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론이 메르스 노래를 하고 있다. 정부를 질타하고, 방역 시스템을 비판하고, 메르스가 어디까지 확산되는지를 화려한 퍼포먼스로 제시한다. 얼핏 사회비판적인 랩 가사로 부르는 것 같지만, 이런 언론들의 노래는 사실 팔릴 만한 부분만 반복하는 후크송에 불과하다. 지금도 여전히 언론들은 자기성찰적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1 각설이 타령, “작년에 왔던 공포장사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먼저 메르스가 발생했을 초기 우리 언론의 보도를 되돌아보자. 메르스와 관련된 기사가 처음 나온 시점은 5월 20일이다. 당시 언론들은 메르스의 40% 치사율에 주목해서 ‘충격’이라는 표현을 남발했고 ‘중동판 사스’이며 치료제가 없다는 이유로 공포감을 키웠다. <뉴스1> 정도만이 대한감염병학회 이사장인 김우주 교수 인터뷰를 통해 ‘불필요한 공포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를 전했다. 이 뉴스에서는 ‘국민들에게 전파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도 같이 전했다.

▲ 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나왔던 5월 20일, <뉴스1>은 대한감염병학회 이사장인 김우주 교수 인터뷰를 통해 ‘불필요한 공포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 '당부'를 가장 빨리 외면한 건 바로 언론이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당시 언론은 메르스의 공포를 강조하는 것에 주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른바 공포 장사를 조장한 셈이다. 이에 대해서 언론은 환경감시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고 반박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 그랬다면, 메르스 예방법에 대해서 더 비중을 두었어야 했고, 수치상의 40% 치사율과 실제 위험성을 분석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옳았다. 언론의 보도대로라면 병에 걸리면 두세 명중 한 명이 죽는다는 이야기인데, 흑사병의 치사율이 30~70%, 천연두가 50%인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얼마나 끔찍한 병인가? 물론 결과적으로 메르스의 치사율은 통계적 문제로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이미 시민들에게 새겨진 공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게다가 언론이 제대로 환경감시를 수행한다면 메르스 확산 우려가 없다는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전할 것이 아니라, 방역 절차가 제대로 수행되었는지를 밝힐 필요가 있었다. 결과론적 이야기 이긴 하지만, 만약 당시에 우리 언론이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을 제대로 감시했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전문가가 국민들에게 전파 가능성을 낮다고 말한 것을 탓하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정부의 방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를 상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전파 가능성을 낮게 본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2 새타령 “병원문전에 기자새~이 산으로 가면 비밀! 비밀! 저 산으로 가면 비공개! 차단! 어허 어히~ 어허~ 좌우로 다녀 울음운다”

메르스 사태와 관련하여 봉황으로 상징되는 청와대의 대처방식은 참으로 안이했다. 물론 청와대도 일반적인 상황, 즉 우리 방역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을 전제하고 감기 바이러스의 일종인 코로나 바이러스 변종이 큰 위협이 아닐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청취해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메르스 불안이 가져오는 역효과 > 실제 메르스로 인한 피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일방적인 비난을 할 수만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현 정부의 재난대비 시스템 자체가 거의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첫 번째 감염자는 정부가 제대로 된 진단을 하지 않자 고위직 친분을 내세워 겨우 확진을 받을 수 있었고, 최초로 찾았던 서울삼성병원은 사태 초기에 공개되지 않아서 더 많은 피해를 키웠다. 더구나 전염병과 같은 재난시의 초기 대응은 이른바 과잉 대응처럼 비춰질 정도로 강력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비공개로 일관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언론은 대체로 정부의 병원 비공개 방침을 그대로 따르는 방향을 유지했다. 이미 인터넷에 공개가 되고 일부 언론이 정부 자료를 근거로 보도한 내용도 재취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언론은 일종의 엠바고 및 오프더레코드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최초의 비공개 정책은 심각한 피해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오류를 인정하고 해당 병원을 공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만일 언론이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면 시민들의 불안을 차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는 공포장사를 통해 위험을 침소봉대하는 것과 달리 위협 요인을 정확하게 인식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언론은 메르스를 비본질적인 정치 문제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감염자 및 병원 정보를 공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대립은 언론에 의해 정치 쟁점화 되었다. 국민들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좌우 이념 대립적 관점이 적용되었다. 정책 효율성이나 시행 방식에 대한 이견이 마치 정치적 신념에 따른 대립으로 해석된 것이다. 문제는 언론이 설정한 정치 대결 프레임 때문에, 시민들이 메르스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판단을 내리기보다 신념에 따른 감성적 판단을 내린다는 데에 있다. 공포장사만큼이나 이념장사를 통해서 언론이 이득을 얻고 있는 것이다. 늘 그래온 것처럼 말이다.

