑스 원작 뮤지컬의 필립은 크로스오버 테너에 가까운 하이 키를 선보였다. 그러다 보니 필립의 음역대가 남성 키가 아닌 여성 키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성 키라 <태양왕>에서는 고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팝(pop)한 장르의 넘버가 많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팝에 가까운 목소리라 하이 키에 접근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없다.”

▲ 뮤지컬 ‘유린타운’ ⓒ신시컴퍼니
- 바비와 호프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과도 닮아 보인다.

“<유린타운>을 만든 작가는 부조리극를 선호했다고 한다. <유린타운>은 부조리극에 여러 작품을 패러디했다. 바비와 호프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패러디한 것이 맞다. 바비와 아버지의 관계는 <햄릿>을 패러디한 것이고, 1막 마지막에서 투쟁을 외치는 장면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했다.

<유린타운>은 브로드웨이 작품이라 미국적인 정서가 많다. 서구에서 <유린타운>을 무대화하면 관객은 무슨 장면을 패러디한 것인가를 알아채고 빵빵 터진다. <유린타운>은 <댄스 오브 뱀파이어> 같은 작품도 패러디했는데, 한국 관객은 서구 관객과는 달리 작품을 관람한 관객만 패러디를 알아챌 수 있다. 바비의 아버지가 끌려간 다음에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이는 햄릿과 아버지의 유령을 패러디한 장면이다. 한국 관객은 분명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안다. 알고 있음에도 바비와 아버지의 대사에서 <햄릿>을 패러디했다는 걸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 아버지를 체포한 원수의 딸이라는 걸 알았다면 과연 호프와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까.

“작품의 대본을 처음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의문이었다. 굉장히 고민하다가 얻은 결론이 있다. 뮤지컬이 사실주의로 접근했다면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이다. 하지만 <유린타운>의 작가는 부조리극을 선호했다. 부조리극의 사조를 보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당연시하게 생각하는 전개를 거꾸로 비트는 경우가 많다. 부조리극의 대가가 브레히트이고, <유린타운>의 작가는 브레히트를 맹신했다고 한다. 브레히트를 닮고 싶어하다 보니 <유린타운>의 서사를 부조리극의 형태로 바꾼 거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