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그동안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렸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3년 시리즈의 첫 편을 복기해 보자.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CG로 살려냈을 때, 벨로시랩터의 민첩함에 관객은 공포와 전율을 맛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첫 편의 대성공에 이어 제작된 2, 3편, 특히 3편은 1편의 명성을 갉아먹는 졸작 시리즈로 전락하고야 만다. 예정대로라면 2005년에 4편이 상영되었어야 했지만, 심폐소생술 없이 도저히 되살아날 가망이 없던 시리즈가 <쥬라기 공원> 시리즈였다.

4년도 아니고 무려 14년 만에 관객을 찾아온 4편은 제목부터 ‘리부트’되었다. ‘공원’이 아닌 ‘월드’로 외연을 확장하고, 1편의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벨로시랩터, 3편의 프테라노돈도 모자라 새로운 공룡 모사사우르스와 인도미누스 렉스라는 신선한 피를 투입함으로 리부트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기존 시리즈에 등장한 공룡보다 더욱 강력한 공룡을 새롭게 선보인다는 리부트의 전략 또한 잊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인도미누스 렉스는 쥬라기나 백악기에 서식한 실제 공룡이 아니다.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의 유전자에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가미한 하이브리드 공룡으로, 단지 덩치만 큰 육식공룡이 아니라 ‘속임수’도 쓸 줄 아는 공룡을 등장시킨다. 3편의 스피노사우루스처럼 덩치만 크고 볼품없는 공룡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인도미누스 렉스와 같은 지능형 공룡을 등장시키고, 프테라노돈과 같은 익룡의 스펙터클한 시각적 향연을 펼침으로 말미암아 이번 리부트는 기존 시리즈에 비해 박진감이 업그레이드된 리부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14년 만에 돌아온 <쥬라기 월드>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얼까. 필자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창조주인 아이언맨이 피조물인 울트론을 통제하지 못한 것처럼, 창조주인 인간이 피조물인 공룡을 통제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파국을 <쥬라기 월드>는 시리즈 첫 편과 마찬가지로 동어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쥬라기 공원>이 처음으로 개장할 때 연구원들은 공룡의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한 쪽 성(性)은 인위적으로 제거했다. 하지만 자연계는 공룡의 개체가 단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간이 인위적으로 제거한 나머지 성을 창출하고 2세를 번식하기 시작했다. 인위적으로 공룡을 통제하고자 했지만 인간의 개체수 조절이 실패했음을 1993년 첫 편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쥬라기 월드> 역시 동어반복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공룡을 찾던 쥬라기 공원 관람객의 기호가 식상해지자, 기존 공룡보다 강하고 자극적인 공룡을 발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쥬라기나 백악기에 실제로 살았던 공룡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벨로시랩터와 오징어와 같은 여러 동물의 유전자를 조합하여 하이브리드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를 만들어버린다. 최고의 공학 기술자를 총동원해서 인도미누스 렉스가 탈출하지 못하는 울타리를 만들지만 안도미누스 렉스는 인간의 통제 능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탈출해버리고 쥬라기 공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1편 <쥬라기 공원>과 마찬가지로 <쥬라기 월드> 역시 창조주인 인간이 피조물인 공룡을 통제하지 못하는 파국을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왜 인간은 통제하지도 못할 피조물을 만들어놓고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100% 통제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자만에 빠지는 것일까. 지금 과학자들이 개발하는 인공지능 AI 또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인간 스스로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쥬라기 월드>를 보며 갖게 된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