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예술인가? 라는 주제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2010년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게임디자이너 켈리 산티아고의 TED강연을 비판하면서 단호하게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 순간 수많은 커뮤니티들이 불타올랐다. 로저 이버트의 결론은 한 가지였다. 왜 게이머들은 게임을 예술로 부르고 싶어 안달인 것인가?

예술에 대한 정의 같은 깊은 부분까지 이야기를 꺼내드는 건 짧은 글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을 예술로 부르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예술이던 아니던간에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의 사회를 다루고 있느냐는 부분이다. 게임도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콘텐츠제작자가 받아들인 세계를 제작자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재현하는 것이라면 설령 그것을 예술로 부르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게임이 인간을 재현한다’는 말까지는 대부분 동의가 가능할 것이다.

위 문장에 동의한다면 콘텐츠 결과물로서의 게임에 대한 비평은 분명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유독 게임에 대해서는 이러한 인문학적 비평으로서의 접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게임업계의 중요한 테스트베드이자 e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단호한 면모를 지닌 한국에선 유독 게임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 부족한 상황인데, 이런 현실 속에서 출간된 <제국의 게임>은 게임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론의 좋은 예시로서 자리한다.

<제국의 게임>은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과 다중의 개념을 기반으로 게임에 접근한다. 게임과 제국의 랑데부 포인트는 ‘상호작용’이다. ‘제국’ 은 ‘다중’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탄생하고, 또한 다중의 활동에 의해 형성될 대항적 제국과 조우한다. 게임은 로직 대 플레이어, 혹은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의 액션-피드백에 기반하여 진행되는 콘텐츠이며, 게이머의 액션을 통해 게임을 시작하고 유지하며 엔딩을 맞게 되는 구조를 가진다. 둘의 구조는 매우 유사하며, 책은 게임이야말로 네그리의 제국 개념이 접근하기 좋은 매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개념 하에 책이 시도한 몇 개의 게임 비평은 실제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 낸다. <GTA> 시리즈 전반에 걸친 제국의 형상으로서의 도시에 대한 해석은 의미깊다. 가상의 체험을 제공해야 하는 게임은 현실의 모사를 시도할 때 다른 장르에 비해 복합적이고 압축적인 추상을 동원해야 하는데, <GTA>가 도시의 양태를 재현하기 위해 추상해 낸 개념들은 실제로 신자유주의적 세계의 중요 개념들과 밀접하게 관계맺은 개념들이다. 다운타운과 슬럼, 인종과 빈부격차, 합법과 불법의 경계 등 게임의 서사를 이어가기 위해 게임은 가장 핵심적인 개념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도시를 재현해 냈다. <제국의 게임>은 네그리의 제국 개념을 기초로 이를 설득력있게 증명해 낸다.

그러나 제국과 게임의 콜라보레이션에는 아쉽게도 하나 빠져있는 제목이 있다. 제국-게임을 등치시켰다면 사실은 다중-게이머의 등치 또한 필요하지 않았을까. 앞서도 언급한 바처럼 결국 상호작용이라는 역동성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공통점을 생각한다면, 게임만큼의 이야기를 게이머에게도 담았어야 한다.

상호작용이 중심이 되는 게임에서 모든 게이머는 사실상의 2차 창작자이다. 게임이 제공한 로직 안에서 게이머는 각자의 서사를 펼친다. <팩맨>에서 플레이어는 매 플레이마다 플레이시간과 위기상황, 극복과 스테이지 수를 다르게 가져가며 독창적인 서사를 만들어가며, 이러한 2차 창작자로서의 특성은 게임 밖의 환경에서는 모딩moding과 사설번역과 같은 재창작 시도로 나타난다.

책의 후반부에서 분명 게이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으나, 앞부분의 게임 비평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제국의 게임>에서 게임과 게이머의 관계는 제국-다중의 관계만큼의 위치로 규정되지 않으며, 게이머의 행동에 대해 게임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설명이 부족하다. 당장 게이머를 자처하는 내 입장에서도 제목만으로는 무슨 게임인지 알 수 없는 해외의 시리어스 게임들이 나열되는 장에서는 읽기의 진도가 크게 떨어졌다.

게임-게이머의 관계에서 게이머는 절대 작지 않은 분량이다. 나는 매체비평지에 게임 관련 글을 기고중인데, 해당 칼럼의 바이라인에 적는 직함명을 칼럼니스트나 평론가가 아닌 ‘게이머’로 적고 있다. 게임에 관한 글을 쓰는 것 또한 게임에 대한 상호작용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 물론 앞의 두 개 직함을 달기엔 좀 부끄러워서 그런 것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다중의 하나이며, 이러한 다중의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더 쉽고 많은 사례가 있었다. <울티마 온라인>의 로드브리티시 암살사건은 게임 외적 제국에 맞선 게임 내 게이머들의 저항이 들어 있었고, <리니지2>의 바츠해방전쟁은 게임 안에 구축된 제국으로서의 혈맹연합에 맞선 내복단의 혁명사가 들어 있었다. 카피레프트에 관련한 문제로는 RAZOR911팀과 각 게임사 보안팀의 치고받는 격전사가 공유지 개념을 설명하기에 훨씬 적절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인문학이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바라볼 때 지향해야 할 점인 ‘게임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제국의 게임>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아직까지 게임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이렇다 할 담론의 지평이 형성되지 못한 한국의 현실에서 책은 인문학적 게임 비평에 대한 좋은 사례다. 특히나 일반적으로는 ‘중국발 작업장’ 으로 불리는 게임 내 아이템의 파밍에 관한 세계구적 관점에서의 분석은 매우 큰 참고가 되었다.

문제는 교집합의 크기다. 안토니오 네그리를 읽는 사람과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교집합은 한국에서 얼마나 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게임에 대한 비판적 접근으로서의 좋은 시도에 대한 게이머로서의 피드백 상호작용으로 나는 서평을 썼고, 게임 커뮤니티 등에도 추천해볼 생각이다. 최종적으로 게이머들의 상호작용에 게임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비평 커뮤니케이션이 자리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아마 책과 내가 공통으로 목표하는 것, 네그리의 개념으로라면 ‘역사적 다중’으로서의 게이머 다중이 형성되는 실천적 작업의 결과를 얻는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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