메르스 관련 언론 프레임의 또 다른 문제점은 병원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 보도 관점이었다. 현재 메르스는 주로 병원을 통해서 확산이 되었고, 일부 병원의 감염 방지 시스템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우리 언론은 메르스 국면에서의 병원을 마치 복마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병원에 대한 과도한 불신과 진료 기피로 인한 선의의 피해를 가져올 수 있으며, 질병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중인 의료인들의 박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평택성모병원을 비롯한 몇몇 병원들은 정부 행정력 부재에 따른 불가피성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미 소를 잃은 상황에서 언론은, 외양간 관리자를 범죄자로만 몰 것이 아니라 외양간 잠금장치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보완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3 군밤타령 “개가 짖네~ 개가 짖네~ 눈치보면서 어허얼싸 함부로 짖누나”

매번 그래왔지만 언론들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별로 성찰하지 않는다. 이번 메르스 국면에서도 언론의 환경감시 기능, 즉 감시견(watchdog) 기능은 빛을 잃었지만 어느 언론도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는다. 왜 공포심을 과도하게 유발했냐고 하면 국민들이 심각성을 느껴서 제대로 대응토록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할 지도 모르고, 왜 비판적인 보도를 못했냐고 하면 가장 공신력 있는 정보원인 정부의 발표를 객관적으로 보도한 것이라고 답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 언론은 요 몇 년 사이에 권력을 지키는 수호견(guard dog)이나 애완견(pet dog)의 역할만 해왔다. 언론 자유도를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 권력의 충견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습성은 이미 세월호 보도에서도 경험한 바가 있다. 정부 발표만 일방적으로 찍어내듯 전달하는 팩 저널리즘(pack journalism), 보도자료 ‘우라까이’하는 처널리즘(churnalism) 등의 보도 태도나 주요 이슈를 이념적 대결 프레임이나 정치적 행위로 분석하는 것, 불안 심리를 자극해서 언론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 정부는 메르스 사태가 한참 진행될 때까지 '비공개 정책'으로 사태를 키우고 전염을 확산시키다가 뒤늦게 '공개'로 정책을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정부의 비보도 요청을 따랐고, 알면서도 쓰지 않았다. 이 카르텔이야 말로 메르스 사태의 혼란을 부른 근본적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6월 8일자 경향신문 1면 캡처.

이는 이번 메르스 관련 보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일 최초 보도에서 치사율을 인용해 공포를 유발하고, 이후 보도에서는 정부의 대책과 예상을 의심 없이 그대로 전달하기만 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방역 대책에 문제가 생기자 당국을 물어뜯기 시작했지만, 행정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물어뜯지 않았다. 다시 지방정부에서 중앙 방역 당국과 대립되는 행정을 펼치자 편 가르기를 시작했고, 제대로 자가 격리를 하지 않은 개인들과 감염에 무방비였던 병원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언론은 자신들의 비판이 권력을 감시하는 차원의 제대로 된 ‘꾸짖음’인지, 약자를 향한 단순한 ‘짖음’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 언론은 치사율 95%의 탄저균에 대해선 어떠한 감시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나 내심 결론은, 이처럼 타령으로 언론을 욕을 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사회의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기댈 곳은 언론뿐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정론직필 타령을 부르고 싶다.

이경락 _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 YTN사이언스의 사이어스투데이에서 '미디어 앤 사이언스'라는 이름으로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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